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 칼럼] 미중간 디지털 화폐 전쟁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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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 (사)중국경영연구소 소장,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입력 2020-07-15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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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 (사)중국경영연구소 소장 겸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지난달 창립 70주년을 맞이해 한국은행은 디지털 혁신에 기반한 향후 중앙은행의 비전을 담은 'BOK 2030'을 발표했다. 인공지능·머신러닝·빅데이터·블록체인 등을 전담할 디지털혁신실을 신설하고, 부총재보가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연구를 직접 진두지휘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주요 국가들의 CBDC 추진현황을 살피고, 향후 한국 CBDC 발행속도를 가속화시키겠다는 것이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 디지털 화폐를 의미한다. 중앙은행이 직접 통제하기 때문에 시장가격 변동성이 높은 비트코인 등 민간 가상화폐 및 암호화폐와는 완전히 다르다. 작년까지만 해도 CBDC와 같은 디지털 화폐의 당위성을 강조하지 않았던 한국은행의 입장이 왜 바뀐 것일까? CBDC를 둘러싼 글로벌 금융국가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화폐의 선두국가는 당연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3경(京)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세계 최대의 모바일 결제규모를 기반으로 디지털 화폐의 리딩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은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 화폐 발행을 국가 어젠다로 삼아 CBDC 연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2016년 12월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산하에 디지털 화폐연구소를 설립, 이른바 중국판 디지털 화폐인 ‘DCEP(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 위안화 전자화폐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 전자화폐 관련 특허만 100여개를 출원한 상태다. 또한 2019년 10월 시진핑 주석은 블록체인을 핵심기술로 활용해 디지털 화폐 발행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미래 DCEP 발행으로 중국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크게 세 가지 의도로 집약된다. 첫째, 위챗페이나 알리페이 등 민간 회사별로 난립했던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정부 주도로 재통합하겠다는 의도이다. 중국인민은행이 발행해 주요 상업은행에 배분하고, 개인은 은행 계좌를 통해 디지털 화폐를 자유롭게 인출해 사용하게 함으로써 민간 주도의 모바일 결제시장을 정부통제 하에 두겠다는 야심이다. 현재 기업생태계별로 위챗페이 혹은 알리페이 등에 따라 모바일 결제수단을 선별적으로 거절할 수 있지만, DCEP는 중국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이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다. 또한 비행기, 지하실, 산간 시골지방 등 인터넷 신호가 잡히지 않는 곳에서도 스마트폰에 전기만 있으면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확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둘째, 일대일로를 통해 꺼져가는 위안화의 국제화 불씨를 다시 살리고자 하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위안화의 국제화를 디지털 화폐 표준화를 통해 새롭게 구축해 나가고자 한다. 해외에서도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일대일로 연관 국가를 중심으로 유통시켜 중국이 기축 통화국의 핵심적 지위를 얻으려는 포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중국의 첫째 포섭국가는 한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중국 양회 때 한·중·일+홍콩 4개 지역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화폐를 만들자는 의견을 전인대 위원들이 제안한 바 있다. 그 내용을 좀 더 들어가서 보면 실제적으로는 중국정부의 생각을 대신 반영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위안화·엔화·원화의 차등비율로 디지털 화폐 준비금을 마련하겠지만, 위안화가 50% 이상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셋째, 미국보다 먼저 디지털 화폐를 상용화하고, 미래의 금융테크 시장을 선점하여 글로벌 금융시장을 리딩해 나감으로써 중국 디지털 경제의 근간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도이다. 중국의 이러한 공격적인 행보에 금융선진국인 미국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본격적인 견제가 시작된 것이다. 출발이 늦은 미국은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인 페이스북이 먼저 2019년 ‘리브라’ 전자화폐 프로젝트를 공식화하며 미·중 간 디지털 화폐전쟁에 불을 지폈다. 지난 1월 일본·유럽·영국·스웨덴·스위스·캐나다 등 6개 중앙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 공동으로 디지털 통화 연구그룹을 결성했으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참여하지 않았다. 디지털 화폐 발행 계획이 없다는 미국이 앞서가는 중국의 미래 디지털 화폐 혁신에 조급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지난 2월 중국에 적대적인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미국 주도로 디지털 화폐 발행의 필요성과 연구를 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사실 작년 10월 페이스북 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미 하원 청문회에서 중국의 디지털 화폐 시장 주도가 향후 미 달러 패권에 도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미국 내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고, 중국의 디지털 화폐 발행이 가속화되면서 미·중 간 디지털 화폐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것은, 지난 5월부터 선전·쑤저우·슝안신구 등 중국 일부 선진도시에서 시범적으로 DCEP가 유통되기 시작하는 등 최근 위안화 전자화폐 도입이 가시화되자 미국이 기존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적극적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 연준은 기존 6개 중앙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디지털 통화 연구그룹에 뒤늦게 합류했다. 디지털 화폐 패권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금융 선진그룹 간 전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내 코로나19 재확산이 가속화되면서 디지털 화폐 필요성에 더욱 탄력이 붙는 분위기이다. 코로나로 비대면 거래가 급증하면서 향후 현금지폐 대신 디지털 화폐 시대가 더욱 빨리 도래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디지털 화폐 연구 출발이 늦은 한국도 부랴부랴 BOK 2030 추진과 홍콩·싱가포르·스웨덴·캐나다 중앙은행 등과 함께 국제통화기금(IMF)을 중심으로 공동 연구그룹에 들어가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시작했지만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다. 화웨이를 둘러싼 미·중 간 기술패권이 향후 디지털 화폐전쟁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디지털 달러와 디지털 위안화를 두고 벌이는 미·중 간 패권경쟁은 우리에게 또 다른 선택을 강요하게 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학교 방문학자와 함께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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