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미국 셰일 미끄러져油, 코로나 검은 눈물 뚝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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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수석논설위원
입력 2020-03-3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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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아지즈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 장관이 지난 5일(현지시간) 추가 감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제178차 석유수출국기구(OPEC) 임시총회와 제8차 주요산유국연합체(OPEC+) 각료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의 OPEC본부에 도착했다.  [빈= A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이보다 더 무서운 복병으로 급락한 유가(油價)를 꼽고 있다. 국제 뉴스는 코로나바이러스와 거의 비슷한 무게로 유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유가 뉴스는 대략 4개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다. 우선 원유가격의 급락이라는 시황뉴스다. 다음은 유가 하락이 각국 경제에 호재인가 악재인가 하는 분석이다. 미국 셰일가스·오일 개발과 트럼프 정권에 대한 영향도 비중 있게 다뤄지는 뉴스다. 원유 20달러 시대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모습이 최대 관심사항으로 떠올랐다.

미국 원유 선물가격은 지난 3월 18일 배럴당 22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거의 18년 만의 최저 가격이다. 지금부터 18년 전인 2002년 전후는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급성장하며 글로벌화가 가속화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2003년은 중국경제가 두 자릿수 성장에 돌입한 해다. 당시 세계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중국 경제가 차지하는 비율이 4% 정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0% 가까이 확대됐다. 중국 경제는 각국 공급사슬(서플라이 체인)의 한복판에 자리 잡았고, 사람들의 왕래도 활발해졌다. 2003년 수준까지 내려간 원유 시세는 세계 경제가 글로벌화의 출발점 가까이까지 되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 확대가 야기한 세계경제의 축소는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앞을 볼 수 없는 두려움이 시장을 덮고 있다. 원유 시세는 주요 상품 가운데 가장 먼저 코로나 문제에 반응했다. 사람의 이동이 줄면서 석유 수요의 약 40%를 차지하는 수송 분야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된 탓이다. 시장에서는 연초부터 수요 감속이 예상됐으나 실제는 이를 훨씬 능가하는 급락세다.

주요 산유국들은 수요·공급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감산태세를 강화했지만 러시아가 이를 거부하면서(3월 6일) 수세에 몰린 사우디아라비아가 역으로 러시아와 보조를 맞추었다. 사우디는 셰일오일의 증산을 서두르는 미국에 대한 대항책으로 능력껏 증산하기로 하고 시장의 사정을 무시한 대폭적인 기격인하를 단행했다.

미국 원유선물 가격은 2008년 9월 리먼 쇼크 후의 가격(32달러대), 협조 감산 실패와 차이나 쇼크의 영향으로 급락한 2016년 초의 가격(26달러대)보다 더 떨어졌다.

석유 전문가들은 세계 석유 수요가 과거 17년간 20% 가까이 늘어나 30달러 이하의 시세에서는 장기적인 공급확보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수요 증발이 당분간 유가하락세와 공급안정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제 원유가격 하락으로 미국이 특히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대폭 증산과 가격경쟁으로 미국의 셰일오일 개발기업들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원유가격이 18년 만의 최저가를 기록하자 셰일 부문의 신규사업이 잇따라 중지되고 있다. 자금순환이 악화되는 기업이 늘면서 금융시장에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석유서비스 회사인 베이커 휴즈에 따르면 미국에서 셰일 유정(油井)의 개발상황을 나타내는 석유채굴장치(리그)의 가동 수는 3월 중순 현재 664기로 월 초보다 19기가 줄었다. 유력 셰일 기업인 콘티넨털 리소시스는 지난주 2020년 설비투자를 26억5000만 달러(약 3조원)에서 12억 달러로 축소했다. 에너지 산업은 트럼프 정권의 지지기반이다. 트럼프 정권은 사우디와 러시아가 원유시장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도 중동 산유국들과 감산을 포함한 협조를 모색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의 신규 셰일유정의 채산라인은 배럴당 40~50달러 정도다. 30달러 이하에서는 기존 유정을 포함한 대다수가 채산을 못 맞춘다. 이에 비해 사우디국영회사인 사우디아람코의 생산비용은 2.8달러로 미국기업의 열세가 명백하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에너지 업계의 위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방식으로 사우디에 감산을 유도할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더 강화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원유시세를 둘러싼 각국의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석유전문가들의 최대 관심거리는 세계경제가 계속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원유시장이 증산 경쟁에 돌입해 미국·러시아·사우디의 3강 체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가격하락에 누가 먼저 손을 들지, 여타 중견 산유국들은 온전할지 많은 시나리오들이 나오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의하면 코로나바이러스로 경제 감속 전망이 팽배해져 지난 1~3월 석유수요가 전년 동기 대비 하루 250만 배럴 정도 준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반해 사우디는 4월부터 하루 970만 배럴 생산량을 1230만 배럴로 늘릴 계획이다. 이 상태로 간다면 수요와 공급의 갭은 700만 배럴(일본 수입량의 2배)을 넘어선다는 계산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이라크에 이어 OPEC 중견 가맹국인 알제리, 앙골라, 베네수엘라, 적도기니, 이란 등도 증산을 검토하고 있지만 사정이 만만치 않다. 국내 경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유가하락과 증산이 더블 펀치를 먹이고 있는 꼴이다. 이 때문에 유가 20달러 시대에 OPEC에서 탈락하는 나라가 생겨 소위 ‘코어 OPEC’으로의 재편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국제 원유가격의 급락은 보통의 시기라면 수입의존도가 높고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 있어서 큰 호재가 된다. 그러나 지금은 통상적인 시기가 아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 확대가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이 된 상태다. 예컨대 세계 제2위의 석유소비국으로 최대 석유수입국인 중국은 원유가격 하락의 혜택을 크게 받아야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공업생산과 상업활동, 여행이 격리와 봉쇄 등으로 정지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중국의 원유수요는 계속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일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중국과의 상호의존도가 높은 동남아시아도 혼란이 깊어지고 있다. 세계 석유수요 증가분의 80%를 차지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원유가격의 하락은 일정부분 경제에 도움이 되지만 코로나바이러스의 타격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바이러스 영향을 타개하기 위해 철저한 금융완화와 경기대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아직은 경기가 살아난다고 보장할 수 없는 국면이다. 경기가 더욱 악화한다면 유가하락이 소비를 자극할 가능성도 낮다. 세계 석유회사들은 석유 탐사 지출을 삭감하는 장기적인 리스크도 생각하고 있다.

박희원 에너지홀딩스 대표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은 이 시기에 산유국의 정세를 주시하면서, 냉정하고 신중하게 대응하되 장기적인 목표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대와 원유가격 하락이 맞물린 세계경제의 치차(齒車)가 굉음을 내며 역회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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