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뉴스인문학] 내가 나를 못믿게 되는 심리테러, 가스라이팅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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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20-06-0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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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그 사람 변명을 해주고 있지? 잉그리드 버그만의 절규
영화 '가스등'과 로빈 스턴 '가스등 이펙트'···조종당하는 당신의 비밀
200년 된 가스등의 기적과 한국 모더니즘의 전설이 된 김광균 '와사등'



얼마 전 점심을 먹다가 동료에게서 '가스라이팅'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요즘 방송에서, 혹은 인터넷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 중의 하나다. 어쩐지 음산하게 들리는 이 말은, 분위기로 사람을 협박하는 심리적 기만술을 가리킨다.

1. 가스라이팅이란 말의 출처

얼핏 들으면 가스라이터(gaslighter)와 상관이 있어 보인다. 그런 상황을 언젠가 본 것 같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사내가 플라스틱 가스라이터의 불꽃심지를 돋워 켜면서 공포에 질린 여자의 얼굴 근처에 갖다 대면서 위협을 가하는 장면.

네 손가락으로 가스라이터를 비스듬히 잡고 머리 부분 한켠에 붙은 치차(齒車) 형상의 둥근 점화장치를 엄지로 한가로운듯 드륵드륵 내려돌린다. 불을 켰다 껐다 하며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암시를 주는 것이다. 어둑한 밀폐 공간에서 라이터가 잠시 켜졌을 때 비치는 여자의 일그러진 얼굴과 확대된 동공이 인간 내면 속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의 근원적 형상이 그걸 지켜보던 나의 뇌리에 박혀 있다.

그것도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라 할 수 있지만, 가스라이팅이란 말이 생겨난 출처는 아니다.

가스라이팅은 영국의 연극 '엔젤 스트리트(Angel Street)'에 등장한 플롯으로, 대중이 접하게 된 것은 영화 '가스라이트(Gaslight)'였다. 1940년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영화를 조지 큐커(George Cuker 1899~1983) 감독이 1944년 리메이크를 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우리에게는 '가스등'이란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 이 영화에서 열연한 잉그리드 버그만(폴라 역)은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1944년 영화 '가스등'의 한 장면.]



2. 영화 '가스등'과 가스라이팅 피해자 폴라

영화 '가스등'에는 나쁜 남자 하나가 등장한다. 그레고리 앤턴(Gregory Anton, 샤를르 브와이에 역)이다. 이 남자는 런던에서 한 여자를 살해한다. 오페라 가수 앨리스 알퀴스트(Alice Alquist)다. 앨리스의 집에 있던 보석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찾지 못했다. 이 살해 장면을 본 어린 아이가 있었다. 앨리스 언니의 딸(질녀)인 폴라(Paula) 알퀴스트였다. 혈혈단신이던 이모가 죽자, 폴라가 그 집을 상속한다. 영화는 10년 뒤로 건너온다. 폴라는 이탈리아로 와서 성악공부를 하고 있다.

이곳에 나쁜 남자 그레고리가 등장했다. 폴라는 피아니스트로 나타난 이 남자가 이모를 죽인 그레고리인 것을 모른다. 그레고리는 폴라에게 대시를 해 두 사람은 결혼을 한다. 아내가 있었던 그레고리에겐 위장결혼이었다. 흑심이 있던 그레고리는 런던의 손튼광장이 보이는 저택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곳은 폴라의 소유이자 이모가 살던 곳이었다. 아, 마침 제가 그곳에 집을 가지고 있어요! 행복에 들뜬 폴라는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런던으로 와서 살게 된다. 그레고리는 그 저택의 3층 다락에서 아직도 찾지 못한 보석수색을 계속한다. 여기에 가스등이 등장한다. 그레고리가 보석을 찾느라 못질까지 되어 있는 은밀한 방에서 가스등을 켜게 되면, 아래층의 조명이 희미하게 된다. 가스량이 정해져 있었기에 밝기로 용량을 조절했던 까닭이다.

폴라가 이 얘기를 하자, 그레고리는 가스등의 밝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당신의 정신이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시계를 훔치고 그림을 슬쩍 감춰놓은 뒤 그것들이 사라졌다고 폴라가 말하면 다시 가져다 놓은 뒤 그녀가 자신의 판단과 감각을 스스로 의심하도록 만든다. 내가 정말 이상한가 봐요. 난 현실과 몽상을 구분하지 못해요. 폴라는 그렇게 믿고 말았다.
 

[영화 '가스등'의 한 장면.]



3. 로빈 스턴의 '가스등 이펙트'

그레고리에게 당한 폴라의 '정신적 감금' 상태가 바로, 가스라이팅의 의미가 되었다. 영화 '가스라이트'의 폴라처럼 당하는 것이다. 조금 어렵게 말하면 상황 조작으로 타인에게 자신의 판단에 대한 의심을 불러 일으키는 학대행위이다. 현실감과 판단력이 흐려지게 해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범죄다. 학대자는 이를 통해 상대를 끊임없이 통제하면서 학대 관계에서 떠날 수 없도록 한다. 자기 판단보다 학대자의 판단이 중시되는 정신적 황폐화가 종속관계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팅이란 말을 부활시킨 것은 2008년 '가스등 이펙트'라는 책을 낸 심리분석가 로빈 스턴(Robin Stern)이었다. 그는 가스라이팅 피해자의 증상을 이렇게 열거하고 있다.

