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반상진 한국교육개발원장 “학령인구 감소 위기? 지금이 교육재정 확충 적기”

윤상민 기자입력 : 2020-01-20 00:02
"인구지형 변화 대비해 교육투자 배분 전략 정교화 해야" 대학 상향 평준화로 다수 명문대 체제로 전환…‘대학연합체제’ 구축 학습자의 ‘웰빙’ 고려해야…교·사대 교원 양성 방식 변화 필요 “5·31 교육개혁 소임 다해…‘2045 프로젝트’로 미래 교육 틀 그린다"
“학령인구 감소로 교육재정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지금은 인공지능(AI)·빅데이터 같은 미래 교육을 위해 교육재정을 확보해야 할 시기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인 우리나라 교육 여건은 고려하지 않은 채 학생이 줄어드는데 대학이 왜 이렇게 많으냐는 선동형 어법에 넘어가선 안 되죠.”

반상진 한국교육개발원(KEDI) 원장은 우리 사회가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교육 재정을 줄이는 쪽으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교육재정 투자는 논리의 문제가 아닌 의지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인구절벽 시대, 생산가능 인구 감소 시대에는 교육 재정을 과감히 투자해 인력의 질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상진 한국교육개발원(KEDI) 원장[사진=한국교육개발원]

우리나라의 2018년 합계출산율은 0.98이다. 신생아 수는 1971년 102만명에서 1995년 68만명, 2018년 32만명으로 급감했다. OECD 35개 회원국 평균 합계출산율은 1.68명이다. 우리나라가 현재 인구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선 합계출산율이 2.1 이상이어야 한다.

반 원장은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면 소비가 위축되며 일자리와 생산성이 줄어 저성장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다”며 “막연히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저출산 현상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 현상을 ‘인구절벽’과 ‘인구지형 변화’로 구분해 입체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구지형이 변화하고 있다는 지점에 주목한다. 인구 급감 상황에서도 농어촌의 합계출산율은 대도시보다 오히려 높다. 하지만 양질의 교육을 받기 위해 농어촌의 인구가 수도권과 대도시로 이동하면서 지역 간 인구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 인구지형 변화에 대비하고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교육투자 배분 전략을 정교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이는 KEDI가 지난해 발간한 연구보고서 ‘학생 수 감소에 따른 농촌 교육 실태 및 대응 방안’(양희준 연구위원)에서도 확인된다.

반 원장은 “지역별 편차를 고려하지 않고 학생 수 감소, 학급당 학생 수 감소, 교원 1인당 학생 수 감소 등으로 교육재정 운영의 방만함을 지적하는 건 ‘평균의 덫’에 빠진 형식적 논리”라며 “학교 공간 재구조화, 4차 산업혁명 등 미래 교육 체제를 위한 투자 강화로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반상진 한국교육개발원(KEDI) 원장[사진=한국교육개발원]

◆대학 상향 평준화로 다수 명문대 체제로 전환··· ‘대학연합체제’ 구축해야
가장 시급하게 교육재정을 투자할 곳은 어디일까? 단연 ‘대학’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반 원장은 “기본교육 초·중등은 물론이고 고교 무상교육도 당연히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하이-스킬(high skill)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 연구·개발(R&D)에 투자해야 한다”며 “연간 10조원가량 투입된다면 반값등록금 문제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각한 사회문제인 서울·수도권과 지역 간 대학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현재 소수 명문대학 체제를 전국 단위의 다수 명문대학 체제로 전환하고, 고등교육의 공적 가치에 더해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 원장은 프랑스 파리 국립대학 체제, 미국 주립대학 체제를 예로 들면서 “선진국들은 개별 대학 간 소모적 견제와 경쟁보다는 대학의 집단경쟁력을 높이는 공생적 대학 발전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를 타개하기 위해 공유성장형 대학연합체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구상하는 대학연합체제는 3단계로 나눠진다. 1단계에서는 대학 체제 전환을 위해 국립대학법, 지역대학발전지원법,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한다. 2단계에서는 국립대학을 유형으로 구분해 공동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연합체제를 운영한다. 마지막 3단계에서는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 연합체제를 중장기적으로 구축하는 단계다.
 

