문재인 정부 '거버넌스'가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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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 교수(정치학)
입력 2020-08-2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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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교수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문재인 정권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가능하다. 하나는 정치와 이념의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정책의 차원이다. 전자에 대해선 여기서 덧붙일 게 별로 없다. 그동안의 평가가 주로 정치(원론)를 대상으로 이뤄져왔기 때문이다. “국민을 적폐와 반적폐로 나눠 갈등과 비효율을 초래했다” “무게중심이 ‘자유’보다 ‘평등’에 가 있다”는 등의 주장이 그런 경우다.

정치적 평가로는 정권의 정책적 역량(각론)을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다. 순전히 능력이 모자라서 실패한 일(정책)을 마치 정치나 이념 때문에 실패한 것처럼 호도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진영(陣營)의 논리가 동원돼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책결정자를 감싸기도 한다.

한 정권의 정책역량을 살펴보려면 역시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보편적 툴이 유용하다. 1990년대 들어 한국에서도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거버넌스는 ‘공공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방식’, ‘공통의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조정기제(메커니즘)’ 등으로 정의된다. 방법론의 성격이 강하나, 거버넌스를 지향하는 마인드(mind)와 트렌드, 문화까지 내포하는 개념이다.

왜 거버넌스인가. 과거에는 모든 정책결정을 국가, 곧 정부(government)가 독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국가의 권한은 많이 약해졌고, 시민사회, 기업, 국제기구 같은 사회적 참여자들의 힘은 커졌다. 이들과의 유기적 협력 속에서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거버넌스다. 거버넌스를 흔히 협치(協治)라고도 하나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정치권에서 쓰는 협치는 협의(狹義)의 거버넌스로 주로 여야 간 협력을 뜻한다. 거버넌스는 그런 차원을 뛰어넘는다.

文 정권의 정책역량을 평가한다면

거버넌스에는 민간의 효율성을 인정하고, 민간과의 소통과 공조를 추구하며, 이를 위해 사회적 연결망(네트워크)을 총동원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우리도 거버넌스를 그냥 ‘거버넌스’로 쓴 지 오래됐다. 문 정권의 거버넌스 역량은 어느 정도일까. 시민사회나 기업과의 유기적 협력 속에서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가. 네트워크는 총동원 되고 있는가. 세계는 “통치에서 거버넌스의 시대로 가고 있다(from government to governance)”는데 우리도 그러한가.

유감스럽게도 이 정권 들어 많은 정책들이 추진됐지만 거버넌스가 제대로 이뤄진 걸 본 적이 거의 없다. 부동산정책에서 검찰개혁, 대북 전단금지, 의대 증원, 심지어는 친일(親日)논쟁에 이르기까지 많은 현안들이 일방독주 식으로 추진되고 처리됐다. 사회적 참여자들과의 충분한 논의도, 정책의 적실성을 담보할 사회적 연결망(네트워크)의 총동원도 눈에 띄지 않았다.

논의의 폭과 질은 오히려 후퇴했다. 부동산대책만 해도 8‧4 공급대책을 포함해 지금까지 23번째 대책이 나왔다. 그런데도 시장은 불안정하고, 다수 국민의 불만은 여전하다. 부동산정책 거버넌스가 얼마나 엉성했기에, 23번째 대책까지 나와야 했을까. ‘23번째 대책’은 앞으로 거버넌스 실패의 중요한, 그러나 수치스러운 사례연구(case study)의 대상이 될 게 분명하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문 정권의 부동산정책이 실패한 이유로 철학 부재, 관료들의 무능, 신뢰를 상실한 고위공직자들을 꼽았다. 그는 “이 정부가 몇몇 부동산 투기악당만 잡으면 된다는 식의 근시안적 안목으로 부동산정책을 다루고 있다”면서 “관료들의 책상머리 정책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시장구조”라고 했다.(7월 9일 정의당-경실련 부동산 간담회, 매일경제) 노무현 정부에서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교수(이화여대 국제대학원)도 실패의 원인으로 ”전문성 부족“을 꼽았다. 한마디로 거버넌스의 부재(不在)다. 책상머리 정책을 걸러주고, 전문성 부족을 메워주는 게 거버넌스다. 소통이 강점인 대통령 아래서 반(反)거버넌스가 횡행하는 형국이다.

