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형의 불온한 정치] 90도 숙인 안희정…'눈물의 사모곡'에 담긴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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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형 정치팀 팀장
입력 2020-07-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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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희정 모친 국중례씨 지난 4일 숙환 별세…7일 오전 6시 발인

  • 安, 지난 6일 형집행정지 결정으로 빈소 지켜…9일 다시 수감행

  • 文대통령 조화·與野 정치인 조문 발길…安, 최장집 빈소 찾자 눈물

  • 정의당 "文 조화, 정치인으로서 무책임"…'국회 페미모임'도 비판

  • 하태경 "왜 이리 안희정에게만 가혹하냐"…'페미 vs 마초' 프레임

"비가 내립니다. 하늘에서 내린다 싶더니 어느새 눈물이 되어 가슴으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비가 알려줍디다. 난 당신의 눈물을 모르고 당신의 무게를 덜지 못했던 철부지였노라고(중략) 진작에 덜어드릴 걸 그랬습니다. 진작에 안아드릴 걸 그랬습니다."(강정란의 시 '어머니' 중)

지난 6일 오후 10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장례식장 2호실. 약 30분간의 가족회의 후 재개된 조문. 모친상을 당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차분한 모습으로 고인이 된 모친 곁을 지켰다. 고인의 발인을 8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앞서 안 전 지사의 모친 국중례 씨는 지난 4일 오후 숙환으로 별세했다.

이윽고 조문을 마치자 안 전 지사가 한걸음 다가왔다. 이어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두 손을 내밀었다. 손을 맞잡았다. 그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스포츠형 머리에 수척한 얼굴로. 실형을 선고받은 자의 상주 역할. 쉽지 않은 일일 게다. 어머니란 그런 존재다.

당국의 형 집행정지 결정에 따라 일시 석방된 안 전 지사는 자신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 안 전 지사의 형 집행정지 기간은 오는 9일 오후 5시까지다.

◆은사 최장집 보고 눈물 쏟은 안희정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열린 모친의 발인식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눈물의 사모곡.' 안 전 지사는 같은 날 빈소를 찾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김태년 원내대표, 변재일·홍영표·이원욱·강훈식 의원 등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여권 인사들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떨궜다. 안희정발(發) '미투(나도 당했다) 파문'으로 민주당이 위기를 겪은 데 따른 미안함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

조문에 온 변재일·강훈식 의원과 박영선 장관 등은 2017년 5·9 대선의 예선전이었던 민주당 경선 당시 '안희정 캠프'에 몸을 담았다. 안 전 지사는 이들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민주당 8·29 전당대회에 나서는 이낙연 의원은 조문에서 "많이 애통하시겠다"고 하자, 안 전 지사는 "위로해줘서 고맙다"라고 전했다. 최재성 전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김빈 전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 행정관 등도 이날 늦은 오후 빈소를 찾았다.

특히 안 전 지사는 자신의 은사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조문을 오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안 전 지사는 1983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4학년 당시 땐 고려대 운동권 동아리 14개를 통합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출범에도 한몫했다. 1988년에는 반미 청년회 사건으로 국가안전기획부에 체포, 10개월간 수감됐다.

◆연정 추구한 '안희정 빈자리'…일각선 날선 비판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모친 빈소가 차려지면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권 인사들만 조문을 온 것은 아니었다. 손학규 전 민생당 대표를 비롯해 원유철 전 미래한국당 대표 등도 조문했다. 최승재 미래통합당 의원은 조기를 보내 애도했다. 가장 먼저 조문을 온 법륜 스님과 '뽀빠이' 이상용씨도 슬픔을 나눴다. 3년 전 진영논리 타파를 위해 연정 정치를 추구했던 '통합주의자 안희정'의 빈자리가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안희정 미투' 파문이 남긴 숙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조화를 보낸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정치인으로서 무책임한 판단"(조혜민 대변인)이라고 비판했다. 성폭력 가해자에게 조화를 보낸 문 대통령과 여권 인사들이 '책임 정치'를 실기했다는 논리다. 국회 여성 근로자 페미니스트 모임인 '국회페미'도 "조화나 조기 등은 개인 비용으로 처리하라"고 가세했다.

과거 운동권이었던 하태경 통합당 의원은 "안희정에게만 왜 이리 가혹하냐"고 비판했다. 친문(친문재인) 성향 지지자들도 "페미니즘은 엄마도 없느냐"고 힐난했다. 안 전 지사의 형 집행정지 결정을 둘러싸고 '페미니즘 정의당' 대 '더불어마초당' 프레임이 정면충돌한 셈이다. 극한 갈등으로 치닫는 진영논리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고인의 발인을 앞둔 이날 오전 5시 50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많은 이들이 떠나고 몇몇 유가족만 남았다. 안 전 지사는 운구 행렬을 준비할 때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조문객에게 일일이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시계 초점이 오전 6시를 가리키자, 운구 차량은 서울시립승화원을 향해 출발했다.

이틀 뒤 광주교도소에 재수감되는 안 전 지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간밤 꿈속에서 그리운 어머니를 만났을까. 홀로 짊어진 죄책감을 되새겼을까. 아니면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 '정치인 안희정'의 인생을 돌아봤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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