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공수처 '장악' 하려는 여, '무산'시키려는 야 모두 법치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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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 논설고문
입력 2020-07-0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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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당, '공수처장 추천 야당 배제' 법 개정 검토

  • 다수의 힘 앞세운 입맛대로 법 개정은 '입법 독재'

  • 통합당, 위헌 결정 안 나왔는데 출범 거부는 법 무시

[사진=연합뉴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6월 29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미래통합당이 공수처 출범을 방해한다면 공수처법 개정을 포함해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서라도 반드시 신속하게 공수처를 출범시키겠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이 공수처는 위헌적 기구라며 출범을 막겠다고 하자 한 말이다. 민주당은 ‘다수의 힘’을 무기로 법을 자기들 마음대로 고치려 하고, 통합당은 ‘법의 정당성’을 명분으로 자기들 뜻과 다른 법은 무시하려 한다. 두 당의 주장은 공통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두 당 모두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에 ‘7월 15일까지 공수처가 출범할 수 있도록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국회가 대통령 한마디에 고무 도장 팍팍 찍는 통법부냐"면서 "위헌적 요소가 많은 공수처 출범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주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장관은 국회가 탄핵할 수 있는 데 비해 공수처장은 탄핵 대상이 아니다”면서 "국회 견제를 받지 않는 괴물 사법 기구가 대통령 손아귀에 들어가는 상황은 방치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 야당 몫2명 박탈' 불사

공수처가 정상 출범하려면 먼저 공수처장이 임명돼야 한다. 공수처장은 국회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위원 7명 중 6명의 동의로 처장 후보 2명을 추천하면 이 중 1명을 대통령이 지명한다. 추천위원회 7명은 법무부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협회장, 국회 추천 4명이다.

문제는 국회 몫 4명을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 중 여당이 2명, 야당이 2명씩 추천하게 공수처법에 규정돼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교섭단체를 구성한 야당은 통합당뿐이다. 따라서 통합당이 야당 몫 2명을 추천한다. 그런데 통합당이 공수처 출범에 협조할 수 없다고 나왔다. 통합당 몫 2명의 추천을 거부하겠다는 말이다. 통합당이 끝내 추천을 거부하면 추천위원회가 구성될 수 없고 처장 후보 추천도 불가능하다. 공수처가 출범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작년 12월 국회에서 공수처법이 범여권 정당들만의 참여로 통과될 때부터 예견된 일이긴 하다.

통합당이 이처럼 ‘공수처 무산’을 들고 나오자 이해찬 대표가 ‘공수처법 개정을 포함한 특단의 조치’도 불사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이 대표가 말하는 공수처법 개정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예상할 수는 있다. 통합당 협조가 없이도 공수처를 출범할 수 있게 하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예를 들어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 추천권 조항에서 ‘여당 2명, 야당 2명’ 은 없애고 ‘국회 4명’만 그대로 두는 방안이다. 그러면 민주당이 과반 의석의 힘으로 4명을 모두 추천할 수 있다. 또는 ‘여당 2명, 야당 2명’ 조항은 그대로 두되 단서를 달아 ‘교섭단체가 위원 추천을 거부하면 국회의장이 다른 교섭단체에 위원 추천을 요청할 수 있다’고 하는 방식이다. 통합당이 추천을 거부하면 대신 민주당에 추천권을 주는 것이다.

어느 방식으로든 공수처법을 개정하면 민주당이 추천위원회 위원 4명을 모두 추천할 수 있게 된다. 야당을  배제하고 민주당 힘만으로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공수처장 후보를 여당 마음대로 추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 말이 통합당을 압박하기 위한 협상 카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통합당이 공수처 출범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민주당은 정말로 공수처법 개정에 나설 수도 있다. 통합당의 결사 반대에도 국회 법사위원장을 민주당 단독으로 선출한 전례가 이미 있다.

여기서 중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민주당이 공수처법을 개정해서 야당을 공수처장 임명 과정에서 배제한다면 법치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형식적으론 법치주의라고 할 수 있다. 국회에서 합법적인 과정과 절차를 거쳐 만든 법은 따르는 것이 형식적 법치주의다.

◆야당 배제하면 공수처 '정치적 중립성'은 물거품 

형식적 법치주의는 존중돼야 한다. 국회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법을 만들거나 고치면 그 법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제정 또는 개정된 것이다. 그런 법을 따르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도 부합한다. 형식적 법치주의는 법과 제도에 의한 통치를 가능하게 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장치다.

