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촌철살림] 대한민국 재난구조 대상 1호는 누구입니까

정숭호 논설고문입력 : 2020-05-25 18:53
 

 

[지난해 12월 대한상의가 발표한 '규제튜리'. 큰 마무를 칭칭 감은 칡덩쿨이 연상된다/ 연합뉴스]



1. 비행기를 타면 이륙 직전에 산소마스크를 쓰는 법을 배우게 된다. 승무원(스튜어디스)들이 통로에 서서 손짓 몸짓으로 산소마스크가 어디에 있는지, 언제 나타나는지, 어떻게 쓰는지를 승객들에게 보여준다. 어린이를 데리고 탔으면 “반드시 어른이 먼저 쓴 후 어린이에게 씌우라”는 당부가 빠지지 않는다. 보호본능이 강한 부모라면 살짝 의아해질 수 있는 순간이다. “위험이 닥치면 아이를 먼저 챙겨야 한다”는 선천적 무의식과 “아이, 여성, 노인, 그 다음이 나”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가르치는 인명 구조 순서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는 “어른 먼저, 아이 나중”이라는 원칙이 백 번 옳다. 이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어른과 아이 둘 다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안 그럴 때보다 훨씬 커지게 된다.

여객기는 보통 3만5000~4만 피트 내외의 고도로 난다. 이 고도에서는 기압이 매우 낮아 압력 조절장치를 이용해 기내 기압을 높게 유지한다. 만약 4만 피트 상공에서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 기압이 갑자기 낮아지면 사람들은 30초 만에 정신을 잃고, 3만 피트 상공이라면 90초까지 버티다 정신을 잃게 된다. 압력이 매우 급격히 떨어질 때는 10초도 안 돼 정신을 잃는다.

실제상황에서는 산소마스크를 쓸 시간이 엄청 촉박하다는 얘기다. 머뭇거릴 틈 없이 곧바로 써야 하므로 어른이 먼저 착용한 다음 어린이를 챙기는 것이 옳다. 정신을 잃는다고 바로 죽지는 않으니 어른이 먼저 착용하고, 어린이에게 씌워도 늦는 게 아니다. 보호본능에 불타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충만해 “어린이 먼저, 어른은 나중”을 실천하려다가는 자기는 산소 부족으로 영원히 ‘정신줄’을 놓치고, 아이는 어릴 때부터 세상의 거친 풍파에 시달려야 하는 애처로운 운명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 것이다.

한 기업인은 ‘어른 먼저, 아이 나중의 원칙’을 실제 삶에 적용해 위기를 극복했다. 대미 양말수출 실적 1~2위를 다투던 회사를 경영하다가 은퇴한 그 역시 숱한 부침을 겪은 후 성공한 기업인, 믿을 수 있는 가장 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우리 집사람, 파출부도 했어. 회사 망하고, 더는 돈 빌려 올 데도 찾을 수 없어 당장 한 끼 먹는 걸 걱정하던 때야. 아내가 파출부를 하겠다고 나서더라고. 안 말렸어. 곱게 자란 사람을 파출부로 내보내야 하는 게 가슴 아렸으나 그게 재기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당장 한 끼 밥을 위해서라면 내가 ‘노가다’판에 나가는 게 옳았겠지만 아내가 파출부로 나가는 길을 택했어. 아내가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해주면서 어머니와 아이들의 한 끼를 해결하는 사이 나는 거래처를 다니며 재기를 도모했고 보다시피 성공했지. 아내와 어머니, 아이들에게는 그 시절이 괴롭고 아픈 추억일 거야. 하지만 그때 내가 급한 불 끈다고 일용 노동을 시작했더라면 그건 추억이 아니고 현실일 거야.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 그는 대충 이렇게 자신과 가족의 위기 극복 과정을 정리했다.

코로나19는 이미 하강하던 한국 경제를 더 빠르고 급격하게 어두운 심연으로 처박고 있다. 모든 지표가 빨갛고, 위급한 경보가 계속 울리고 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를 외치며 곤두박질하듯 하강하는 이 비행기 승객들은 재빨리 산소마스크를 쓰고 기압이 견딜 만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시간이 짧아 다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 누가 먼저 써야 할까. 이 비행기에서도 어른이 먼저 쓰고 나서 어린이에게 마스크를 씌워줘야 하는 상황이라면,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일까.

