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왜 옷을 벗는가, 알몸을 충동하는 지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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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 논설고문
입력 2020-02-12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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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노스의 파라다이스 비치] ]

 
 

 

<지중해 오디세이 11> 그리스는 왜 옷을 벗는가, 알몸을 충동하는 지중해

여신, 공주, 하녀들이 씻겨준 오디세우스
혹시 그리스 누드 관광의 원조?

그리스 사람들은 조상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물려받았습니다. 다채롭고 풍부한 신화와 역사,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신전과 조각상, 우리를 부럽게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 남쪽 에게 해 한가운데, 미코노스 섬에 발을 올리면 그리스 사람들이 조상에게서 또 다른 것도 물려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 볼거리도 풍부할 뿐 아니라, 여름철 해변이 눈부시고, 골목길 어디에서 찍어도 사진이 아름다운 미코노스. 이 섬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덕분에 우리에게도 잘 알려졌습니다. 그는 젊을 때(지금부터 30년도 훨씬 전) 여기에 머물면서 <노르웨이의 숲>을 시작했습니다. 이 소설이 대성공하자 일본 관광객은 물론 한국의 젊은 여행자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루키가 아니라도 이 섬은 3000개가 넘는 그리스의 섬 가운데 꼭 가볼 만한 곳으로 꼽힙니다.

이 섬의 여러 해변 중 ‘파라다이스’ 비치를 슬쩍 둘러보고 싶군요. 누드 비치입니다. 한 그리스 여행사 홈페이지는 미코노스의 이 해변을 그리스 7대 누드비치의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카잔차키스의 고향이자 자유의 섬인 크레타에 3곳, 미코노스 이상으로 잘 알려진 산토리니 섬에도 소문난 누드비치가 있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미코노스의 파라다이스는 젊은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곳”이며, “누구와도 섞여 놀고 싶다면 파라다이스로 가시오. 수영장, 누드 바(Bar)가 있어 젊은 파티광들이 좋아한답니다”라는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그리스 섬의 아름다움. 거기서는 옷을 홀랑 벗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누드비치가 처음이라면 어떻게 시작하는지 에티켓을 알아야 합니다”로 시작되는 그리스 누드비치 에티켓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여행사도 있습니다. 에티켓이라지만 처음 몇 줄은 준비 사항입니다. “누드비치는 쉽게 접근 안 되는 외딴 곳에 있다. 자동차는 갈 수 없는, 햇빛 내리쬐는 바위 길을 오래 걸어야 도착하는 곳이 많으니 짐은 가볍게 하고, 반드시 선크림을 많이 준비해라.” 이런 것들입니다. “걸어서도 갈 수 없고, 수상 택시(보트)로만 갈 수 있는 곳도 있다. 요금은 흥정이 가능하지만 절대로 갈 때 다 주지 말고 반만 줘라. 요금을 다 받고는 데리러 오지 않는 뱃사람이 꽤 있다.” 이런 안내도 있네요.

에티켓으로는 “홀랑 벗는 게 창피하면 수영복을 입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절대로 다른 사람들의 벗은 몸을 넋 놓은 모습으로 쳐다보면 안 된다”, “사진은 찍어도 되나 카메라 렌즈를 사람에게 돌려서는 절대 안 된다” 같은 것이 적혀 있습니다. 35년 전쯤 미국 텍사스주 주도(州都)인 오스틴 주변 한 호숫가에 차려진 누드비치에 구경 갔던 게 생각납니다. 옷을 입고 다녔는데, 벗으면 온통 허연 몸뚱이들 사이에서 내 몸 색깔이 더 두드러질 것 같기도 했고, 서른 초반이었는데도 그때 이미 볼록했던 배를 까놓는 것도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 판에 옷 벗은 사람들 쳐다보기가 얼마나 민망했던지, 사진에 담을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습니다. 벗은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내가 먼저 외면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사실, 오늘 지중해 시리즈의 주제는 누드비치가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목욕하는 오디세우스와 그리스 남자 나체 조각’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무엇이 나를 충동했는지 미코노스의 파라다이스 비치가 먼저 머리에 떠올라 거기부터 둘러보게 됐습니다. 이제부터는 원래 생각대로 호메로스의 위대한 장편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목욕하는 장면으로 글을 이어나가겠습니다.