- 내 말과 행동을 자꾸 뒤돌아보며 자책한다.
- 내가 너무 예민한가, 하루에도 몇번씩 자문한다.
- 종종 혼란스러우며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나는 늘 상대에게 사과하고 있다.
- 내 삶엔 복받은 것이 많은데 왜 행복하지 않은 건지 이해할 수 없다.
- 나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변명하고 있다.
- 나는 그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피하려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 나는 간단한 결정조차 하기 힘들다.

이런 마음의 징후들이 가스라이팅의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고 로빈 스턴은 말한다. 폴라의 경우처럼 상담과 구조가 필요한 경우라는 것이다.

 

[시인 김광균[사진 = 대산문화재단]]



4. 김광균의 시 '와사등'과, 가스등의 시대

가스라이팅이란 말 때문에, 영화는 심리학적인 고전이 되었지만 이 영화가 당시의 사람들을 매료시킨 것은 기술문명에 대한 열광 때문이기도 했다. 가스를 연료로 사용해 어둠을 밝히는 경이적인 기술을 영화 속의 핵심 소재로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그것이 범죄로 활용되는 상황을 설정한 것은 기술진보에 대한 환호의 이면 같은 두려움을 담았다고 할 수도 있다. 새로운 것들은 자주, 불안과 함께 다가오지 않던가.

국내에서 가스등은, 인상적인 시 한편으로 깊이 각인됐다. 김광균의 시 '와사등'이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이 출간된 것은 1939년이다.

김광균이 이 시를 쓸 때에는 영화 ‘가스등’이 나오지 않았다. 영화는 1944년에 개봉됐으며 원래 1940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것을 미국 MGM사에서 새롭게 제작한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김광균의 시집보다 늦게 나왔다. 이 영화는, 원작인 연극이 있었으나 제목도 다른 작품이었으니 우리나라의 시인이 그것을 참조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가스라는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때였기에 일본식 차음어인 와사(瓦斯)를 썼다. 이 무렵 아마도 유럽에서 일본으로 먼저 도입된 가스등 기술이 한국에 시범적으로 선을 보였을 가능성이 있다. 기적의 불빛이었을 것이다. 김광균은 일제 말기로 치닫는 어둠의 시대에 이 불빛을 보면서 식민지 시인의 휘청거리는 내면을 잠깐 슬프게 조명했다. 빈 하늘에 걸려있는 걸 보니 가로등으로 쓰인 가스등이다. 와사등 아래서 방향감각을 잃은 채 서 있는 그는 누구인가.

고흐의 ‘수차(水車)가 있는 가교’를 처음 만나고 눈알이 빠지는 듯한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던 시인 김광균은 국내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였다. 현대문명이 예술과 만나는 접점을 만들어냈다고 할까. 당시 많은 시들이 자연에 매달려 있을 때에, 그는 시어로서는 낯선 ‘문명적 낱말’들을 가져와 썼다. 그 시어들은 신문에서나 보이던 유럽의 풍경들을 묘사하는 낱말들이었다.

그의 시가 참신했던 것은 익숙한 것으로 낯선 것을 비유하지 않고, 낯선 것으로 익숙한 것을 비유했기 때문이다. 문명에 대한 호기심들이 증대하고 있던 무렵인지라 이런 ‘전도된 비유’가 그를 돋보이게 했을 것이다. 김광균은 '와사(瓦斯)'라는 신문물의 낱말을 처음으로 시 속에 넣은 일에 자부심을 느꼈을까.
 

[수차가 있는 가교(겐넵의 물레방앗간), 고흐 1884.]



5. 해방전후에 들어온 국내 가스등

석탄가스가 등불에 쓰이게 된 것은 17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인 W. 머독이란 사람이 이런 조명을 만들어 보급했다고 한다. 1812년에 런던에서 가스등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파리는 좀 늦어 1919년부터, 그리고 독일의 하노버에서는 1925년부터 이 등불이 밤을 밝혔다. 영화 ‘가스등’에는, 이 등불에 관한 한 100년의 앞선 역사를 가진 영국의 자부심이 서성거린다. 영국에서는 가로등 뿐만 아니라, 집안의 등불도 가스로 켰다. 휴대용 용기에 담긴 가스가 아니라. 요즘의 도시가스처럼 공동으로 사용하는 배관시설을 통해 공급되는 가스였다. 영화에서는 이 가스등의 특징이 중요한 스토리 장치로 쓰인다.

