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10) 수교 25주년, 베트남은 미국을 어떻게 보나?

이한우 서강대 교수 입력 : 2020-07-19 14:43

[하노이 홍강 강변에서 이한우 교수]


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10) 
베트남은 미국을 어떻게 보나?


-----------------------------------------------------------------------------
아주경제는 베트남 개혁·개방을 연구하는 최고 전문가인 서강대 이한우 교수의 칼럼을 연재한다. '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는 베트남의 개혁 과정을 톺아보고 분석하며 날로 확대되고 있는 한·베트남 관계에 대한 현황을 살피고 전망을 내놓을 것이다. 이한우 교수는 서강대에서 베트남 개혁정책을 주제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로 있다. 베트남 국민경제대학 객원연구원으로도 있었다. 그는 베트남 정치경제 개혁과정을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개혁으로 인한 사회문화 변화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베트남 경제개혁의 정치경제>, <한국-베트남 관계 20년> 등의 책과 베트남 개혁에 관한 연구 논문을 여러 편 냈다. [편집자 주]
-----------------------------------------------------------------------------


수교 25주년을 맞은 베트남과 미국 

2020년 7월 11일 베트남과 미국은 관계정상화 25주년을 맞았다. 베트남은 기념식과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등 양국의 우호를 표방하는 행사를 가졌다. 대니얼 크리텐브링크 베트남 주재 미국 대사는 7월 1일 베트남사회과학원이 연 학회에서 여러 부문에서 양국 협력관계의 발전을 높이 평가했다. 양국 관계는 정상화 25년간 실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적’으로부터 ‘친구’가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한국-베트남 관계와 마찬가지다. 베트남청년연합회가 발간하는 일간지 <타인니엔(Thanh Nien, 청년)>은 7월 11일자 1면에 “베트남과 미국은 진정한 친구다”라고 기사 제목을 크게 뽑았다.


 

[타인니엔 2020년 7월 11일자 1면, “베트남과 미국은 진정한 친구다.” 페이스북에서 캡처]

 


양국의 경제 관계는 1995년 수교 이래 비약적으로 확대됐다. 교역은 170배 증가했다. 수교 당시 교역액은 4억5000만 달러였으나, 2019년 교역액은 774억 달러에 달했다. 미국은 베트남의 최대 시장이다. 2019년 양국 간 교역에서 베트남의 흑자는 558억 달러였다.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으나, 중국에 투자한 기업들이 탈중국화 하면서 미국 기업들도 베트남에 더 투자하리라고 예상된다. 베트남은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가장 많이 받는 국가 중 하나다. 미국은 1992년 이래 베트남인 600명에게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제공했다. 모든 유학생이 장학금을 받는 건 아니겠지만, 미국에 유학 중인 베트남인 학생은 이제 3만명에 달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발생하자 베트남은 미국에 마스크 40만장을 보냈고, 미국은 인도적 긴급 지원금을 베트남에 보내며 인도적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이 남긴 오염지역 복구와 지뢰 및 불발탄 제거작업을 지원해왔다.

미국은 2016년 베트남에 대한 무기 금수조치를 해제했다. 베트남의 무기체계가 80% 이상 러시아 장비로 채워져 있어 군사 분야에서 베트남-미국 간 협력이 얼마나 진전될지는 미지수다. 2018년 3월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전후 처음으로 다낭에 입항했고, 2020년 3월 시어도어 루스벨트호가 다낭에 기항했다.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공세에 대응해 항행의 자유를 주장해왔고 베트남에 힘을 실어줬다.

양국 정상들의 상호 방문도 이어졌다. 2000년 클린턴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고, 2005년 판반카이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다. 2006년 부시 대통령, 2007년 응우옌민찌엣 국가주석, 2013년 쯔엉떤상 국가주석,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의 상호 방문이 이어졌다. 미국 대통령들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베트남 국민들은 그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이에 화답하여 미국 대통령들은 대중식당에서 베트남 음식을 즐겼고, 이런 친근한 제스처로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17년 응우옌쑤언푹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과 2019년에 베트남을 방문했다. 응우옌푸쫑 공산당 총비서(총서기)가 2015년 7월 미국을 방문해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으나,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의 방미 초대에 아직 응하지 못하고 있다. 수교 25주년을 맞아 양국은 친서 교환을 통해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확대해 나가자고 다짐했다. ‘전략적’ 관계로 상향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양국이 ‘적’으로부터 ‘친구’가 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며,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하는 큰 성과다.

