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 보수진영에서 기본소득이 더욱 활발하게 논의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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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편집인
입력 2020-07-2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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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턴 프리드먼의 마이너스 소득세에서 긴급재난지원금까지 여러 얼굴을 한 기본소득의 진짜 모습은?

  • 빌 게이츠와 이재명은 왜 기본소득에 찬성할까

 

[이용웅 아주경제 편집인]

우리 사회에 ‘기본소득’이 정치적 화두로 등장한 데는 전대미문의 코로나 팬데믹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어쨌든 기본소득의 원칙대로 어떤 조건도 걸지 않은 14조원짜리 전 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은 말 그대로 얼떨결에 풀렸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현금을 대대적으로 뿌렸는데, 정치권 논란이 예상보다 크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재난지원금’에 대해서 먼저 선수를 친 것도 분명 영향을 미쳤다.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지도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현금을 뿌린 것도 사실이다.
해서 평소라면 긴급재난지원금을 무차별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비난을 퍼부었을 야당에서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 신세가 된 것이다. 아니 벙어리는 고사하고 김종인 선대위원장이 “더 많은 돈을 뿌려도 좋다”고 더 큰 목소리로 떠드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기본소득’이나 ‘전 국민 고용보험’, ‘긴급 재난소득’ 등의 용어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익숙한 개념은 아니었다. 특히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핀란드와 스위스에서 그런 것을 시도했다더라 식의, 말 그대로 ‘딴나라’ 이야기였다.

기본소득은 좌파진영만의 포퓰리즘이 아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긴급재난지원금을 뛰어넘어 아예 ‘기본소득’ 이슈를 전면에 제기하자 여권도 기다렸다는 듯이 호응을 해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기본소득’에 대해 좌우를 막론하고 백가쟁명식의 논란이 벌어졌다. 지금은 부동산이 모든 이슈나 구호를 잡아먹는 괴물이 되고 말았지만, 어차피 앞으로 선거철이 되면 ‘기본소득’ 이슈가 다시 등장할 것이다. 야권의 김종인 위원장에 이어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 지사도 여러 차례 ‘기본소득’을 강조했다.이렇게 되자 미래통합당의 오세훈은 “기본소득이란 화두를 민주당이 먼저 가져가게 두면 안 된다”고 대놓고 걱정을 하기도 했다.

홍장표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장은 최근 필자에게 “김종인 위원장이 기본소득을 처음 내세울 때 내심 긴장했다”고 말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국면에서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와 진보진영의 어젠다를 선점했던 기억이 났을 것이다. 2012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그때 이정우 교수가 기본소득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했었는데 솔직히 그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채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공부하고 생각해보니 아주 좋은 어젠다였다”고 회고했다.
이정우 교수는 노무현 정권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하는 등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하는 요직을 두루 경험한 사람이다.

이쯤 되면 ‘기본소득’이 진보세력에 더욱 친숙한 개념으로 보이지만 그 뿌리를 찾아보면 그렇지도 않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계열 학자인 찰스 머레이(Charles Murray)는 자신의 저서 <복지 국가를 대체할 계획, 우리 손에 달렸다(In Our Hands: A Plan to Replace the Welfare State)>에서 21세 이상 국민에게 연간 1만 달러씩 나눠주자고 주장했다. 보수적인 논객이 내세우기에는 언뜻 아주 파격적인 제안처럼 보였다.

