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세계 금융중심 홍콩 20~30년간 이상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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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고문
입력 2020-07-0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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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반환 23주년 국기 게양식 (홍콩 AP=연합뉴스) 홍콩 반환 23주년 기념일인 1일 홍콩 골든 보히니아 광장에서 국기 게양식이 열리고 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하루 전 논란이 큰 '홍콩 국가보안법'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박승준의 지피지기(知彼知己)]홍콩의 미래에 대한 英 이코노미스트의 냉철한 진단


홍콩의 별명은 ‘동방의 진주(Pearl of the Orient)’다. 홍콩은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남쪽에서 남중국해로 흘러 들어가는 주강(珠江 · Pearl River) 하류 델타에 세워진 도시이기 때문이다. 홍콩은 홍콩섬(Hong Kong Island)과 빅토리아만 북쪽 건너편의 가오룽(九龍)반도, 그 북쪽의 신계(新界 · New Territory) 세 지역으로 이뤄져 있다. 홍콩을 중국 본토인들은 샹강(香港)이라고 부른다. 향항(香港)이라는 한자의 광둥어(Cantonese) 발음이 “홍콩”에 가깝기 때문에 1840년 영국이 홍콩을 침공해서 아편전쟁이 일어난 이후 영국인들은 영어로 “Hong Kong”이라고 표기해왔다. 1760년에서 1820년 사이에 영국에서 일어난 제1차 산업혁명으로 청나라 군대보다 월등한 화력을 갖게 된 영국군은 1840년 아편전쟁에서 청나라 수비군의 해안포 진지들을 궤멸시키고 홍콩섬 남쪽의 홍콩자이(香港仔)에 상륙했다. 홍콩자이에 상륙한 영국군들은 나중에 이 지역에 ‘애버딘(Aberdeen)’이라는 영어지명을 붙였다. 홍콩자이의 위치가 스코틀랜드의 항구도시 애버딘과 상대적으로 비슷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사람들이 이 조그만 항구를 ‘샹강(香港)’이라고 부른 이유는 이 항구가 중국 명청(明淸)기간에 향료를 교역하는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홍콩은 아편전쟁 때 영국군에 점령당한 이후 1997년 6월 30일까지 150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다. 중국이 영국으로부터 홍콩의 주권을 넘겨받기 13년 전인 1984년 12월 덩샤오핑(鄧小平)의 중국과 마거릿 대처 총리가 이끄는 영국은 ‘중영 연합성명’을 체결했다. 1997년 7월 1일을 기해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귀속되고, 이후 50년간은 “홍콩에서 사회주의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핵심으로 하는 ‘홍콩기본법(Basic Law)’이 만들어졌고, 이에 따라 홍콩의 자치를 보장하기로 했다. 덩샤오핑이 이끄는 중국도 ‘항인치항(港人治港)’에 동의했다. 덩샤오핑은 중국인들에게 ‘일국양제(一國兩制 · One Country Two System)’라는 말로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귀속된 이후에도 2047년까지는 과도기가 인정될 것임을 설명했다.

홍콩의 주권을 돌려받기로 1984년에 약속을 받아낸 중국인들은 1986년부터 대만 가수 뤄다여우(羅大佑)가 작사작곡한 ‘동방의 진주(東方之珠)’를 너도나도 부르기 시작했다. 동방의 진주는 전체 중국사람들뿐 아니라 전 세계 차이나 타운의 화교들도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도 불리고 있다.

“조그만 강은 남쪽으로 흘러/ 향기로운 강으로 흐르고 / 내가 사랑하는 동방의 진주 / 너의 모습은 낭만적이면서도 늠름하구나 / 달이 항구 위에 떠오르고 / 밤이 깊어도 불빛은 휘황하구나 / 동방의 진주는 밤새도록 잠들지 않고 / 바다가 뽕나무밭이 될거라는 약속이 지켜졌네 / 바닷바람이여 오천년 동안 불어라 / 한 방울의 눈물에도 너의 존엄이 새겨져 있구나 / 바닷물결이 너를 지킬 것이다 / 절대로 잊지 말자, 영원히 변하지 않을 황색의 얼굴을 …”

그러나 ‘동방의 진주’를 장엄하게 부르던 그 감격은 25년 만에 흔들리고 있다. 덩샤오핑과 마거릿 대처가 약속한 2047년까지는 아직 27년이나 남았는데도 영국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미국과 중국이 홍콩을 둘러싸고 갈등과 대결의 자세를 갖춤으로써 홍콩의 미래가 당초 1984년에 한 약속대로는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홍콩을 뒤덮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가 7월 1일을 기해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국가안전 유지법’을 통과시키자 미국과 유럽은 “2047년까지는 홍콩에서 사회주의를 실시하지 않기로 한 일국양제 약속을 어긴 것”이라면서 “그렇다면 우리 미국과 영국도 홍콩 기업들에게 그동안 허용해오던 무역거래에 관한 특별한 경제적, 법률적 지위를 박탈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과 유럽의 서양 미디어들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통과시킨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국가 안전유지법’이 “홍콩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말살할 것”이며, 이렇게 하는 것은 중국이 2047년까지 홍콩에 과도체제를 허용하기로 한 약속을 무시하는 것이며 이로써 홍콩의 미래는 무너졌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홍콩 국가안전법 제22조가 홍콩의 안전을 위협하는 네 가지 범죄를 저지른 경우 최고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한 사실을 적시했다.

