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와 ‘과학적 증거 기반의 정책 결정’

곽재원 수석논설위원입력 : 2020-05-12 16:45
 
 

인도 거리에 등장한 코로나19 색출 헬멧 (뉴델리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 확진자가 인도 대도시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자 11일 수도 뉴델리 거리에서 한 경찰이 체온 측정 장치가 장착된 헬멧을 쓰고 행인들의 체온을 확인하고 있다. 





 


[곽재원의 Now&Future] 코로나19의 세계적 확대와 사회에 대한 심각한 영향으로 사람들은 과학적 증거(에비던스)에 근거한 정책 결정의 중요성을 매일매일 실감하고 있다. 정치 리더가 입국제한과 도시봉쇄, 학교폐쇄 등의 결정을 할 때에 과학기술 전문가의 조언이 큰 판단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주요국들이 ‘과학적 조언 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3월 6일 미국 과학·공학·의학아카데미(NASEM)는 코로나19 대응 주무부서인 백악관(대통령부) 과학기술정책국(OSTP)의 의뢰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21세기 보건 위협에 관한 상설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는 연방정부의 정책 결정에 빠르게 협력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중립적인 포럼을 마련하고, 긴급한 요청에도 대처한다는 취지에서 설치된 것이다. 위원회는 ‘과학’을 국가 위기대응 의사결정에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자리매김하고, 과거의 준비·대응 방식으로부터 교훈과 우수 사례를 제시하는 한편 잘못된 정보에 대한 대응 방안을 검토하는 장(場)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위원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공중 보건, 공중보건의 준비와 대처, 임상 치료와 치료의 위기 기준,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규제 문제의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필요에 따라 시민과 기업, 기타 이해관계자들도 참여한다고 한다.

올해 초 영국의 정부과학국(GO-Science)과 재무부는 과학과 공학을 정부 정책의 중심에 자리매김하기 위한 일련의 제언을 담은 공동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과학은 국가의 번영에 불가결하며, 정부의 정책 입안과 운영에서 목표 달성에 필요한 증거를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정부의 각 부서는 명확히 정의된 과학 시스템을 갖춰야하며, 그 부서의 과학 시스템에 근거한 활동 전반을 하나의 문서로 정리해 두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연구개발 협력과 위탁을 촉진해야 하며, 전 부서는 관심 연구영역의 문서를 매년 발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지난주 영국에서는 코로나19 대책의 방향을 집단면역에서 도시봉쇄로 전환시키는 데 앞장섰던 한 과학자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후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친 직후 자택에서 지인을 만났다는 이유로 정부의 과학고문직을 사임했다는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이 과학자는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의 감염증역학센터장인 닐 퍼거슨 교수로 정부에 과학적 조언을 하는 ‘긴급시 과학조언그룹(SAGE)’의 멤버다. 일관되게 봉쇄를 주장해온 퍼거슨 교수와 경제타격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려는 정치가와의 알력에서 빚어진 사건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경위가 어찌 되었든 영국 정부와 SAGE는 퍼거슨 교수의 주장대로 도시봉쇄에 나서 많은 인명을 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AGE는 세계의 대표적인 과학적 조언그룹으로 영국의 과학적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3월 대국민 연설에서 코로나19의 팬데믹과 관련 ‘과학에 대한 신뢰’를 강조했다. 그는 “프랑스 국토에서 최초의 감염사례 이후 프랑스 연구계는 바이러스를 파악하고 그 확산을 막는 데 노력해 왔다. 파스퇴르 연구소, 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각 대학 연구실은 그 지식을 결집하고 협력하여 연구에 임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미 공적인 판단의 명확화에 공헌하고 있다" 고 전했다. 독일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관련, 연방보건부장관이 기자회견 때 우리나라의 질병관리본부 같은 역할을 하는 로버트 코흐 연구소(RKI) 소장과 의과대학 전문가를 반드시 동석시켜 즉석에서 답변토록 했다. 과학자를 내세워 책임 체제의 애매성을 확실히 제거하고,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정면 돌파 방식이다.

최근 식품안전과 지진, 원전사고를 계기로 많은 국가에서 정부에 조언하는 조직이 설치됐다. 그 형태는 정치체제와 당면 과제의 종류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다. 그러나 과학적 조언체제의 공통점은 전문가가 담당하는 ‘리스크 평가’와 그것을 받아들여 정치와 행정 조직이 수행하는 ‘리스크 관리(정책결정)’로 분리되어 있으며, 양측의 적절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나라는 초기대응에서 정치가 다소 앞섰다는 지적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리스크 평가를 담당하는 전문가 회의의 견해를 받아 정치와 행정 조직이 결정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일단 평가된다.