‘의대 증원’ 꼭 지금 꺼냈어야 하나

의대 증원 문제는 문 정권의 거버넌스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왜 하필 이때 이 문제를 꺼냈을까. 코로나 방역에 땀 흘린 의사들이 배신감을 느낄 만하다. 그건 이 정권이 강조하는 공공의료 확대의 필요성과는 또 다른 문제다. 정부는 “증원 논의를 유보한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그럴 거면 왜 시작을 했나. 제2차 코로나 대유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없는 신뢰라도 만들어야 할 판 아닌가. 대한의사협회의 대국민담화(21일)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이것이 이 나라가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는 방식입니까.” 파업은 비난받을 소지가 있지만 이 외침의 울림은 크다.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다’는 것이 거버넌스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파업이 강행되자 뒤늦게 총리가 직접 의사들과 대화에 나섰지만 아쉬울 뿐이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8‧15 경축사에서 “이승만이 친일파와 결탁했고, 친일 행위자인 박정희, 백선엽은 파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복회장이 할 말은 아니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태어나선 안 될 나라로 보는 좌파의 인식과 맥을 같이한다. 두 대통령의 흠결을 지적하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대한민국에서 비록 세속의 기준이기는 하나 누릴 것 다 누리며 살아온 사람이 이제 와서 그 나라를 부정하고 있다. 김 회장은 자신의 발언이 그 나라에서 영위된 자신의 삶까지도 부정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

김 회장은 그런 경축사를 하기로 ‘결정’하기에 앞서 시민사회 측의 의견을 구했을까. 자신의 발언이 몰아올 파장에 대해 사전 숙의(熟議) 구조를 가동했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는 그의 발언 직후 상이군경회를 비롯한 12개 보훈단체가 이를 망언(妄言)으로 규정하고, 앞으로 그를 보훈단체장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데서도 드러난다. 오히려 한때 전두환 정권의 민정당에서 일한 자신의 이력만 재차 부각됨으로써 이 정권에 위선의 부담만 가중시켰다. “그때는 생계를 위해서였다”는 그의 해명이 더 군색하게 들렸다. 결과적으로 광복회가 거버넌스에 실패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성공한 거버넌스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비교의 층위는 조금 다르지만 1995년 실시된 쓰레기종량제, 2017년 개장된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사업, 2001년 시작된 여주‧이천‧광주 도자기축제와 2년마다 열리는 세계 도자기 비엔날레 등이 다수의 행정학자들에 의해 비교적 성공한 거버넌스의 사례로 꼽힌다. 이들 지자체의 공통점은 투명하고 실질적인(형식적이 아닌) 논의구조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반대편의 얘기를 충분히 듣고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장의 리더십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지금 세대는 실감이 안 나겠지만 당시만 해도 쓰레기를 돈 주고 버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국민의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지난한 일이었다. 서울시는 쓰레기 매립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달했음을 설명하고, 시범사업지구 선정, 모니터링단 운영 등을 통해 시민들을 설득함으로써 쓰레기 종량제와 재활용 분리배출을 정착시켰다. 고 박원순 시장이 추진해 성공한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도 큰 틀에선 이와 다를 바가 없다.

거버넌스 전담할 정무장관직 검토해야

경기도 도자기 축제는 이천, 여주, 광주시의 모든 공공기관과 사회단체들을 하나의 사회적 연결망으로 묶는 네트워크 거버넌스에 힘입어 성공했다. 다음은 이에 대한 연구자들의 평가다. “오늘날의 정부는 신뢰나 상호조정에 의해 특징 지어지는 네트워크를 통해 작동하는 바,… 정책담당자들은 거버넌스와 네트워크의 기술을 인식하고 새로운 정책 환경에 적응해 정부의 운영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경기도와 이천, 여주, 광주가 제반 이해관계자의 이해와 협조를 얻고…사용한 전략적 사고와 정책추진 방식은 다른 지자체의 정책형성자들에게 모범사례가 될 것이다.”(‘네트워크 거버넌스 사례연구’ 라휘문 외, 『공무원 교육과 정책』 2009년 3월)

거버넌스가 성공하려면 정부 여당의 일방독주가 먼저 자제되어야 한다. 이념과잉, 편 가르기, 진영논리에 의해 추동되는 독주 앞에서는 거버넌스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친노(親盧)의 원조로 꼽히는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이 1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여권의 지지율 하락을 민주당의 일방 독주 탓으로 본 것도 무관치 않다. “국회 원 구성에서 (18개) 상임위원장을 민주당이 독식한 게 문제였다. (야당이 일부러 다 준 것이라고 해도) 그걸 피했어야지, 덥석 받는 바람에 국민에게 오만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4‧15 총선 압승 이후 여권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어떤 현안이든 야당과 마지막 순간까지 협의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크게 줄었다. 그 낙폭만큼 지지율이 떨어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22일자)가 “문 정부는 남은 비판하면서 자신들에 대한 비판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보도한 것도 결국은 독주의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기도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무능과 비효율을 낳기도 한다. ‘임대차법 입법사고’가 좋은 예다.

정치권 일각에서 정무장관 부활 얘기가 나오고 있다. 과거에 종종 그랬던 것처럼 야당 의원들과 돌아가면서 밥이나 먹는 그런 장관이 아니라 거버넌스 전담 정무장관이라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안전한 하산(下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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