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어느 중앙부처의 유별난 기사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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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은 기자
입력 2020-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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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청사. [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최근 취재 현장에서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 정부 부처의 대변인실이 언제부턴가 비판 기사를 윗선에 보고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해당 부처는 하루에 두 차례에 걸쳐 부처와 관련된 기사를 모두 취합해 PDF 파일로 묶은 뒤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한다. 이 PDF 파일은 기자들뿐 아니라 해당 부처의 장·차관, 청와대, 국무조정실까지 배포된다고 한다.

그런데 언론을 상대하는 대변인실이 부처에 대한 지적 내용이 담긴 기사는 모두 스크랩에서 일부러 누락해왔다는 얘기다. 직접 확인해보니 실제로 최근 기자가 쓴 비판 논조의 기사가 모두 스크랩에서 빠져 있었다. 타사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그간 보도자료를 기반으로 큰 품을 들이지 않은 기사조차 스크랩에서 빠지는 경우는 없었다.

해당 부처의 대변인실은 이전부터 개별 기사에 민감하게 반응해 기자들로부터 '유별난 부처'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주요부처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갈 기사 내용을 기자들에게 일일이 수정해달라고, 제목을 순화해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해 왔다.

보통 팩트 기반의 기사에 대해선 사실관계가 틀린 게 아닐 경우 취재원의 요청에도 굳이 수정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지긋지긋한 요청이 예상돼 한두 번만의 요청을 받고도 기사를 수정해준 적이 더러 있다.

기실 이 부처는 언론 취재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 듯하다. 대변인실이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부처의 각국·과 직원들은 기자들에게서 들어온 모든 질의 현황을 대변인실에 매일 보고한다고 한다. 부처에 대해 어떤 기사가 나갈지 예측하기 위해서다. 지적이 나올 것으로 보이는 정책이나 문제와 관련해서는 즉답을 피한 후 얼렁뚱땅 대책을 만들어 내놓기도 한다. 여론의 뭇매를 맞지 않기 위한 필사적 몸부림으로 보여 짠하다.

기자들의 현장 취재에도 한 명 이상의 직원이 따라온다. 출입처 직원이 졸졸 따라다니는 가운데 취재를 하는 일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다. 겉으로는 친절을 가장하고 있지만 기자가 어떤 정보를 건져 어떤 기사를 작성할지 미리 파악하려는 의도에 불과하다. 그저 보도자료만 잘 써주기를 바라는 듯싶은데, 기자는 홍보직원이 아니다.

이런 '미저리(광적인 집착, 스토커) 전략'이 잘 먹히지 않았나 보다. 어느새 이 부처는 민감한 기사는 '패싱'하는 전략으로 노선을 바꿨다. 앞서 말했듯 언론 보도를 모두 취합한 PDF 파일은 이 부처의 수장은 물론 큰집까지도 향한다. 부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그곳까지 닿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이런 걸 두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라고 할 텐데, 명백한 기만이다.

언론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다. 물론 오늘날 언론의 위상이 바닥에 떨어지고 언론에 대한 불신도 뿌리 깊다는 사실을 안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정부는 언론을 통해 표출되는 여론의 불만을 수용하고 정책 방향을 개선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라고 쓴 기사다. 읽고 정책 방향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검토해보라고 쓴 기사다. 괜히 꼬투리 잡기 위해 쓴 기사가 아니다. 그런데 비판 기사엔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언론을 내 편, 네 편 갈라쳐 본인들이 홍보하고 싶은 내용만 확대해 보여준다.

그 배경은 아랫사람의 과잉충성이든 윗선의 압박이든 내부인이 아닌 이상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외부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결국 윗선의 무능으로 귀결된다. 아랫사람의 작은 손바닥으로 윗선의 하늘이 가려졌단 사실이 우습다. 돌려 말하면 아랫사람이 윗선에 허위보고를 올릴 정도로 우습게 본다는 셈이다.

이 부처는 최근 이 문제가 공론화되자 기자와 내통한 '내부자 찾기'에 혈안이 됐다는 후문이다. 누군가 잘못에 대해 지적하면 책임소재를 따지기 전에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게 우선일 텐데 조직 자체에 결함이 많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선의 여지가 없다.


 

[사진=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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