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출결 체크하는 대한민국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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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입력 2020-06-1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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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일하는 국회법’ 초안은 여러 면에서 주목을 끈다. 민의를 받들어 제대로 일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는 점에선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국회 수준이 이 정도였나 하는 회의감을 갖게 한다. 지금까지는 법이 없어서 일을 못했나 하는 자괴감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정작 일하는 국회를 위한 핵심 내용은 누락됐다는 아쉬움이다.

세비 삭감을 누락시킨 게 첫째다. 또 국민소환제가 실현될지 의문이다. 사람은 신분이 위협받고 경제적 불안에 노출되면 긴장한다. 신분 박탈과 경제적 불이익은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정치 혐오감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세비 삭감을 초안에 담지 않았다.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는다면 착각이다.

민주당이 제시한 불출석 의원에 대한 페널티를 보자. 먼저 상임위 회의 출석 상황을 국회 홈페이지에 공지하도록 했다. 상임위원장은 월 1회 국회의장에게 소속 위원들의 출결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또 국회의장은 회의를 제대로 열지 않는 상임위에 대해 3단계에 걸쳐 주의와 경고를 한 뒤, 교섭단체 원내대표에게 위원장과 간사 교체를 요청할 수 있다.

오죽했으면 이렇게까지 할까 싶다. 초등학생들도 이런 수준 낮은 통제를 하지 않는다. 아마 다른 나라 국회의원들이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일하는 국회법’을 만들고 출결 상황까지 보고할 지경에 이른 게 우리 국회 현주소다. 어쩌면 ‘일하는 국회법’은 낯 뜨겁다. 차라리 이런 유치한 페널티 규정보다 세비 삭감과 국민소환이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민주당은 4·15 총선 당시 '일하는 국회'를 만들자며 세비 삭감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불출석 일수를 따져 10∼20%는 10%, 20∼30%는 20%, 30∼40%는 30%를 삭감하는 내용이다. 국회의원 세비는 월 1265만6640원씩 연간 1억5187만9780원이다. 민주당 공약대로라면 21대부터는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삭감해야 맞는다. 그런데 21대 국회도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곳으로 남을 전망이다.

주지하다시피 20대 국회는 국민들에게 강한 잔상을 남겼다. 농성, 투쟁, 삭발, 단식, 그리고 잦은 파행. 2019년 여야가 합의해 본회의를 개회한 것은 3월 임시국회뿐이다. 1월과 4월은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었다. 또 2월과 5월은 아예 소집조차 못했다. 예산안 또한 4년 내내 법정시한을 넘겼다. 법안 처리도 형편없다. 4년 동안 제출된 법안은 모두 2만4000여건. 이 가운데 입법은 35.7%, 8800여건에 불과했다. 63%는 논의조차 못한 채 폐기됐다. 17대 58%, 18대 55%, 19대 45%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지난해 민주당 박찬대 대변인은 “국민들 보시기에 국회 블랙코미디가 개그콘서트보다 더 재미있다고 한다. 여야를 넘어 반성이 필요하다”며 자성을 촉구했다. 짐이 되는 국회에 대한 반성문이지만 구속력은 없다. 세비 삭감과 함께 국민소환을 현실적인 처방으로 보는 국민들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17대 이후 국민소환제는 발의와 폐기를 반복해왔다.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고 위임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 탄핵을 규정하고 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일지라도 국회와 헌법재판소 의결을 거쳐 파면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또한 마찬가지다. 2007년부터 시행된 주민소환제에 의해 임기 중이라도 파면할 수 있다. 고위 공직자도 탄핵 대상이다. 그런데 선출직과 임명직을 가리지 않고 유일하게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국회의원이다.

국민소환제는 일하는 국회를 위한 실제적인 방안으로 검토돼 왔다. 현행 제도 아래서는 아무리 비판을 받아도 법원 판결이 아니라면 임기 중인 국회의원을 끌어내릴 수 없다. 같은 선출직인 지자체장, 지방의원과 비교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 직무를 게을리하고, 막말과 몸싸움을 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20대 국회에서도 국민소환 관련 법안은 5건 발의됐다. 하지만 진지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는 현실화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열린민주당은 당론 1호 법안으로 국민소환제를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정문 의원도 대표 발의함으로써 불을 댕겼다. 국민소환제와 세비 삭감은 불편하지만 현실적인 처방이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서 국회도 예외일 수 없다. 나아가 모든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한다. 국민소환과 세비 삭감이 아니라도 일하는 국회라면 다행이다. ‘일하는 국회’를 넘어 ‘제대로 일하는 국회’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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