 

[호찌민시에 있던 옛 미국 대사관 건물과 그 자리에 세운 미국 총영사관, 사진@이한우 1993,2003]

 

베트남-미국 관계 정상화 과정 

양국이 어떻게 이런 우호관계를 갖게 됐나? 양국관계 회복과정을 되돌아보자. 미국은 1964년 북베트남에 대하여, 1975년 4월 베트남 통일 이후 베트남 전역에 무역금수조치를 내렸다. 1978년 12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한 이후에는 전 세계 자유주의 국가들이 베트남에 금수조치를 내렸다.

베트남 통일 이후 양국이 교류하기 시작한 것은 1977년이었다. 미국 카터 대통령은 1977년 3월 레너드 우드콕(Leonard Woodcock) 자동차 노조 연맹 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하노이에 보내 수교협상을 제안했다. 양국은 이 해에 세 차례 만났다. 이런 속에서 베트남은 1977년 9월 유엔에 가입했다. 베트남은 수교협상에서 1973년 1월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할 때 닉슨이 약속한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경제 원조” 32억50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고 나섰다. 미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회담은 깨쳤다. 1978년 7월 베트남은 전후복구지원금 지불을 수교의 전제조건에서 제외했으나, 미국은 중국과의 수교를 우선순위에 두며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을 미뤘다. 이때 미국이 전후복구지원금을 베트남에 지불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시 베트남은 미·중 데탕트와 소련의 상호공존정책으로 인해 서방국가와의 경제관계를 확대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 이후 역사는 다르게 전개됐을 수도 있었다.

베트남은 1978년 6월 소련과 동유럽이 참여한 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에 가입했다. 베트남은 1978년 12월 캄보디아 침공에 이어, 1979년 2월 중국의 침입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1981년 베트남과 미국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사망한 미군 유해를 송환하기 위한 협력을 재개했다. 이후 양국 간 쟁점은 미군 포로 및 실종자 확인, 미군 유해 송환과 캄보디아로부터의 베트남군 철군 문제였다. 베트남이 1989년 9월 캄보디아로부터 철군을 완료했지만, 미국은 바로 베트남과 수교하지 않았다. 미국은 1991년 4월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다. 1991년 10월 캄보디아 평화협정이 맺어지자 양국은 11월 교섭을 재개했다. 미국은 1993년 7월 금수조치를 부분적으로 해제하고 국제금융기관의 차관을 재개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1994년 2월에 가서야 금수조치를 전면적으로 해제했다. 캄보디아 문제가 해소됐음에도 이후 1995년 7월 공식 수교까지 3년 8개월이나 소요됐다. 1995년 양국이 정치관계 정상화에 이르렀다면, 경제관계 정상화는 2007년 베트남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통해 완결된다. 그 과정은 2000년 양국 무역협정 체결 및 2001년 비준, 2006년 12월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항구적 정상교역관계’ 지위 부여, 2007년 베트남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통해 이뤄졌다. 여기서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던 국가들이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장시간이 소요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이를 보면 북한-미국 간 관계 개선에도 시간이 걸릴 것이며, 우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베트남의 실용주의 외교

미국을 보는 베트남의 시선은 여전히 이중적이다. 베트남은 미국과 굳건한 우호관계를 맺으려 하지만 미국이 사회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이라는 의혹을 완전히 거둔 것은 아니다. 베트남은 1990년대 초부터 ‘지엔비엔 호아빈’(Dien bien Hoa binh: 演變和平)이라는 개념을 들여왔다. ‘평화적 전복’(和平演變)의 베트남 버전이다. 자유주의 국가들이 비군사적 방법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이다. 그 주체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미국이라고 여겨진다. 베트남이 자국에 이익이 되는 모든 국가와 우호관계를 유지한다는 정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큰 목소리는 아니더라도 ‘평화적 전복’의 위험을 여전히 외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사회주의 ‘형제국’ 중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공세가 강화돼 베트남은 미국과의 협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베트남은 현대 국제관계에서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적’인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베트남에 도움을 주는 국가를 우호 대상국(doi tac), 해를 끼치는 국가를 경계 대상국(doi tuong)이라고 규정했다. 이것이 베트남의 실용주의 대외정책의 면모다. 베트남의 실용적 대외정책이 앞으로도 어떻게 빛을 발할지 기대해봐야겠다.
 

 


이한우 서강대 교수   asia@sogang.ac.kr
컴패션_미리메리크리스카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네티즌 의견 0
0 / 300

실시간 급상승

9.9초 더보기

아주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