그러나 형식적 법치주의만 너무 내세우면 실질적 법치주의가 훼손될 수 있다. 형식적 법치주의가 법의 제정 과정과 절차만 따지는 것에 비해 실질적 법치주의는 형식적 요소를 고려하면서도 동시에 법의 내용을 따진다. 법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상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법의 내용도 정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합법적인 과정과 절차를 거쳐 만든 법이라도 그 법의 내용이 법의 본래 목적이나 보통사람들이 느끼는 정의 감각과 너무 동떨어지면 정당성을 잃어 실질적 법치주의에 위반된다.

공수처를 만든 본래 목적은 정권 눈치를 보지 않는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수사 기관의 창설이다.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수처장 임명 과정에 야당의 협조와 참여를 절대적 요건으로 했다. 야당에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 2명 추천권을 주고, 추천 위원 7명 중 6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처장 후보가 될 수 있게 한 게 그것이다. 야당이 반대하면 누구도 공수처장 후보가 될 수 없다. 야당에 공수처장 추천권과 거부권을 모두 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한 이유는 여당이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을 마음대로 공수처장에 임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야당이 동의할 만한 정치적 중립성을 가진 인물이 공수처장이 돼야 공수처의 정치적 편파성을 피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야당의 공수처장 추천권과 거부권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인 것이다.

그런데 이해찬 대표 말대로 공수처법을 일방적으로 개정해 야당을 배제하면 야당에 추천권과 거부권을 준 본래 취지는 무너지고 만다.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을 여당 뜻대로 공수처장에 임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공수처를 만드는 것은 당초 정부 여당이 내세운 공수처 설치 명분과 맞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보통사람들이 느끼는 정의 감각과도 맞지 않는다. 중립적인 공수처를 만들려면 공수처장부터 중립적 인물을 임명해야 한다는 것이 보통사람들이 느끼는 정의 감각이다. 민주당은 공수처의 신속한 출범이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신속한 출범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당초의 설립 목적과 취지에 맞는 공수처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통합당이 협조를 거부한다고 해서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법을 고치고 ‘법대로’를 외친다면 법 만능주의, 다수당의 횡포, 입법 독재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형식적 절차적으론 합법이지만 실질적 내용적으론 불법이 될 수 있다. 공수처뿐 아니라 모든 국정 문제가 다 마찬가지다. 다수의 힘을 가졌다고 해서 자기들 하고싶은대로 법을 만드는 것은 온전한 법치주의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법의 지배’이되 ‘좋은 법의 지배’가 진짜 법치주의다.

◆통합당, 공수처 출범 협조하되 필요시 거부권 행사를

그렇다고 공수처 출범 자체를 막으려는 미래통합당의 처사가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통합당은 공수처가 위헌적 기구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낸 바 있다. 통합당 주장은 공수처법이 정상적 절차를 거쳐 통과됐다는 점에서 형식적 법치주의에는 맞을지 몰라도 그 내용이 부당해서 실질적 법치주의에는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위헌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이상 자기들 뜻과 다르다고 해도 합법적 절차를 거쳐 제정된 법은 존중하는 것이 또한 법치주의다.

헌재 결정도 나오지 않았는데 공수처법이 부당하다며 출범 자체를 막는 것은 실질적 법치주의를 내세워 형식적 법치주의를 외면하는 일이다. 이는 민주당이 형식적 법치주의를 앞세워 실질적 법치주의를 무시하려는 것과 똑같은 잘못이다. 어떤 법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무시한다면 법 질서는 지켜질 수 없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내가 옳다고 여기는 법만 지키겠다’고 하면 사회는 혼란과 무질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를 막기 위해 둔 제도가 헌법재판소다. 법이 부당한지 아닌지를 각자 판단하지 말고 헌재 결정에 따르라는 것이다.

통합당은 헌재 제소와는 별개로 공수처 출범에 협조하면서 친 정권 인물이 공수처장이 되지 않도록 거부권을 행사하면 된다. 그게 현실적이고 효과적으로 정부 여당을 견제하는 방법이다. 일단 공수처법을 따르되 만약 헌재에서 위헌 결정이 나오면 법을 개정하는 것이 형식적, 실질적 법치주의를 모두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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