머레이는 요즘 우리 정가에서 한참 유행하는 ‘기본소득’을 이 책에서 아주 단순명료에게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인에게 1만 달러씩 제공해주는 대신 기존의 현금성 복지 프로그램은 철폐해야 한다는 전제가 뒤따르기에 결코 진보진영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론이었다. 어쨌든 찰스 머레이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본소득’은 좌파들의 전유물이 아님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기본소득’을 논의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는 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다. 그는 ‘기본소득’이 전통적인 복지 관료제보다 제도를 집행하고 유지하는 데 비용이 적게 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기본소득 개념으로 ‘마이너스 소득세’라는 것을 내세웠다.
이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소득이 일정 수준 밑이라면 정부에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조금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프리드먼도 머레이와 마찬가지로 마이너스 소득세를 도입하는 대신 기존 복지제도는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프리드먼의 마이너스 소득세에 아이디어를 얻어 야권의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은 ‘안심소득’이라는 개념을 내세우기도 한다. 기본소득제와 달리 안심소득제는 한계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더 주고 고소득층에겐 아예 주지 않거나 덜 주자는 것이다. 
 마이너스 소득세는 기본소득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수급 대상을 제한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기본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을 아예 엄청 높게 책정해서 1억원씩이나 주면 모를까, 액수도 크지 않고, 젊은이들의 생활을 얼마나 향상시킬지 의문”이라며 “더 중요한 것은 (기본소득이) 자칫 복지제도 확대의 반대 근거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미래통합당의 대표적 경제통인 추경호 의원은 “기본소득의 실상이 뭔지 제대로 알고 도입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지금 국세 수입이 300조원이 채 안 되는데,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려면 200조원을 더 걷어야 한다. 소득세액공제, 기초생활 보장제가 다 없어져야 하는데 이런 실상을 알고 찬반을 얘기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기본소득은 복지제도의 연장인가? 소비진작책인가?

기본소득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몽테스키외의 책을 뒤져보았다. 몽테스키외는 1748년 <법의 정신>에서 “국가는 모든 시민에게 안전한 생활수, 음식, 적당한 옷과 건강을 해하지 않는 생활 방식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연원이 아주 오래됐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250년 전 고전까지 찾아보게 된 것이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세계적인 CEO들도 이구동성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그 뿌리를 찾기 시작해 자본주의 첨단을 걷는 사람들까지 모두 동원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기본소득의 정확한 개념은 무엇인가

‘기본소득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강남훈은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BIEN, 1986년 벨기에서 창립한 비정부기구) 총회에서 정의한 기본소득의 다섯 가지 정의를 이렇게 제시한다. 첫째 개인단위로 지급하는 개별성, 둘째 자격 심사 없이 모든 이에게 지급하는 보편성, 셋째 수급의 대가로 노동이나 구직활동을 요구하지 않는 무조건성, 넷째 소득을 한번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정기성, 마지막으로 현금으로 지급되는 현금 지급이다. 이런 원칙을 지켜야 그게 기본소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산도 아주 간단하다. 1인당 매달 100만원씩 연 1200만원을 지급하려면 우리나라에서는 대략 620조원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계산은 다들 자기 편한 대로 할 수 있다. 1인당 50만원이면 어떠냐. 우선 실험을 하자면서 1인당 10만원씩이라도 주고 보자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나이에 제한을 두거나 소득에 제한을 둘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노동 분야 예산은 공적연금 지급이나 보건 분야 예산을 포함해 180조원 수준이고, 전체 정부예산은 513조원이다.
이쯤 되면 무조건 1인당 연간 1200만원씩 준다는 계획이 얼마나 거창한지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로봇세를 신설하고(빌 게이츠), 토지세를 크게 늘려(이재명) 해결하자는 주장들이 이어지지만 현실에 부합하려면 보다 어지러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진짜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맞춤형 복지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기존 복지제도가 모두 없어지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받는 기본소득으로 환류한다면 사회갈등은 상상 이상으로 증폭될 수도 있다. 물론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정책을 추진할 정치인도 없을 것이다.

벌써부터 여권이든 야권이든 기본소득에 대한 해석을 두고 상대방에 대한 총질은 물론이고 내부 총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을 재난소득과 마찬가지로 소비진작 효과 측면에서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같은 당 신동근 의원은 "이 지사는 처음에 기본소득을 복지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최근에는 기본소득을 경제정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며 "빌 게이츠 등과 서구 우파들이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이유와 정확히 부합한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본소득'은 재난지원금의 연장선에서 구상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복지정책과는 무관한 소비진작책과 더 가까운 편이다.

정치권에서 ‘기본소득’ 논란은 지금도 중구난방이다. 누가 왼쪽이고 누가 오른쪽인지도 헷갈리게 한다. 결국 정치인들의 교묘한 말싸움만 이어지면서 어지러운 ‘프로파간다’만 득세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우리 사회가 ‘기본소득’ 문제를 성숙하게 소화할 수 있을지 조만간 판가름이 나겠지만 결코 간단한 이슈가 아님은 분명하다. 무 자르기 식의 진영논리에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도대체 ‘기본소득’ 개념은 우파인가 좌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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