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준의 취준생 P씨](14) '억대 연봉' 건설사 포기하고 '워라밸' 있는 공기업으로

정석준 기자입력 : 2020-08-29 06:05
연봉 좇아 선택한 건설사, 입사 초 의욕적으로 일해 잦은 야근과 영역을 벗어난 업무로 '워라밸' 무너져 "돈보다 워라밸 찾을 결심으로 퇴사하고 공기업 준비"
[편집자주] 올해 7월 기준 국내 취업준비생(취준생)은 약 114만명입니다. 누구나 이 신분을 피하진 못합니다. 준비 기간이 얼마나 길고 짧은지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취준생이라 해서 다 같은 꿈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각자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만 합격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만은 같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취준생들에게 쉼터를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매주 취준생들을 만나 마음속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응원을 건네려고 합니다. 인터뷰에 응한 취준생은 합격(pass)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P씨로 칭하겠습니다.


열네 번째 P씨(27)는 한국도로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건축 관련 공기업 입사를 목표로 하는 취준생이다. 건설사 입사 후 1년도 채 안 돼 나왔다는 P씨는 공기업을 준비하는 이유로 ‘워라밸’과 ‘자존감’을 들었다. 

입사 한 달 만에 헝가리로 파견돼 반년 동안 해외 현장을 경험했다. 이 기간이 ‘워라밸’과 ‘자존감’을 잃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P씨는 “헝가리에서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면서도 “입사 1년을 못 채우고 퇴사한 짧은 경력은 취업을 준비하는 나한테 ‘주홍글씨’가 된 것 같다”고 표현했다.
 
의욕적으로 도전한 해외 현장···현실은 '워라밸' 붕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학 전공으로 건축 공학을 택한 P씨는 한국에 멋진 건물을 짓는 게 꿈이었다. 자연스레 건설사 취업을 희망한 P씨는 대학 졸업을 앞둔 2018년 말 합격 소식을 받은 대형 건설사 3곳 중 현장이 많고 가장 연봉이 높은 곳을 택했다.

P씨는 건축 관련 취업에 대해 “취업 자체는 비교적 수월한 전공이다. 전문자격증이나 의전, 약대 등으로 빠지는 친구들도 많아 학점 따기도 쉬웠다”라며 “지금 공기업 준비와 비교하면 필요 스펙도 적고 업무환경이 힘드니 경쟁률도 낮았다”고 설명했다.

입사 후 연수를 마친 P씨가 처음 발령받은 곳은 헝가리 현장이었다. P씨는 “해외 공사 현장에서 법적인 문제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보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며 “이런 걸 예방하고, 법리적 해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회사에서 높은 임원까지 올라가려면 처음에 해외 현장 경험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인 것도 매력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첫 한 달 간 P씨는 영어로 진행하는 회의 등 소통 방식이 낯설었지만, 매일 조금씩 늘어나는 영어 실력에 성장하는 기분이 들어 해외 현장에 만족했다. 오히려 빨리 적응해서 윗사람들을 편하게 해주고 싶은 의욕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잦은 추가 근무와 영역을 벗어난 업무는 P씨의 워라밸과 자존감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P씨는 “주말에 협력 업체가 장비를 안 빼면 다음 작업이 진행이 안 되니 내가 직접 장비를 빼고, 고층 현장은 화장실이 멀어 청결 관리가 안 돼 업무 절반이 청소였다”라며 “내 모습을 모고 다른 부서 직원이 ‘억대연봉 청소노동자’라고 비아냥거릴 때 상처가 컸다”고 털어놨다.

엄연히 한국의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아야 하는 해외 현장임에도 근무시간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P씨는 “회사 컴퓨터가 추가 근무 제한이 없어서 새벽 6시에 나와 밤 11시반에 퇴근해 자는 시간 빼고 거의 다 일했다”며 “13일 일하고 하루 쉬는 와중에도 비가 오면 현장에 나가봐야 하니 근처에 대기하면서 여행도 못 다녔다”라고 말했다.

결국 이직을 결심한 P씨는 두 번째 신입사원 연수를 위해 귀국을 준비하면서 한국 현장 발령을 신청했다. 지방 현장에 투입된 P씨는 다시 3주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P씨는 “한국에서는 안 바쁘면 안 바쁜 대로 회식이 잦고, 현장에서 일하는 건 더 어려웠다”며 “여기를 다니면서는 이직 준비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월급이 4분의 1로 줄어도 목표는 '공기업'

[사진=게티이미지뱅크]

P씨는 다시는 건설사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다녔던 회사가 다른 건설사보다 연봉도 높았던 만큼 더 나은 회사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전문직, 다른 대기업 등 많은 선택지 중 비교적 워라밸이 확보되는 공기업을 목표로 삼았다. P씨는 “공기업에 들어간 지인들에게 많이 물어보면서 건설이 주 업무인 공기업으로 목표를 정했다”라며 “목표를 정하고 전공과 인‧적성 시험 등 공부를 시작하면서 하반기는 힘들다는 생각에 3개월 정도 인턴 생활을 병행했다”고 말했다.

몇 달 만에 월급이 4분의 1로 줄어들겠지만 P씨는 만족했다. 돈을 최우선 순위로 두었던 가치관도 ‘돈보다 워라벨을 찾아가겠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야심차게 상반기를 노렸지만, 취업 시장은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얼어붙었다. 뒤늦게 뜬 공기업 채용 공고도 극소수였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해진 P씨는 대기업도 부랴부랴 지원했지만, 1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경력이 발목을 잡았다. P씨는 “짧은 경력이 커리어로 인정되기보다는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한 지원자로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P씨의 목표는 여전히 워라밸 있는 삶이다. P씨는 높은 연봉을 ‘내 개인 시간을 일로 채우는 대신 받았던 대가’라고 표현했다. P씨는 “평범한 취준생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 솔직히 후회가 없다고는 하지 않는다”면서도 “다시 그곳에서 일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후회한다는 생각이 안 들고 잘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건설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기 삶을 감수한다는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국내 건설 현장을 경험한 뒤 해외에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이어 “남이 뭐라 해도 쉽게 기죽지 않고, 급할 때는 결단력 있고, 어떨 때는 아부도 할 줄 아는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 잘하더라. 난 아니라서 힘들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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