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첨단굴기 궁지]美 파상공세에 당혹…곳곳서 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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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20-08-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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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마트폰 두뇌 잃은 화웨이

  • 기술력 한계 임박한 SMIC

  • 틱톡·위챗, 美시장 퇴출위기

  • 中 글로벌시장 장악 막아서

[사진=바이두]


중국을 대표하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미국의 전방위 공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선 승리를 위해 반중 정서를 활용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략이라는 분석은 피상적이다. 중국 첨단 산업의 글로벌 시장 장악을 막겠다는 게 본질에 더 가깝다.

그래서 전쟁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을 상대로 중국 특유의 지구전이 통할지 이목이 집중된다.

◆화웨이, 반도체 자립 꿈 포기하나

지난 7일 중국 주요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위청둥', '화웨이 휴대폰 반도체' 등의 검색어가 한동안 상위권을 유지했다.

이날 위청둥(余承東) 화웨이 소비자부문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정보화 100인회 고위급 회의에 참석해 "9월 15일부터 기린 칩 생산을 중단한다"고 고백했다.

기린은 화웨이가 반도체 자립을 꿈꾸며 직접 개발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다.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처럼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이다.

화웨이가 기린 생산을 중단한 것은 미국의 제재 때문이다. 그동안 대만 TSMC가 위탁 생산해 왔는데 미국의 압박 탓에 더이상 납품할 수 없게 됐다.

위 CEO는 "올해 가을 출시하는 프리미엄 스마트폰 메이트40은 기린이 탑재되는 마지막 모델"이라며 "반도체를 공급하지 못해 올해 스마트폰 판매량은 (지난해의) 2억4000만대보다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자금이 집중 투입되는 반도체 제조에는 참여하지 않고 설계만 해왔다"며 "참으로 아쉽다"고 토로했다.

중국 내에서 TSMC의 대체자를 찾기도 어렵다. 위 CEO는 "국내 반도체 제조 공정은 (글로벌 수준을) 따라잡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기린을 생산하려면 5나노미터(nm, 10억분의 1m)급 혹은 7나노급 기술력을 갖춰야 하는데 중국의 반도체 파운더리(위탁 생산) 업체 중 선두인 SMIC는 14나노 공정에 머물러 있다.

SMIC 역시 미국의 제재로 제조 설비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기술력 향상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금융시보는 "노광기 등 핵심 장비를 들여오지 못해 2~3년 내에 기술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공급을 받아야 하는데 이 또한 녹록지 않다.

화웨이 스마트폰에 AP를 공급할 수 있는 업체는 미국 퀄컴과 삼성전자, 대만 미디어텍 정도다.

일각에서는 화웨이가 미디어텍과 1억2000만개 규모의 구매 의향서를 체결했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문제는 미디어텍이 생산하는 AP가 중저가 스마트폰용이라는 것이다.

프리미엄 제품용 AP를 구하지 못하면 '화웨이는 중저가 브랜드'라는 굴레에 영원히 갇힐 수 있다.

현재 확보해 놓은 기린 칩은 8000만개 정도로 추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용은 삼성전자와 퀄컴 등으로부터 공급을 받고 기린은 내수용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당분간 문어발식으로 공급처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화웨이와 SMIC 등이 주도해 온 중국의 반도체 굴기 프로젝트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며 "제조 공정 고도화와 설비 국산화는 여전히 요원한 목표"라고 말했다.

◆틱톡·위챗도 위기, 글로벌 진출 험로

글로벌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동영상 플랫폼 틱톡과 사용자 수 12억명을 자랑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위챗도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국민과 기업이 틱톡과 위챗, 이들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 및 텐센트와 거래하는 걸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명령은 45일 뒤부터 적용된다. 텐센트와 바이트댄스는 중국 내수를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이지만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글로벌 시장 공략이 필수적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는 중국 IT 공룡들의 진군을 막아서는 행보다. 경제·기술 패권을 쥔 미국을 우회해 글로벌 시장 내 영향력을 키우는 건 난제 중의 난제다.

미국의 공세에 시달리던 틱톡은 마이크로소프트(MS), 트위터 등과 미국 내 사업 매각을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이 (미국 사업뿐 아니라) 바이트댄스의 글로벌 사업을 점령했으면 좋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중국경제망은 "미국이 취한 일련의 제재 조치는 (중국 IT 기업의) 미국 내 사업을 막기 위한 게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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