기원전 8세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에 나갔다가 승리한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바다 위에서 20년 간 겪은 갖가지 고난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트로이는 오늘날 터키 쪽이고, 그의 집은 그리스의 서쪽 이타카에 있었습니다.) 주로 그에게 새로운 고난과 모험이 닥칠 때마다 한 권씩, 24권으로 이뤄진 <오디세이아>에는 목욕 장면이 많습니다. 특이한 건 여성의 목욕 장면은 사랑과 성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를 다른 여신들이 씻겨주는 모습 묘사 한 번뿐(8권)이고 나머지는 첫 부분에 두 번 나오는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의 목욕장면 외엔 모두 오디세우스의 목욕장면입니다. 여신과 공주와 하녀들이 이 남자들의 몸을 씻겨줍니다. 단국대 명예교수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오뒷세이아>(도서출판 숲)에서 몇 줄 옮기겠습니다.(‘오디세이아’와 ‘오디세우스’는 외래어표기법에 따른 표기이고, ‘오뒷세이아’, ‘오뒷세우스는 천 선생의 책 제목과 그 주인공입니다.)

“그동안 넬레우스의 아들 네스토르의 막내딸/아름다운 폴뤼카스테는 텔레마코스를 목욕시켜주었다./목욕 후에 그녀가 올리브유를 발라주고/훌륭한 겉옷과 윗옷을 입혀주자/그는 불사신과 같은 모습으로 욕조에서 나오더니 백성들의 목자인 네스토르의 곁에 앉았다.”
“그(오뒷세우스)는 그곳에 있는 동안에는 늘 신처럼 보살핌을 받았다./하녀들이 목욕을 시켜주고 나서 올리브유를 발라주고/그에게 아름다운 외투와 윗옷을 입혀주자/그는 욕조에서 나와 포도주를 마시는 남자들 사이로 갔다. 그때 신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받은 나우시카아가/지붕을 튼튼하게 떠받치는 기둥 옆으로 다가섰다가/눈앞의 오뒷세우스를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그에게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 (나우시카아는 표류하던 오디세우스가 정신을 잃고 벌거벗은 채 당도한 섬의 공주입니다.)
“닷새째 되는 날 (여신) 칼륍소는 오뒷세우스를 목욕시키고/향기로운 옷을 입혀준 뒤 섬에서 배웅해주었다.”
따뜻한 물속에서 여인들의 손길로 목욕을 하고 올리브유를 발라 더욱 구릿빛으로 빛나는 몸 위에 향기롭고 아름다운 옷을 걸친 것에서만도 늠름한 사내의 모습이 넘치는 오뒷세우스를 그의 수호 여신 아테나는 신의 마법으로 더 멋들어지게 꾸며줍니다.
“(여신은) 그의 머리에서 아래로 아름다움을 듬뿍 쏟아부어/그를 더 크고 풍만해 보이게 했고, 그의 머리에서는/고수머리가 마치 히아신스 꽃처럼 흘러내리게 했다./어떤 솜씨 좋은 사람이 은에다 금을 입힐 때와 같이 …/꼭 그처럼 여신은 그의 머리와 어깨 위로 우아함을 쏟아부었다.”

