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칼럼] 피치의 경고, 무시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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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입력 2020-06-1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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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회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경제가 전시상황이므로 재정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어도 OECD 평균보다 낮다고 평가하고 전례 없이 팽창하고 있는 재정지출에 따른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선진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국가부채비율과 포괄범위가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국가채무(government liability)는 한국의 ‘국가재정법’에 의해 국가가 직접적으로 상환의무를 지는 좁은 의미의 채무만을 포함하고 있다. 반면 국가부채(government debt)는 국제통화기금(IMF) ‘재정통계 매뉴얼’에서 권고하고 있는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로, 국가채무에 국가보증채무, 공공기관부채 중 국가기능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 공무원·군인연금 장기충당부채와 중앙은행 부채를 포함하고 있다. 대부분의 OECD 국가는 이 기준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두 지표를 단순 비교해 한국의 재정 사정이 문제가 없다고 하는 주장은 언어도단이다.

금년에 한국은 지출이 전례 없는 슈퍼예산 512조원에다 추경도 벌써 3차례나 편성해 59조원에 이르고 있는 반면, 세수는 경기부진으로 적게 걷혀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12조원의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GDP에 대한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도 -5.8%에 이르러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유로존 회원국이 되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수렴조건으로 위험수위로 간주되고 있는 -3%의 두 배 가까이 확대되고 있다. OECD 평균은 -0.3%다.

재정수지가 악화되면 대외거래 면에서 경상수지가 악화된다. 이를 쌍둥이 적자라고 한다. 미국처럼 기축통화국인 경우에는 재정적자로 경상적자가 나는 경우에도 기축통화를 발행해서 충당하면 된다. 그러나 한국 같은 비기축통화국은 재정적자가 경상적자로 이어지는 상황이 심각해지면 원화가치가 떨어지고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투자자금이 나가면서 외화유동성이 부족해서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최근 들어 한국의 재정적자가 급속히 확대되면서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있는 데 유의해야 한다.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많이 발행하는 경우에는 국채가격이 하락해 국채수익률은 올라가고 이에 따라 원리금 상환부담도 증가한다. 국채수익률 상승은 시중금리를 올려서 기업투자를 위축시키고 기업부채의 원리금상환부담도 가중시킨다. 여러 가지로 경제에 부담을 주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최근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나빠지면 국가신용등급을 하락시킬 수도 있다는 경고를 날렸다. 국제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하락경고를 예사로 들으면 안 된다. 1997년 외환위기 전에 국제신용평가사의 연이은 신용등급 하락이 있었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3차 추경까지 포함할 경우 사상최대규모인 840조원에 이르러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금년 말 43.5%로 전망되고 있다. 그동안 마지노선으로 간주되어 온 40% 선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2016년 말에 627조원이었으므로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 213조원이나 폭발적인 증가를 기록하고 있다.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는 필자의 추정으로는 2014년에 이미 100%를 넘어서고 금년 말에는 123%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로존 수렴조건인 60%를 넘어선 것은 물론 미국에서 위험수위로 간주해 ‘예산통제법’으로 통제하고 있는 100%를 크게 넘어서고 있는 위험수준이다. 미국은 2011년 국가부채비율이 100%를 넘어서자 추가적인 재정지출은 상하 양원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도록 한 예산통제법을 제정해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OECD 평균 국가부채비율은 83%로, 한국은 OECD 평균보다 40% 포인트나 높은 수준이다.

국가부채가 과도하면 재정정책의 여지가 없어져 경기가 어려워지는 경우에도 대책이 없어 장기침체를 초래하게 된다. 때문에 재정을 위기의 방파제라고 한다. 심할 경우 세수로 이자 갚기도 힘들어 신규 국채발행이나 차환발행이 어려워지는 ‘부채의 함정(debt trap)'에 빠지게 되어 국가부도(sovereign debt crisis) 위험이 커진다.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의 경험을 보면, 국채이자부담이 GDP의 10~15% 수준에 이르면 부채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한국은 곧 이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로 경제가 나빠져 대량기업부도와 대량실업의 위험이 지속되고 있다. 재정의 역할이 중요한 때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위기의 터널을 지난 후 곧바로 재정위기가 온다면 더욱 큰 문제이므로 알뜰하게 써야 한다. 2011년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었던 남유럽의 경우 2008~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GDP에 대한 국가부채비율이 아일랜드는 20%, 스페인은 40%, 포르투갈은 60% 수준이었다. 그리스, 이탈리아만 100% 수준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국가부채비율이 급증했다. 2010년에 그리스 140%, 이탈리아 120%, 포르투갈·아일랜드 90%, 스페인은 60% 수준까지 급등했다. GDP에 대한 재정적자비율도 2006~07년 중에는 그리스만 -5%를 넘어서고 있었을 뿐 나머지 국가들은 대부분 -3% 미만 수준이었다. 그러나 2008~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재정적자비율이 급격히 악화되어 2010년에는 모두 -7~-10%로 악화되고, 아일랜드는 -30%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급격히 악화되었다. 마침내 이들 남유럽국가는 2011년에 일제히 재정위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추락했다.

일본의 경우에는 1980년 후반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국가부채가 크게 증가했다. 국가부채/GDP 비율이 1990~91년만 하더라도 60%대에 불과했으나 1993년 좌파정부가 들어선 후 재정지출을 급속히 확대하면서 국가부채비율은 급증하기 시작했다. 1997년에 처음으로 100%를 기록한 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2009년에 200%를 상회하고, 2018년에는 238%를 기록하며 OECD 국가 중 가장 부채비율이 높은 국가가 되었다. 일본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재정정책을 쓸 수 없게 되면서 1992~2011년 20년간 평균 0.6%의 저성장을 지속하는 ‘잃어버린 20년’을 기록하였다. 남유럽과 일본의 경험은 '위기 때라고 마구 재정을 쏟아붓기만 하면 곧바로 재정위기가 온다'는 엄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 알뜰하게 재정을 쓰면서 위기의 터널을 통과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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