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마이너스 유가…벤처‧투자업계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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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훈 기자
입력 2020-04-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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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유가 장기화되면 재생에너지 전환 지연 불가피

  • 대규모 시설 투자 필요없는 에너지 벤처 주목...반론도

  • "문제는 탄소야"...유가 주도 경제 변화 예측

포스트 마이너스 유가 시대에 대한 벤처업계 시각은 엇갈렸다. 저유가는 재생에너지 산업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가 제기되는 한편, 이미 패러다임은 신재생에너지로 전환됐다는 상반된 의견이었다. 다만, 에너지 산업이 마이너스 유가 이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사진=연합뉴스 ]


코로나19가 쏘아 올린 실물경제 침체가 마이너스 유가 시대를 열었다. 마이너스 유가는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건으로, 실물 경제를 포함해 금융‧에너지 산업 전반의 ‘상식’을 깨뜨렸다. 세상 변화에 누구보다 민감하면서, 경제 최전선에 서 있는 벤처업계는 ‘포스트 마이너스 유가 시대’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띨 것이라고 예측했다. 변화 방향성에 대한 시각은 달랐지만, 마이너스 유가 시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가 배럴당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전산 장애를 일으키기도 했다. 마이너스 유가는 5월 선물 만기와 롤오버(실물 원유를 인수하는 대신 차근월물로 갈아타는 행위) 이슈가 겹친 일시적인 현상이었지만, 저유가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21일 기준 6월 WTI도 전날보다 배럴당 43.4% 하락하면서 10달러대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포스트 마이너스 유가 시대에서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산업은 단연 에너지 분야다. 석유자원 고갈을 걱정하던 과거와 달리 저장 공간의 부족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가격 변동성은 유례없이 커지고 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미국의 솔레이마니 사령관 피습과 이라크의 미사일 보복으로 급등을 우려하던 유가는 3개여월 만에 마이너스가 됐다.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저유가가 장기화하면 재생에너지 산업으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에너지 벤처기업은 대규모 생산‧저장 시설이 필요한 석유 산업보다는 신재생에너지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저유가가 고착하면 신재생에너지 대체 필요성이 적어지면서 관련 산업이 붕괴할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이다.

태성환 넥스트드림엔젤클럽 회장은 “에너지 벤처는 신재생에너지와 정보통신(IT)의 결합, 전기차와 IT의 결합, 태양광 에너지의 효율성 증대 등 방향으로 향후 각광받을 수 있는 분야”라면서도 “저유가 상태가 지속되면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든다. 적어도 유가가 60~70달러를 유지하고 있어야 가성비를 느끼는데, 5~10달러에 머물러 있다면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빛을 보기도 전에 아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마이너스 유가는 실물 경제의 심각한 침체를 반영하면서 신규 투자를 위축시킨다. 과감한 투자를 통한 혁신을 이뤄내야 할 각 분야의 벤처기업 또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벤처캐피탈 티비티(TBT)의 임정욱 대표는 “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라면 실물경제가 굉장히 안 좋다는 것이다. 경제 환경이 엄중해졌다는 생각이 든다”며 “에너지 산업에 대한 변화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활발하게 투자를 해야 하는데 (어렵고), 우리 앞에 고난의 길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마이너스 유가 사건을 통해 에너지 전환 패러다임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저유가는 실물경제 침체를 반영하고, 석유‧셰일 관련 업체의 줄도산을 예측하게 한다. 이들 기업에 대출해준 은행은 자금 회수가 힘들어지고, 부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대형 생산‧저장 시설을 보유한 업체는 점점 더 생존이 어려워지는 환경이 마련되는 셈이다. 향후에는 대규모 투자 대신 소규모 생산시설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 등에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는 시각이다.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는 “마이너스 유가는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초유의 사태라 쉽게 이야기할 수 없지만, 석유를 시추해 사용하는 석유 기반 경제의 종말을 예견한 것이 아닌가 싶다”며 “석유 산업은 대규모 인프라를 투자하는 파이프라인 사업이지만, 에너지 벤처는 친환경 재생에너지, 전기에너지 중심이다. 석유 산업은 변동성 리스크가 더욱 커졌고,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환경적 측면에서) 수요도 줄어들 것이다. 재생에너지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탄소 배출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북미와 중동에서 결정한 유가가 좌우하던 에너지 산업 방향성은 향후 탄소 배출 문제가 주도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정혁 모두의에너지 대표는 “유가를 고려하지 않고, 탄소 배출 이슈만 보더라도 재생에너지에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며 “애플을 포함해 글로벌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활용을 높이고 있다. (향후 에너지 산업은) 탄소 배출 감축과 에너지 소비 감축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도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고, 기술 검증과 시장 반응에 따라 활성화된다. 저유가가 지속하면 시장 검증과정이 늦어질 수 있지만, 패러다임은 이미 넘어왔다”며 “원유 가격 문제를 넘어 탄소 배출 문제가 있으므로 신재생에너지로 갈 수밖에 없다. 이제는 탄소 배출 문제와 관련 기술개발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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