“연결회로(Conduit)의 끝장? … 세계 세 번째 국제금융시장은 사라질 것인가.” 홍콩경제에 정통한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6월 6~12일 호에서 홍콩의 미래를 특집으로 심층분석했다. 결론은 “미국과 중국간의 국제정치적인 갈등과 외형적인 경제 디커플링(Decoupling) 때문에 벼락이 치는 충격이 가해지고 있지만 홍콩을 통과하는 달러의 흐름은 당분간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홍콩의 금융기관들을 통과하는 미 달러의 흐름은 지난 2012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해서 연간 4조 달러 수준에서 지난해 10조 달러 수준으로 2.5배로 커졌다는 분석을 표로 제시했다. 홍콩을 통과하는 미 달러의 흐름이 이렇게 증가해온 데에는 IT기업 텐센트(Tencent)와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 핑안(平安)을 포함한 중국의 10대 mvf(most valuable firms · 우수기업)들이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을 하고 달러베이스의 자금을 홍콩 금융시장에서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홍콩 최대의 재벌 리카싱(李嘉誠)의 자딘 매티슨(Jardine Matheson · 長江實業)을 포함한 현지 기업들이 홍콩을 탈출해서 투자를 다른 나라로 다변화 하고 있어 이들의 홍콩 주식시장 투자 비율이 2000년 69%에서 지난해 24%로 떨어지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볼륨이 커진 중국 대표기업들의 홍콩에 대한 투자가 홍콩 금융시장 안정에 더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의 홍콩 미래 진단은 1980년 이후 지난 40년간 빠르게 커져온 중국 경제의 볼륨이 상하이(上海)와 선전(深圳)을 비롯한 중국내 경제 중심 도시들의 금융센터 역할을 키워보려 하지만 아직 중국내 경제도시들은 ‘Rule of Law(법의 지배)’가 보장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영국이 식민통치 기간에 홍콩에 형성해 놓은 ‘공정한 법정(Fair Courts)’의 존재를 이길 수 없는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홍콩이 중국내 경제도시들에 대해 가지는 최대 강점인 Rule of Law가 보장되는 한 앞으로도 20~30년 동안 홍콩의 세계 3대 금융센터로서의 지위는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냉철한 진단인 것이다.

홍콩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 기업인들도 이코노미스트와 비슷한 진단을 하고 있다. 우리 기업인들은 “홍콩은 우리의 4대 교역시장의 하나이고 최대 무역흑자 지역”이라면서 “금융, 유통, 과학기술 등 교류협력도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기업인들은 “미·중간의 국제정치적인 갈등과 경제의 디커플링이라는 외형적 변화보다는 중국경제 당국의 홍콩 중시 정책과 광둥성, 홍콩, 마카오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다완취(大灣區) 건설의 야심찬 프로젝트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인들에 따르면 다완취 건설 계획은 중국 경제리더들이 이 지역을 뉴욕만(New York Bay)과 도쿄만(Tokyo Bay)에 이은 제3의 베이 프로젝트(Bay Project)가 될 것이며, 최근 청년 일자리 마련을 걱정하는 우리 정부도 우리 청년들을 이 다완취 건설 프로젝트로 안내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였고 150년 동안의 식민통치를 통해 영국이 홍콩에 심어놓은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법의 지배(Rule of Law)’가 통하는 경제시스템이었다. 중국이 홍콩국가안전법을 만들어 통과시킴으로써 홍콩의 민주주의가 말살되게 됐다는 관측은 피상적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150년간의 식민통치를 통해 영국이 홍콩에 심은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법의 지배가 통하는 경제시스템의 구축이었다. 홍콩 국가안전법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다툼이 확대되자 지난 6월 3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와 회견을 통해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에 출생한 290만 홍콩 주민들에게 영국정부는 ‘해외거주 영국국민(British National Overseas)’ 자격의 여권을 발급해줄 용의가 있다”는 발표를 해 외교적으로 미국을 거드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보리스 존슨이 한 이 발표의 속내를 뜯어보면, 비자 없이 6개월간 영국 방문 자격을 주는 BNO 패스포트를 홍콩 주민들이 발급 받는다고 해도 이 홍콩 주민들이 영국으로 이주하거나 취업하려 할 경우 별다른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점이 보인다. 보리스 존슨 총리의 발표는 말 그대로 미·중 갈등에서 외교적으로 미국을 지원한다는 성의표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국제정치 분석가들은 이해해야 할 것이다.

“중국이 홍콩 국가안전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중국정부가 홍콩의 민주주의를 말살하려 한다”는 우리 사회 일부의 진단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의 과거에 대한 정확한 진단도, 현재 홍콩 내부의 경제 흐름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결과이다. 우리 정치에 여야 없이 유행하는 프레임 씌우기를 세계 3대 금융센터인 홍콩에 적용하는 것은 오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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