긴급 사태에 대응할 때 리스크 평가와 리스크 관리의 분리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상상외의 사태에 대해 조언체제에 혼란이 일어났지만 점차 책임체제를 확립해나가면서 정책 결정의 프로세스도 공개되고 있다.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과학적 전문가 그룹은 독립성과 투명성을 갖춘 전문적인 조직을 통해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감안하면서 조언을 할 필요가 있다.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 적절한 전문가와 전문조직의 선정이 요구된다. 과학적 데이터의 수집분석에 시간이 걸린다. 반면 정치와 행정의 정책 결정은 과학적 증거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정치적 요인들을 감안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양측의 스피드와 가치관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치가와 과학자가 평상시부터 대화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긴급사태의 대응 때 더욱 그러하다.

일본의 경우 ‘정부에 대한 과학적 조언에 관한 국제 네트워크(INGSA)’라는 학술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코로나19를 둘러싼 각국의 대응상황을 분석하고. 향후 조언체제의 수정을 제언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앞으로 자연재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치와 과학의 접점에 선 위기와 과제가 많을 것으로 이 단체는 전망했다. 특히 전체 방향을 무시한 각 정부 부서들의 조언 체제를 인공지능(AI)과 빅 데이터를 활용해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아베 신조 총리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외면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어 증거에 기반한 과학적 조언에 대한 국가수반의 열린 자세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의 만연으로 세계 각국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미증유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각국이 필사적으로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다. 이 같은 위기의 과제에 대응하려면 지금까지 쌓아올린 과학기술의 성과를 활용해야 한다. 인문·사회과학을 포함한 과학기술을 응용해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는 ‘사회기술’도 필요하다. 감염증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해 때 사람들의 움직임과 위치를 파악하고, 다수 사람들의 행동을 제어함으로써 그들의 행동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소재와 행동에 대한 많은 정보 수집과 리스크 분석 기술이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행동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커뮤니케이션 기술도 필요하다. 감염증 대응은 때에 따라 정부가 강력한 ‘공권력’을 행사해 행동 규제와 이동 제한이라고 하는 인권의 제약을 동반한다. 이러한 인권의 제약은 과학적 증거와 함께 준엄한 법적, 윤리적 판단이 따라야 한다. 이는 최근에 주목되고 있는 과학적 식견의 활용에 관한 윤리적·법적·사회적 과제(ELSI)의 문제와 연결된다. 결국 정책의 유효성과 인권과의 균형을 취해야 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를 위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 내용과 전달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과학적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유용하다. SNS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귀중한 정보가 폭넓게, 빠르게 수많은 사람들에 전달되는 한편 거짓 정보와 가짜 뉴스가 퍼지면서 사람들을 잘못된 행동으로 이끄는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다. 정보 수용자에게 거짓정보에 대한 내성을 키우는 방법과 그 보급에도 사회기술이 당장 필요하다.

코로나19 대책의 사례에서 보듯이 정책 결정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수행하는 장래의 행동 방향과 방식에 관한 결정이다. 그것을 적확하게 수행하기위해서는 유용한 지식과 기술·방법을 동원해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미처 알지 못하고 있는 감염증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감염증 리스크에 대한 상세하고 정확한 대량의 데이터를 신속하게 수집·분석해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다양한 기존 데이터베이스의 분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 필요한 IT 기술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이 기술을 사회에 적용하기 위한 이른바 사회기술을 변용시켜야 한다.

이번 코로나19의 한국과 중국은 감염자 위치정보를 사용해 감염경로 추적과 감염 리스크가 높은 인물을 특정함으로써 감염 확대를 막은 것으로 평가된다.

대만 정부는 부족한 마스크의 매점매석을 막았다. 전국의 마스크 재고 상황을 파악하고 국민 ID(인식번호)를 사용해 구입이력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일본 정부는 건강정보와 치료이력 정보를 집적하는 데이터베이스(PHR; 개인건강기록/EHR; 전자건강기록)를 정비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기초질환 유무 등의 리스크를 평가하고, 그 평가를 토대로 치료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다면 한정된 의료 자원을 유효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치료와 검사를 둘러싼 불필요한 불안과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정책결정에 있어서 불확실성을 줄이는 사회기술이다.

IT 활용은 수많은 개인정보를 이용하게 된다. 상세한 개인정보로 정확도가 높은 대응에 나설 수 있지만 개인정보보호가 중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데이터 수집과 이용에 제약이 클 수밖에 없다. 개인정보의 활용과 보호를 양립시키는 사회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IT, 법제도, 윤리, 그리고 데이터 관리의 적절한 체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앞으로 정보과학은 모든 과학, 법학, 경제학, 행동과학, 심리학을 종합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특히 위기 대응 때 전문가의 조언, 과학적 증거, 사회 기술에 기반한 정책결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 정부는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위기 대응뿐만 아니라 모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합리적인 정책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차제에 관련조직과 시스템 확립도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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