그 답은 기업이다. 왜? 기업이 밥을 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창의적으로, 효율적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해줘야만 나머지 사회 구성원이 먹고살 수 있는 것이다. 돈, 즉 밥을 벌어오는 일은 기업만이 할 수 있다. 대통령도 못하고 공무원, 의원들, 시민단체도 못한다. 서로 품앗이는 할 수 있겠으나 파출부 나간 어머니 수준일 뿐이다.

2.기업에 힘을 몰아줘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길은 어렵지 않다. 그저 기업의 다리를 잡거나, 가려는 길을 가로막지 말라는 주문이다. 가족의 먹거리와 미래를 위해 새벽부터 일 나가는 ‘가장’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일 뿐이다. 이 이야기는 잠시 뒤 다시 하기로 하고, 한 위대한 학자의 통찰을 빌려서 우리 삶을 되돌아보자.
“진화론적 변화는 일반적으로 자원의 효용을 최대한 높이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진화는 자원의 최대한 이용이라는 노선을 맹목적으로 따른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F.A. 하이에크의 <치명적 자만(민경중 역)>에서 찾을 수 있는 이 문구 이상으로 먹고사는 문제, 경제적 문제의 해결 과정을 잘 설명해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진화는 자원의 효용을 최대한 높인다”는 “자원을 가장 경제적으로 활용해야만 진화한다”는 뜻이다. ‘진화한 존재인’ 우리 인류는 오랜 세월 자원의 효용을 높이는 방향을 추구해온 결과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화에서 탈락, 오래전에 멸종돼 지구에서 사라졌을 테니.

하이에크는 이어서, “현대 생물학자들은 ‘윤리학은 자원을 할당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라고 본다. 이러한 모든 사실은 진화, 생물학, 윤리학이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라고 썼다. 인류는 처음엔 한정된 자원을 서로 차지하려고 투쟁했을지 모르나, 투쟁보다는 협업이 생존에 유리한 걸 알고(투쟁하다 죽으면 자원이고 뭐고 다 사라지니까) 협업의 규칙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무의식적으로) 그게 윤리, 도덕이 됐다는 말이다. 최상의 협업은 분업을 통해서 일어난다는 것도 밝혀졌다. 자급자족의 시기는 아주 짧게 지나갔다. 인류의 지금 모습이 자원의 효용을 최대한 높여온 결과라면 앞으로도 우리 사는 모습은 여기서 크게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달라져도 “먹어야 산다”는 불변이다. 아무리 두려운 세상이 됐다하더라도 누군가는 먹을 것을 찾거나 만들고는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담당해온 것이 기업이다. 기업은 진화한 인류의 한 모습이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종종 다른 방향으로 진화의 방향을 틀어보려 했지만 퇴화 혹은 멸종의 길임을 알고, 그동안 걸어왔던 길로 되돌아왔다. 다른 좋은 길이 있다면 인류는 그 길을 좇았을 터인데, 그러지 않았으니 코로나19 이후에도 이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말처럼 “세계화의 시대에서 성곽의 시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인간은 곧 성곽 바깥으로 뛰쳐나오게 된다. 그게 인류의 본성이다. 인간은 제 자리에 머무를 수 없는 존재,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봐야만 성이 차는 존재이다. 인간의 그 의지, 그 욕구와 욕망이 효율적으로 집결되고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수단이 기업임은 진화를 통해 확인되었다.

정부가 코로나19로 휘청거리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긴급자금 240조원을 들고 나섰다. 이 돈은 몇 배의 값어치로 되돌아 올 수도, 홍수에 떠내려간 듯 흔적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것은 정부와 정치권에 달렸다.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기업에게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느냐, 아니면 여태처럼 괴이한 논리(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만큼 수없이 많다!)와, 자기들만의 윤리(자기들 배를 채우도록 설계됐다는 의심도 받는다!)로 기존 규제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규제를 덧대느냐는 문제일 것이다.

태초에는 규제가 없었다. “먹어야 산다”는 공통 조건 아래에서 바이러스도 진화했고 인간도 진화했다. 코로나19로 인간이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한 바이러스에게 지는 모습이 됐지만, 규제가 사라지면 전세는 다시 역전되리라는 생각이다. 과거에 이미 그랬듯이.
 



 

정숭호 논설고문  1trou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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