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종말] 저금리 덫에 갇힌 은행들…'완화 중독' 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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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국제경제팀 팀장
입력 2020-01-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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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을 풀어도 꿈쩍않는 저물가·저성장

  • "적극적 재정정책이 해법" 주장 나와

  • "금리에 둔감해진 산업 변화 연구해야"

  • 통화정책 블랙홀…자산 거품만 키워

세계 중앙은행들이 저금리의 덫에 갇혔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해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등 주요 은행들은 '제로 금리' 혹은 마이너스 금리라는 파격을 택했다.

빠른 속도로 시장에 풀린 돈은 경제의 파국을 막았다. 그러나 경기 활력 회복에는 실패했다. 저금리에도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은 지지부진하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중앙은행들은 '금리'라는 강력한 무기를 잃게 됐다. 일각에서는 "중앙은행 시대가 종말을 맞았다" 왔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풀고 또 풀고···'완화'를 못멈추는 중앙은행들 

저금리의 효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서, 미국 연준을 비롯한 중앙은행들은 다른 방식으로 금융완화를 이어가고 있다. 시장에 돈을 풀고 보유한 자산 규모를 늘리는 것이다. 실제로 중앙은행들의 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부터 다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행은 일본 주식 가격과 연동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연간 6조엔씩 매입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논란이 일었던 당시 경기 안정의 방편으로 늘어났던 규모가 줄지않고 있다. 이전과 같이 3조엔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시장 충격을 우려한 중앙은행은 꿈쩍 않고 있다. 

2015년 금리인상으로 돌아섰던 미국도 지난해 경기하강 예방을 외치며 3차례 금리인하에 나섰다. 게다가 연준의 국채 매입규모도 늘었다. 급등한 단기금리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라지만, 얼굴만 바꾼 양적완화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일고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양적완화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지난해 말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 확대 정책을 '실패한 정책 실험'이다"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 정책이 10년 전 시장이 붕괴하는 것을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활발한 경기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로치 교수는 2008년부터 2018년 사이 미국과 유로존,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5조3000억달러 늘었지만, 이는 중앙은행에서 같은 기간 늘어난 대차대조표 자산 10조달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결국 나머지 4조7000억달러의 대부분은 위기 이후에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역할만 했다는 것이다.

그는 물가안정 목표를 통화정책 지침으로 삼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며, 계속되는 완화정책은 금융 안정 리스크만 키운다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중앙은행들은 이미 대규모 금융완화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완화를 멈출 경우 경제적 충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중앙은행 한계 봉착···"이젠 재정정책이 유효할 때" 의견도 

결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과 싸우지 말라는 것은 월가의 오래된 격언이지만, 이제 연준의 영향력은 예전같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WSJ은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중앙은행들은 금리라는 주요 수단을 빼앗겨 버렸다. 유로존과 일본은행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별로 없다. 미국 연준도 마찬가지다"라면서 "노동자, 기업, 투자자, 정치인들은 중앙은행의 영향력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경기 사이클이 돌아가는 세계의 도래에 대비해야 할 지도 모른다"라고 지적했다. 

하버드의 래리 서머스 교수는 "이제는 중앙은행이 원하면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 힘들어 졌다. ‘블랙홀 통화경제학’이라 부르든, ‘일본화(Japanification)’라 부르던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중앙은행은 이런 현상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의 영향력이 줄어든 만큼 이제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재정 적자나 인플레이션을 우려하지 말고 필요한 만큼의 화폐를 발행해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현대화폐이론(MMT)이 각광받는 것도 중앙은행의 입지가 좁아진 상황을 반영한다. 

그러나 재정정책은 정치권에서 결정하는 것이니만큼, 선거 등 변수가 많다. 또 유럽의 경우 EU 가맹국 사이의 경제적 격차와 다른 금리 등이 장벽이 된다. 

전문가들은 현재 경제 구조의 변화를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서머스 교수와 안나 스탠스베리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는 "경제 구조가 금리인하에 민감한 내구제의 생산 비율이 줄고, 저금리로 인한 경기부양 효과가 낮은 금융 및 전문 서비스, 교육, 건강 의료 분야 등의 비중이 늘어난 것도 금리의 영향력이 줄어든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새로운 서비스에 드는 비용이 저렴해지면서 물가 상승이 힘든 형태로 경제가 전환되고 있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완화를 이어가는 것 만이 경제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방안이 아닐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저금리 시대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와 비슷한 위기를 가져올 가능성은 적지만, 그렇다고 성장률 회복에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주식시장의 거품도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전에는 주가가 상승하면 채권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금리도 올라 위험자산의 추가 상승을 막았다. 그러나 최근 중앙은행이 저금리 기조를 지속하면서, 주가와 금리는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저금리 시대가 장기화하면서 자산 가격의 상승이 지나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중앙은행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해 11월 의회 증언 중에서 "현재의 뉴 노멀은 전 세계에서 저금리, 저물가, 저성장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서 연준은 이런 상황에서 기능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라 가르드 총재 역시 중앙은행 전략의 대규모 재검증에 착수할 방침이라고 블룸버그는 20일 보도했다. 지난 2003년에 나왔던 ECB의 인플레이션 목표에 대해서 검증하고 빈부격차와 기술, 기후변화 등 다음 10년의 과제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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