영화 ‘가스등’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45년 해방 전후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스등 가로등을 경험했고, 김광균의 ‘와사등’을 읽었던 사람들이라, 영화 속 풍경들은 더욱 실감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전등에 밀려 가스등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가스등이 내는 따사롭고 희부윰하고도 처연한 색광(色光)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위어갔다. 이 영화는 유등(油燈)과 전등 사이에 잠깐 불을 밝히던 20세기 초반의 아슴한 개명(開明)을 증언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등불은 주인공인 폴라가 문제의 진상에 다가가는 개안(開眼)의 상징 장치다. 한 나쁜 남자를 사랑하는 역을 맡아 열연했던 잉그리드 버그만을 세상에 널리 알린 영화 ‘가스등’은 그녀의 기억처럼 어둠에 둘러싸여 있다.
 

[영화 '가스등'의 한 장면.]



6. '가스등'은 의식과 몽환 사이의 조도(照度)

영화 '가스등'으로 좀 더 가까이 들어가보자. 폴라는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배우고 있는 여인이다. 그녀는 10년전 런던의 손튼 광장의 한 저택에 살았다. 그의 유일한 혈육이던 이모 앨리스 엘퀴스트는 유명한 오페라 가수였다.

안개 속으로 폴라가 울먹이며 뛰쳐나왔던 그날. 그녀의 기억 속에선, 안개가 끊어진 풍경을 토해내는 것처럼, 그날의 사건들이 어지러운 불연속선으로 토막나 있다. 이모는 살해 당했다. 어린 폴라는 그것을 목격했고 사건은 곧 안개 속에 덮였다. 폴라는 이모의 저택을 상속받았지만, 악몽을 이기지 못해 이탈리아로 떠나왔다. 10년 쯤이면 기억은 대개 망각에 진다.

그때 그녀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성악선생 집에서 반주를 맡던 피아니스트 그레고리다. 그레고리와 사랑에 빠진 폴라는 그녀와 결혼을 한다. 그때 이 남자는 말한다. “나의 꿈은 런던의 손튼 광장이 보이는 저택에서 당신과 함께 사는 거예요.”

이런 우연이 어디 있는가. 마침 폴라의 저택이 거기에 있지 않은가.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이미 수상한 기분을 느끼지만, 폴라는 그 우연을 행복의 낌새로 받아들인다. 내내 악몽의 산실이었던 그 집으로 이 행복덩어리를 데려가 구석구석 사랑의 온기로 채우리라.

폴라가 그레고리를 사랑한 건, 이 남자가 철저히 폴라를 속였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의 나쁨을 알게된 뒤 폴라의 행동은 어떻게 바뀌었던가. 의자에 꽁꽁 묶인 채 자신을 풀어달라고 애걸하는 남편에게 그녀는 “난 미친 여자인데 어떻게 당신을 풀 수 있겠어요”라고 말한다. 남편 그레고리는 오로지 폴라의 저택에 숨겨진 보석을 찾기 위하여 위장결혼을 했다.

그레고리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그는 10년전 폴라의 이모를 죽인 사람이다. 그때 그는 그 집에 있었던 진귀한 보석을 찾아내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집이 비워지고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자, 이번에는 그녀의 질녀인 폴라에게 접근해서(이탈리아의 성악선생 집에 피아니스트로 취업까지 해서 말이다.) 결혼을 한다. 그녀를 유혹해 런던의 그 집으로 돌아온 뒤 그는 보석 수색 작업을 계속한다.

그레고리는 다른 곳에 이미 아내가 있는 사람이다. 이 남자는 폴라를 정신병으로 몰아 다른 곳으로 보내기 위해 끊임없이 그녀를 속인다. 현실과 몽상을 구별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지갑 속에다 슬쩍 자신의 시계를 넣어놓거나 벽에 걸린 그림을 숨겨놓은 뒤 그녀가 한 짓으로 몰아 추궁한다.
 

[영화 '가스등'의 한 장면.]



7. 누군가 어두워지면 누군가 밝아진다

이런 것들이 정의의 판관(判官)인 브라이언 카메론(조지프 코튼)에 의해 들통난다. 브라이언은 폴라의 이모인 오페라 가수 앨리스의 열성팬이자 경찰이었다.

브라이언이 그레고리의 행각을 알게된 결정적인 단서는 가스등에 있었다. 한 집에 공급하는 가스량이 일정했기에 한 곳에서 가스등을 켜면 다른 곳의 가스등의 밝기가 줄어든다. 폴라는 더듬거리며 악마가 마치 등불을 만지기라도 하는 듯이 공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현실과 꿈을 구별하지 못해요. 그래서 누군가가 심지를 돌려 불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것처럼 느끼는 몽환증세를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누군가가 어디서 불을 켰다는 ‘현실’을 읽어내고, 문에 못질을 한 3층 다락에 이모 앨리스의 물건들이 있음과 그레고리의 정체를 연계시킨다.

‘가스등’에서 그레고리가 집을 나와 안개 속으로 걸어가던 장면, 피우던 담배를 내던지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 집요한 탐욕과 음울한 삶이 안개 속 풍경처럼 명멸하는 이미지 장치로 이보다 더 실감나는 것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가스라이터의 원조는 태연스레 마음과 마음으로 굽이치는 골목들을 활보하고 있었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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