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출근길 만나면 오늘 하루 운 좋을 것 같다!"… '행복방송' 기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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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서 인턴기자
입력 2020-01-0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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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칭찬 민원 100건 이상 받은 승무원 19명 소속된 '센츄리 클럽'

'십이지의 첫 번째 주자 쥐띠(子)해가 돌아왔다. 십이간지의 첫 글자이며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 자시(子時)이듯 부지런함을 상징하는 해이다. 특히 새해는 힘이 가장 세고 지혜롭다는 흰 쥐의 해(경자년·庚子年)다. 지혜와 풍요로 가득할 2020년의 출발을 부지런히 알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졸음을 깨우기 위해 이어폰을 낀 사람들. 지하철 출근길에 “지난 한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시고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새해 맞으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지하철 방송이 흘러나오자 어느새 이어폰을 뺀 사람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늘은 괜히 운이 좋을 것 같아요.” 새해 아침 지하철을 탄 대학생 김준희씨(24)는 따뜻한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운수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 연휴를 앞두고 특히 승객이 많았던 4호선 출근길에는 “잠시 후부터 김밥 옆구리 터질 것 같은 지옥철이 예상되는데요. 저희 열차는 강철로 만든 김밥이라서 옆구리가 터지지는 않을 겁니다. 지옥철의 오명을 벗어보고자 열심히 운행하겠습니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들은 지하철에서 내리기 아쉬워하며 웃음으로 행복한 하루를 시작했다. 해당 글은 트위터에서 9934회 이상의 리트윗을 받으며 네티즌의 호응을 이끌었다.

자동 응답 방송이 아니라 직접 작성한 대본을 육성으로 전하는 것은 ‘행복방송’.
김태호 서울 메트로 전 사장은 칭찬 민원 100건 이상을 받은 승무원들을 모아 ‘센츄리 클럽(Praise Century Club Members)’을 구성했다. 클럽은 2018년 8월 공식적으로 시작 됐으며 현재까지 19명이 속해 있다.

2020년 새해를 맞이하여 ‘행복방송’을 하는 센츄리 클럽 소속 승무원을 만났다.

 

6호선 방송을 하고 있는 김정주 기관사 [사진=박연서 인턴기자]


◆ 안전운행부터 생명을 구하는 방송까지 이어지고파... ‘6호선 김정주 기관사’

6호선 신내승무사업소에서 17년째 기관사로 일하는 김정주(45)는 이용자의 마음에서 출퇴근길 응원 방송을 하고 있다. 김씨는 여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출퇴근길에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살짝 졸다 눈을 떠보니 한 정거장 지나치기가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방송을 한 번만 해줬더라면 내릴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 아쉬워 직접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일상생활 속에서 승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꾸준히 찾고 있다. 행복방송은 즉흥적으로 하려고 하면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접하는 매체에서 좋은 글을 메모해 방송 대본을 준비한다. 하지만 김씨가 준비하는 방송은 이뿐만이 아니다. 어떤 긴급한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방송을 통해 임기응변을 연습하기도 한다.

그런데 행복방송에 항상 칭찬만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20~30분 정도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이 방송을 전부 메모한 뒤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어야 하는데 역마다 방송을 해서 시끄럽다. 자동 안내 방송이 나오니 안전 운행에나 신경 쓰고, 직원 교육 똑바로 해라’는 내용의 불만 민원을 제기한 적도 있었다.

김씨는 “6호선은 1인 승무라서 방송이 필수가 아니다. 이때 방송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했다”며 “위급한 상황이 있을 때 방송하려고 해도 원래 (방송)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하려고 하면 잘 안 될 것이다. 평소에 꾸준히 훈련돼 있어야 하는데 불편하게 받아들이시면 괜히 마음이 아프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환하게 웃으며 방송을 놓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위기의 순간이 닥쳤을 때 평소에 하던 방송과 순발력이 빛을 발해서 승객들의 생명을 구하는 방송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더불어 “행복방송이 하루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응원이, 마무리하는 분들에게는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며 안전 운행은 기본이고 모든 사람이 지하철에서 행복할 수 있는 ‘행복방송’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 지하철에서 위로받아 가길... ‘4호선 최호 차장’

4호선 상계승무사업소 차장으로 근무하는 최호씨(27)는 2018년 3월 1일에 입사해 2년 차를 앞두고 있다. 피곤한 승객들을 위로하기 위해 방송을 시작한 최씨는 그 이후 마이크를 놓을 수 없었다. 첫 방송을 한 날 첫 칭찬 민원을 받았고 이때 느꼈던 승객과 소통하는 기분을 잊을 수 없다며 2년 동안 초심으로 방송하고 있다.

최씨는 승객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고 재미있는 방송을 한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얼굴 대신 목소리에 미소를 담아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승객 여러분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셔다드릴 루돌프 최호입니다”라며 자신을 루돌프에 빗대어 이색적이고 유쾌한 방송을 진행했다.

최근 ‘1년 반 준비한 시험을 망치고 생각을 정리하며 지하철을 타다가 에어팟까지 잃어버려서 너무 슬펐다. 그런데 동작 대교에서 차장님의 방송을 듣고 많이 힘이 났다. 에어팟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이야기였는데 덕분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우울하고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날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칭찬 민원을 받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목소리로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 역시 일상에서 접하는 매체에서 기억에 남는 멘트가 있으면 저장해두고 대본에 맞게 편집한다. 승객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 방송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칭찬 민원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는 최호씨. 하루하루 힘들었을 승객들이 지하철 안에서만큼은 마음 상하거나 힘든 일이 없길 바라며 지금보다 더 힘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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