반상진 한국교육개발원(KEDI) 원장[사진=한국교육개발원]

◆학습자의 ‘웰빙’ 고려해야··· 교·사대 교원 양성 방식 변화 필요
우리나라 교육의 여러 문제 중에선 학습자의 ‘웰빙(well-being)'을 선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긴 공부 시간, 낮은 학습 흥미도, 지·덕·체라고 말하면서도 지식에만 초점을 둔 교육 등은 학습자를 행복하게 할 수 없고, 다양한 공부도 불가능한 데다 창의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반 원장은 “대학 졸업장과 관계없이 자신의 역량에 따라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드는 일이 강고한 대학서열 구조와 그에 따른 무한 입시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며 “이를 위해 교대-사범대의 교원 양성 과정 변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교대-사범대 시스템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관점에서는 효율적이지만, 교육과정·수업 방식 등 운영방식이 시대에 뒤떨어져 예비 교사의 전문성을 함양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교·사대의 카르텔을 타파하기 위해 석·박사 인력에게 교원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 원장은 “다양한 배경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교사로 유입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면서도 “AI, IT 기술이 발달하는 미래 사회에서 교사는 지식 전달자보다는 촉진자로 학생과 소통해야 하는데, 이런 시대적 흐름에서 전공 지식은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석·박사 학위가 있는 사람이라도 교과 교육학, 교육 실습 등의 과정을 최소 1~2년 심도 있게 거친 후 학교 현장에 투입해야 하며, 이런 과정을 거친 사람들에게 임용고시를 면제하거나 가산점을 주는 등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상진 한국교육개발원장(오른쪽)은 지난해 1월 김승환 전북교육감(왼쪽)을 만나 '한국교육개발원-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업무협력 교류 협정식을 맺었다.[사진=한국교육개발원 제공]

◆“5·31 교육개혁, 시대적 소임 다해”··· ‘2045 프로젝트’로 미래 교육 틀 그린다
반 원장은 지금을 ‘어려운 시대’라고 정의했다. 우리 사회에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의 신화가 여전히 자리 잡고 있고, 명문대·전문직 선호, 자녀교육 경쟁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시를 비롯한 다양한 교육정책이 입안되지만, 결과는 늘 왜곡된다.

반 원장은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내세운 5·31 교육개혁은 당시 신자유주의 기조에는 맞았을지 모르나 대학가에 지나친 경쟁을 불러일으켰고, 시대적 소임을 다했다”며 “이제는 새로운 교육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반 원장은 앞으로의 교육정책은 학습자의 사회경제적 배경, 투자 비용 등 교육 내적인 영역을 벗어나 노동시장 정책, 복지 정책뿐만 아니라 경제·산업정책, 조세정책 등보다 넓은 시야에서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KEDI는 지난해 10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노동연구원과 함께 ‘해방 100년, 혁신적 포용국가 실현을 위한 대한민국 교육체제의 대전환 방안’(2045 프로젝트) 연구에 착수했다. 25년 후 해방 100주년을 목표로 우리나라의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실현하기 위한 청사진과 추진전략을 제시하는 기획이다. 교육정책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지난 9일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와 MOU도 체결했다.

반 원장은 “알파고가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고, 일본 AI가 사법고시 문제 60%를 예측하는 지금, 수능 문제를 예측하는 AI가 나오지 말란 법이 어디 있냐”며 “2045년이면 자사고 폐지나 정시 40% 논쟁은 기억도 나지 않을 교육정책 이슈인데,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보며 엄청난 정보를 흡수하는 학생들을 위한 새로운 학력관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반상진 한국교육개발원(KEDI) 원장[사진=한국교육개발원]

◆반상진 한국교육개발원장은
△동국대 사범대 교육학과 △동 대학원 교육학 석사 △미국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원 교육행정학과 석·박사 △대통령 자문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 상임전문위원 △(사)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소장 △한국교육정치학회 회장 △한국교육재정경제학회 회장 △한국교육행정학회 회장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 △교육부 교육정책자문위원회 위원 △전북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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