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칼럼] 북한의 새로운 길은 가시밭길

박종철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입력 : 2020-01-20 06:00

[박종철 석좌연구위원] 


북한은 ‘새로운 길’을 천명하고 연초부터 주민들에게 먼 길을 가기 위해 신발끈을 조이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열을 올리고 있다. 새로운 길은 우려와 달리 핵실험·미사일 발사 재개, 북·미대화 중단 선언 등과 같은 레드 라인은 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전략무기 개발’과 ‘충격적 실제행동’을 언급함으로써 비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음을 내비쳤다. 제재가 지속되고 북·미대화 중단이 장기화될 것을 예상하고, 대화의 문은 열어 놓되 장기전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2년 동안의 북·미대화에도 불구하고 기대와 달리 대외 환경이 여전히 위협적이라고 평가한다. 무엇보다 미국을 신뢰할 수 없고 오히려 제재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남북협력도 실질적으로 어렵고, 한국의 조정 역할도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난관에 직면하여 선택한 목표는 ‘국가생존과 버티기’이다.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 직면하여 국가생존이 최대의 목표이며, 제재로 인한 곤경을 자력강화로 버티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생존과 버티기를 위해 택한 전략은 정면돌파이다. 노동당 보고에서 정면돌파가 23회나 강조되었다. 북한은 압박에 대해 굴복하거나 양보하거나 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를 택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백두산에서 모닥불을 피우며 전의를 다짐한 것이 정면돌파 전략으로 나타난 것이다.

정면돌파를 위해 세 가지 과제를 내세웠다. 첫째,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에 대해 핵억제력 강화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전략무기를 개발하고 상황에 따라 ‘충격적 실제행동’을 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둘째, 제재에 대해 자력강화로 응수하겠다는 것이다. 제재로 인해 단번 도약이 어려운 실정을 감안하여 대내 자원을 총동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 완료 예정인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현실적으로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인하였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후 강조한 ‘인민생활 향상’을 언급하지 않는 대신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자력부강, 자력번영을 하겠다“고 함으로써 주민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공식화하였다. 셋째, 대내 결속력 강화 및 통치전략으로 당의 지도력 강화를 천명하였다.

북한의 새로운 길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김정은 정권은 출범 이후 핵억제력 강화와 경제발전이라는 2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심해 왔다. 첫째 전략은 2013년 발표된 경제·핵 병진노선이었다. 경제건설과 핵무력 증진을 병행하는 것이었다. 둘째 전략은 2018년 핵보유국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겠다는 경제건설 집중전략이었다.

2020년 북한이 셋째 국가전략으로 제시한 새로운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병진노선이라는 과거의 길로 돌아간 것일까? 아니면 경제발전에 역점을 두는 둘째 전략을 일부 수정한 것일까? 또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을 가려는 것일까?

새로운 길은 과거의 길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탐색하는 일종의 복합적 시도이자 과도기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길은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라는 점에서 핵보유 이전에 택했던 병진노선과 다르다. 그리고 새로운 길은 북·미협상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북·미대화가 없었던 시기의 병진노선과 다르다.

또한 새로운 길은 북·미대화를 추진하며 경제건설에 매진하려던 경제건설 집중전략과도 다르다. 새로운 길은 장기전에 대비하여 핵억제력 강화를 추진하며 궁핍을 견디겠다는 수세전략이다. 새로운 길은 핵능력을 바탕으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자력강화에 의해 장기전에 대비하되, 대화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복합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새로운 길은 희망찬 미래 비전이나 공세적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북한의 새로운 길은 지구전에 대비하여 진지를 구축하고 내핍을 통해 버티자는 방어적 길이다.

새로운 길은 꽃길이 아니라 곳곳에 장애물과 딜레마가 잠복한 가시밭길이다. 첫째, 핵억제력 강화는 레드라인을 넘어설 경우 미국의 군사행동과 유엔의 제재 강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치밀한 계산 하에 임계점을 넘지 않는 줄타기를 해야 한다. 둘째, 자력강화는 제재에 직면하여 택할 수밖에 없는 궁색한 선택이다. 제재 하에서 국가와 시장의 공생관계를 조정하면 여러 행위자 간 이익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 더욱이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철회한 대신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요구하는 데 대해 인민들은 냉소적 반응을 보일 것이다. 셋째, 당과 내각의 지도력 강화는 지방·기관·기업소의 분권적 성향과 부딪힐 수 있으며 생산·분배·유통과정에서 중앙집권화와 분권화 경향이 충돌할 수 있다.

북한의 새 길은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정면돌파를 위해 기동전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구전과 방어전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백한 것이다. 정면돌파의 깃발을 내걸고 주민들을 다그치고 있지만 실상은 정면돌파를 할 자원과 능력이 부족하다. 북한이 택해야 할 진짜 정면돌파는 비핵화와 개방을 실시함으로써 생존과 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어쩌면 북한은 참호에서 벗어나서 열린 세상으로 나오고 싶어서 우리와 국제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열린 공간을 제시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주경제와 컴패션의 따뜻한 동행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네티즌 의견 0
    0 / 300

    실시간 급상승

    9.9초 더보기

    아주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