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국회는 ‘소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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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입력 2020-06-0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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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




21대 국회가 개원하기 전부터 ‘윤미향 파동’으로 여당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심각한 분열로 끌고가고 있다. 여당은 의식적으로 ‘일하는 국회’를 내세우면서 이 파동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려 하지만 자진 사퇴를 바라는 국회의원이 양정숙 의원에 이어 한 명 더 늘어난 사실에 곤혹스럽다.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면 출당시키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또 한 번 기억력 테스트를 받게 되었다. 특히 윤미향 의원의 경우에는 ‘타락한 정의’라는 현실을 놓고 지지자와 반대자가 서로 ‘타락’과 ‘정의’라는 한쪽 끝만을 부여잡고 소모적인 세 대결을 하고 있는 양상이다. 20대 국회가 ‘식물국회’와 ‘동물국회’를 모두 경험한 국회로 역사에 기록된다면, 21대 국회는 두 명의 ‘식물국회의원’을 배출한 국회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당선된 국회의원의 적격성 여부를 둘러싸고 이처럼 새삼 논란이 이는 이유는 후보자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이는 다시 ‘인재 영입’을 명분으로 명망가를 서둘러 후보자로 내세우는 정당들의 ‘무임승차’ 관행 때문이다. 이 관행은 김대중 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김대중 대통령은 ‘준비된 대통령’이었지만 새정치국민회의는 전혀 ‘준비된 여당’이 아니었다. ‘젊은 피 수혈’을 이유로 청년학생운동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세력을 영입하여 진용을 확장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확고한 지도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 신진세력은 당시 외환위기 극복 국면에서 별다른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지 않아도 여당으로서 역할을 그럭저럭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회가 행정부의 시녀라는 오명은 벗었지만 국회 본연의 입법활동과 행정부 및 사법부의 견제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은 아직 없다. 지역주의가 강할수록 국회의원의 자질과 역량은 필요한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최소한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 국민의 억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치라는 사실도 모르는 정치인들이 계속 양산되고 있다.

국회의 무능은 결국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초석인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무능한 국회(의원)가 존재감을 과시하다 보니 불필요하거나 부적절한 발언을 하여 정국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정쟁을 불러일으키기 일쑤다. 그래서 정쟁이 확대되면 국회는 파행을 겪게 되고 ‘식물국회’, ‘동물국회’라는 국민의 비난을 받게 된다. 그래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서도 국회의원 정수는 늘리지 못했다.

국회의원이 무능하고 게을러도 입법부로서 국회가 돌아가는 비결은 있다. 소준섭 박사가 체험하면서 분석한 국회의 구조를 보면, 국회(의원)의 입법권이란 사실상 형식일 뿐이며 국회의원의 이름으로 통과되는 법안도 입법공무원인 전문위원의 검토 의견이 절차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시험권력’이 ‘선출권력’의 활동을 조종하는 구도로 되어 있다. 이로써 3부 모두 시험권력들이 장악하고 서로 경쟁하는 구도가 되어 있다. 이제 국회의원의 독립적인 활동은 줄어들고 정치에서도 표창원이나 금태섭과 같은, ‘양화를 악화가 구축’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여당이 되면 전문위원의 검토 의견에 의존하게 되고, 야당의원은 역량 부족으로 검토 의견을 비판할 수 없다. 전두환 정권이 국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도입된 전문위원 검토제도가 이제는 의원들의 편안한 의정활동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삼권분립의 무력화에 대응하는 해결책은 다른 선진국들처럼 정당마다 정치인을 일찍부터 양성하는 길밖에 없다. 잘 알려진 인사를 영입해서 손쉬운 득표에 활용할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정당정치 활동을 통해 역량은 물론 품성, 도덕성이 검증된 ‘직업정치인’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간을 두고 유권자는 물론 동료 정치인들의 검증을 받게 된다. 고위 선출직일수록 영입이 아니라 양성의 길을 택해야 한다. 그래야 ‘인재’인 줄 알고 영입했다가 ‘악재’에 시달리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정치인과 행정가(관료)는 분명히 다르다. 특히 행정부와 사법부의 고위공직자 출신들은 3부의 유착을 방지하고 견제를 실질화할 뿐만 아니라 입법부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피해야 한다. 상이한 역할은 당연히 상이한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수반하므로 상이한 사람이 수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삼권분립에 기초한 ‘견제와 균형’의 중심은 법을 만드는 입법부이다. 국회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국회는 범죄자나 범죄피의자가 도피하는 삼한시대의 ‘소도’가 아니다. 국민은 알고 있다. ‘숨는 놈이 도둑’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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