목욕을 마친 오뒷세우스에게서 ‘그리스 조각’이 연상됩니다. <오뒷세이아>의 잦은 목욕 장면은 손님에 대한 환대, 새로운 탄생, 영웅의 신격화, 생명수를 바른 후 얻게 되는 영생 등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만, 그런 해석은 모두 뒷전이고, 이토록 아름답고 늠름한 남자라니! 내 상상 속에 떠오른 수천년 전 그리스 남자에게 묘한 부러움이 생겨납니다. 이렇게 잘 빠진 몸이라면 벗은 채로 돌아다니고 싶어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생각은 그리스 사람들이, 요즘 우리 젊은이들 표현처럼, “수컷 향이 물씬한 짐승돌”의 후손이어서 곳곳에 누드비치를 만들었나 라는 데에까지 이릅니다. 어떤 그리스 소개 글에는 그리스가 ‘LGBT’ 여행자들의 낙원이라고도 나오던데, 이것도 아마 그런 역사와 전통의 영향일 거라는 짐작을 낳게 합니다. 에게 해에는 레스비언의 시조라는 시인 사포가 살았던 레스보스 섬도 있으니 말입니다.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목욕한 오뒷세우스의 미끈한 몸매에 대한 상상은 그리스 신화와 전설, 역사를 소재로 만든 할리우드 영화들 때문에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04년에 개봉한 <트로이>의 주인공을 연기한 브래드 피트, 페르시아의 대군에 맞섰던 스파르타 전사 300명의 장엄한 최후를 그린 2007년도 개봉작 <300:제국의 부활>의 주인공들을 보세요. 한결같이, 문자 그대로 ‘그리스 조각’처럼 깎은 듯한 용모였지요. 며칠 전 104세로 세상을 떠난 미국 배우 커크 더글러스도 1950년대에 ‘율리시즈’라는 영화에서 멋진 근육질 몸으로 ‘율리시즈(오뒷세우스)’를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아테네 국립박물관’, 런던의 ‘대영박물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베를린의 ‘베를린 박물관’에 소장된 그리스 남자 조각상들을 보면 그 배우들이 ‘조각 같은 몸매’를 가지려 했을 수밖에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옷을 입은 조각은 없고 거의 전부 ‘균형 잡힌’ 나체 조각입니다. 나이즐 스피비의 <그리스 미술>(양정무 역, 한길아트)에 따르면, 그리스 조각가들은 가장 이상적인 인체를 상상해서, 예를 들면, 얼굴과 몸통의 길이, 손과 팔 길이의 비례를 어느 정도로 해야 최고로 균형 잡힌 모습을 만들어 낼 것인가를 생각하고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상적인 모습의 조각상에 오랫동안 세뇌되었으니 할리우드 배우들이 그리스 조각처럼 보이고자 몸을 만들었고, 서양인들은 물론 오늘날 우리들까지 배우들의 그 모습을 남자들의 전형이라고 믿게 된 게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예전 그리스 남자들은 정말 나체로 나다녔나? 여자가 목욕을 시켜줘도 부끄럽지 않았나?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그렇다고 하네요. 언제나 벌거벗지는 않았지만 나체를 부끄러워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도시국가로서 항상 전쟁 상태였기에 남자들은 쉼 없이 체력을 단련해야 했고, 체력이 단련된 사람의 몸매는 자연히 아름답게 됐고, 그 아름다운 몸매는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게 됐으며, 급기야 나체는 남성다움을 표현하는 ‘패션’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몇 줄 더 덧붙이자면, 체력단련장인 ‘김나지움(Gymnasium)’의 ‘Gym’에는 ‘옷을 벗는다’는 뜻이 들어 있는데, 김나지움에서는 옷을 모두 벗고 레슬링처럼 몸과 몸이 부딪치는 운동을 했으며, 도시국가 중 가장 군사적이었던 스파르타에서는 남녀가 그런 모습으로 레슬링을 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도 벗은 채로 레슬링을 했으며, 알키아비데스라는 당시 아테네 최고의 미남 젊은이는 김나지움에서 운동을 같이 하자며 소크라테스를 유혹했다고 합니다. 동성애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였다는 거지요. 또 키가 2미터 가까웠던 플라톤은 규칙도 체급도 시간제한도 없고, 상대방 눈알을 뽑아도 되는, 오늘날의 종합격투기보다 더욱 격렬하고 잔혹한 ‘판크라티온’이라는 경기에서 두 번이나 우승한 ‘싸움 기계’였다는 기록도 있다고 하네요. <소크라테스씨, 멋지게 차려 입고 어딜 가시나요?> (연희원, 문예출판사) <그리스 성풍속사> (한스 리히트, 정성호 역, 산수야)

파라다이스비치에서는 매년 8월 ‘세계 게이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수천 명이 몰려든답니다. 그리스 사람들, 조상에게서 정말 여러 가지를 물려받았다는 생각을 하며 파라다이스 비치에 대한 상상을 계속해봅니다.

 

[고대 그리스의 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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