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하이브리드角] 코로나19와 총선 연기…골든 타임 '째깍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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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20-02-2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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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골든 타임’이 가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시간이 째깍째깍 흐르고 있다. 코로나19의 골든 타임은 50일 남은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관통한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총선 연기를 20일 만에 다시 꺼내는 이유다.

지난 2월 4일자 27면 칼럼(‘팬데믹 총선’ 강행··· 우한의 愚 되풀이할 텐가)을 통해 오는 4월 15일 총선의 연기를 제안했었다. 당시 총선을 72일 앞두고 팬데믹(글로벌 전염병 최고 단계) 상황을 우려하면서, 그런 때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 마치 ‘셀프 점’을 친 점쟁이가 자신의 나쁜 미래 점괘가 틀리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글을 읽은 보수파의 필력(筆力) 넘치는 한 지인은 “총선을 연기하면 문재인 독재를 도와주는 셈”이라며 단칼에 부정했다. 하지만 “좀 더 두고 보자”는 가치중립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 칼럼 이후 이제 20일이 지났다. 그 새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지난 3일 오후 10시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15명, 사망자 0명에서 24일 오후 4시 기준으로 확진자 수 총 833명, 사망은 7명이 됐다. 숫자 계산이 무의미한 지경이다.
 

[그래픽=연합뉴스]


‘경계’ 수준에서 최고 위기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됐고, 전군 외출·휴가 금지와 함께 유·초·중·고교 개학은 연기됐다. 아니, 취소 혹은 연기되지 않은 일정이나 이벤트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국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고 경제는 마비 지경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은 첫째 유행을 지나 둘째 단계이고, 앞으로 셋째 단계로 접어들지 모른다고 말한다.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24일 오전 인터뷰에서 “지금 상황은 전국 지역사회 감염 유행의 직전 단계”라며 “실제 증상이 나타난 확진자 숫자를 보면 지금이 둘째 유행 곡선의 정점에 올라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여기서 막지 못하면 그 다음 셋째 유행 단계가 오는데, 이때는 (지금처럼 100명 단위가 아니라) 수천명 단위의 확진자 수가 나타날 수가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총선 연기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 여전히 우세하다. 많은 이들이 전쟁 때에도 선거를 치렀다는 논리를 편다. "1950~53년 한국전쟁 ‘난리통’에도 선거를 예정대로 실시했다. 선거 연기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팩트체크를 해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연기한 선거도 있고, 선거를 치렀어도 제대로 못 치렀다. 2,3대 국회의원 선거는 각각 1950년 1954년 모두 5월에 열렸다. 전쟁 기간 총선은 없었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대한민국 선거사’를 확인해 보면 제1회 시·읍·면의회의원, 도의회의원 선거(지금의 기초·광역의회 선거)는 1949년 지방자치법이 만들어지면서 당초 1950년 12월 치르기로 했었다. 하지만 전쟁 발발로 1952년 4월 25일과 5월 10일 각각 연기돼 치러졌다. 그마저도 전쟁 혼란으로 서울, 경기도, 강원도 및 계엄령이 선포된 일부 지역에서는 실시되지 못했다.

1951년 5월 16일 치러진 제2대 부통령선거는 피란지 부산에서 국회 간접 선거였으므로 논외로 하고, 52년 8월 5일 치러진 제2·3대 정·부통령선거는 문제가 많았다. 이른바 부산정치파동과 발췌개헌으로 국민직선제로 바뀌었는데, 말 그대로 난리통에 선거법을 바꿔 무리하게 진행한 부정선거였다. 결국 한국전쟁 당시 일부 선거는 연기됐고, 실시된 선거도 정상적으로 치러진 선거는 없었다는 말이다.

다시 이번 총선 일정을 보자. 2월 25일이 바로 4·15총선 D-50, 딱 50일 남은 날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한 주, 즉 3월 1일 일요일까지 일주일이 코로나19의 분수령이라고 한목소리로 예측하고 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국가적 재난 상황이라는 점, 또 그 시기가 총선 앞뒤에 걸쳐 관통하고 있다는 걸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무엇을 해야 하며, 선거는 왜 하나? 답은 어렵지 않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 있고, 국민들의 안녕, 즉 안전과 번영을 위해 하는 공공(公共)의 일이 정치다. 선거는 그런 정치를 잘할 사람을 뽑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다.

국회의원 당선, 여야의 과반 싸움, 정치권의 이해득실을 넘어 국가와 정치인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최우선 과제는 없다. 경제와 잘 먹고 잘사는 문제 역시 국민이 ‘살아 있다는 전제’ 그 다음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고, 먹고사는 문제가 달린 상황에서 무슨 정치고 선거냐”, “국민이 좀비가 되고 있는 마당에 선거가 무슨 소용인가”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따지는 건 정말 어처구니없다. 이 사태를 책임지고 있는 현 정부·여당에 불리하고, ‘정권 심판론’을 부르짖는 보수야권에 득이 될 거란 전망이 적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총선 직전 코로나19 사태를 잘 마무리하는 단계에 접어들어도 ‘정권 심판 프레임’이 작동할 것인가. 설사 그와 반대로 코로나19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달아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 보수야당이 승리하면 문재인 독재 타도는 성공인가. 

어떤 가정을 하든 선거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양 진영 극단(極端), 10~20% 콘크리트 지지층‘만’의 진영선거가 될 공산이 크다. ‘문빠’와 ‘반문 투쟁자’들은 제각각 바이러스 감염을 불사하고 일제히 투표장으로 달려갈 거다. 1당을 쟁취한 승리자는 어느 쪽이든 승리의 찬가를 목청 높여 부르며 코로나19 사망자들을 ‘순교자’로 추앙할 거다.

이런 선거 결과를 자랑스럽게 받아들이는 정당은 사이비 정치꾼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한 선거 결과는 앞으로 4년 내내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선거를 좌우할 중간부동층 중 많은 이들이 투표장으로 가지 않을 게 불 보듯 뻔하다. 지금 나와 우리 가족들의 생명과 생계를 지키는 게 중하지 선거를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투표를 하더라도 무슨 당의 어느 후보가 나와 내 가족의 안전과 생계에 더 도움을 줄지 꼼꼼히 제대로 판단하기 쉽지 않을 터. 어수선한 틈을 타 정치권의 물갈이 공천은 '물 건너 가는' 중이고, 얼굴 알려진 구태·구악 정치인들이 슬그머니 국회에 다시 들어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난 7일 오후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총선 모의 개표 시연회가 열린 모습. [연합뉴스]


총선과 대통령 선거 연기 결정은 공직선거법 196조에 따라 대통령이 '해야 하는' 책임권한이자 의무이다. 그러나 절대 혼자 결정하면 안 된다. 정치적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국회에 구성된 코로나19특위에서 이를 논의하고, 선관위는 객관적인 여론조사로 민의를 파악하길 바란다. 이후 대통령은 여야 영수회담을 열어 총선 연기를 합의해 내야 한다.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 안녕이 걸린 골든 타임은 그리 길지 않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이자 여야의 전쟁터다. 축제는 연기돼야 하고 전쟁 당사자들은 휴전회담을 지금 즉시 시작해야 한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요즘 버나드 쇼 묘비에 새겨진 글귀가 다르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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