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칼럼] 한국경제, 가짜회복(phantom recovery)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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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팀장
입력 2020-06-0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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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팀장]



코로나19가 국내외 경제를 미증유(未曾有)의 위기로 내몬 지 반년이 지나면서 발표되는 대부분의 경제 지표는 사상 최악, 외환위기 이후 최저 일색이다. 경기 전망은 부정적인 것이 대세이지만 바이러스 확산의 진정세를 전제로 한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경기 전망 희망론자들이 가장 기대고 싶은 부분은 위기 대응을 위해 발표된 전례 없는 경기 부양 대책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책들이 단기적인 경기 반등만을 노린 것이라면, 이번 위기를 겪으며 시도할 수 있는 사회·경제의 업그레이드 기회를 무산시키는 아쉬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번 위기를 대하는 정부의 대응은 매우 신속하다. 재정지출 규모도 과거 대비 크게 늘어 한편으로는 재정 건전성을 걱정할 정도이다. 추가경정예산 규모만 보더라도 6월 편성이 예상되는 3차 추경을 포함할 경우, 코로나 추경은 약 50조원(1차 추경 11조7000억원, 2차 추경 12조2000억원, 3차 추경 약 30조원 예상)이 된다. 이는 IMF 외환위기 당시의 38조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34조원을 뛰어넘는 규모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을 비롯한 연구기관들이 추정한 우리나라의 재정승수가 대략 0.5라고 하니, 50조원 추경 집행에 따르는 실질 GDP 증가분은 25조원이 된다(1~2차 추경의 세출 추경 18조8000억원에 3차 추경 대부분이 세출 추경이라는 가정하에). 2019년 국내 실질 GDP가 1850조원이었음을 고려하면 25조원 더 증가함에 따르는 경제성장률 제고 효과는 1.4% 포인트나 된다.

내용 측면에서도 처음 도입하는 것이 있다. 모든 가구를 대상으로 현금을 지급한다거나 한국은행이 비우량 기업의 회사채를 매입할 수 있게 한 특수목적기구를 설립한 것이 이번 위기에 처음 도입된 정책이다. 이미 시행되고 있었던 채권시장안정펀드나 금융안정특별대출제도는 우량 회사채·기업어음만을 매입 대상으로 했었다. 때문에 유동성이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신용도가 낮은 비우량 회사는 대출하기 힘들었다. 이제는 이들 회사도 숨통이 좀 트일 수 있게 되었다. 전 국민 현금 지급으로 지급된 돈은 그것이 정말 필요로 했던 분들께는 매우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일단 월급이 계속 나오는 필자도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작지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경기 부양 대책으로 회복세가 어느 정도 나타나기는 할 것이다. 문제는 그 회복이 상반기에 겪었던 큰 폭의 마이너스에 대한 기저효과에 불과한 ‘가짜회복(phantom recovery)’이라는 점이다. 경쟁력을 높일 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낮아지는 성장 잠재력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이 없이 행해지는, 단기적인 땜질인 유동성에 의존한 경기 회복이자 수치상의 가짜회복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서 필자처럼 노력하지 않고 얻게 된 현금을 그리워하는, 즉 복지에 의존하는 심리가 떠나지 않을 것 같다는 점도 우려된다.

복지. 중요하다. 특히 국가의 정체성 확립, 경제적 번영, 민주화 확대 등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 성장 과정을 돌이켜볼 때, 지금은 ‘분배’를 고민할 시점이다. 어떤 분배가 정의로운 분배인지, 그리고 지속 가능한 분배인지 방향성을 확립해야 하는 시점이다. 지속 가능하다라는 것은 분배의 재원이 계속 마련된다는 뜻이다. 재원 마련은 성장을 전제로 현재 세대에서 해결하고 넘어가야지, 미래 세대에 빚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면 곤란하다. 성장의 결과물을 활용하여 분배가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문제는 고착화된 저성장 기조에 더해 코로나19로 경제 충격이 발생하면서 세수입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재정지출은 고령화와 경제 위기 대응을 위해 계속 증가하지만, 지출을 뒷받침하는 수입이 그에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은 파산에 직면하게 된다. 세수입 확보를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지출의 구조조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증세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세법이 개정된 이후 실제로 재정 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1~2년 이후부터이니 지금 증세 방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어려운 주제를 세련된 방법으로 논의하면서 해결책들을 제시하는 과정이 코로나 위기가 우리에게 부여한 또 다른 숙제이자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더 낳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업그레이드된 과정의 축적이 우리 사회의 진정한 자산이 아닐까.

증세는 기업이 투자나 일자리를 증가시키고, 이로 인해 가계의 소득이 증가하고 소비지출이 확대되면서 결국에는 세수입도 확대되는 방식이 지속 가능하다. 투자를 확대하는 방향도 단순히 양적 규모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수준이 높고 부가가치 창출 능력이 큰 기초·원천 부문에 집중해야 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떠오르는 비대면·디지털·친환경 트렌드를 반영한 신사업 부문을 선점하는 방향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 확충도 단기·공공부문 일자리가 아닌 성장 잠재력이 높은 부문에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기업이 스스로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경제 체질을 업그레이드하는 근본적인 대처 방안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가고 있는 한국 경제, 허약한 체질을 놔두고 그때그때 각성제만 투여하면서 일시적으로 겉모습만 그럴 듯하게 보이는 가짜회복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 경제의 참모습이 나타날 수 있도록 진짜회복(genuine recovery)에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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