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인터뷰]"미·중 2단계 합의 어렵다, 韓기업 탈중국 신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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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20-01-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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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루이 인민대 경제학원 부원장 인터뷰

  • 거시경제 권위자, 2000억弗 이행 미지수

  • 美, 구조·제도 개조 시도하면 협상 파행

  • 中경제 이미 L자형 진입, 반등 시기상조

  • 차이나 엑소더스? 떠나면 돌아오지 못해

류루이 인민대 경제학원 부원장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재호 기자]

"미·중 무역협상이 1단계 합의에 도달한 것은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 구조 변화가 최대 쟁점이 될 2단계 협상은 더욱 어려울 겁니다. 어쩌면 영원히 합의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어요."

중국의 거시경제 분야 권위자인 류루이(劉瑞) 인민대 경제학원 부원장은 향후 미·중 협상이 더욱 험난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중국 경제의 최대 위험 요인 역시 미·중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를 꼽았다. 경제성장률 6%는 간신히 달성하겠지만 경기 하강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경영 환경 악화를 이유로 중국을 벗어나 동남아시아 등지로 이동하는 것은 신중히 선택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한번 떠나면 다시 기회를 얻기 힘든 시장이라는 이유에서다.

내년 한·중 관계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과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 가속화 등으로 한층 진전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한반도 비핵화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직시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1단계 중국이 더 양보, 2단계는 난망

지난달 31일 베이징 인민대 연구실에서 만난 류 부원장은 미·중 무역협상 1단계 합의가 발표된 데 안도감을 표하는 한편 이행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나올 가능성도 경계했다.

류 부원장은 "포괄적 합의를 고집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단계적 합의를 받아들이면서 1단계 합의가 가능해졌다"며 "이에 관세 전면 철회를 요구하던 중국도 부분 철회안을 수용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기술 훔치기' 등 중국이 민감해하는 일부 표현을 합의문에서 삭제했고, 중국은 2년간 2000억 달러어치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기로 했다"며 "양측이 조금씩 양보했지만 중국이 좀 더 큰 양보를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만 중국이 올해와 내년 대미 수입액을 1000억 달러씩이나 늘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류 부원장은 "보잉 항공기는 결함 논란이 있고 반도체 등 민감 품목은 미국이 수출을 원치 않는다"며 "대두 등 농산물과 천연가스 정도 외에는 중국이 구매할 상품이 마땅치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수입 규모와 품목, 향후 이행 과정 등에서 양측이 충돌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1단계 합의안에 서명한 직후 2단계 협상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류 부원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쉬운 것부터 합의하고 어려운 사안은 뒤로 넘겼는데 2단계 협상부터 중국의 경제 구조와 제도를 바꾸려는 시도가 본격화할 것"이라며 "산업 보조금 철폐나 '중국제조 2025' 포기 등은 시 주석은 차치하고 중국인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굴욕적 내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국유기업 독점 해소나 중국 기업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 준용 등의 의제라면 협상의 여지는 있다"고 부연했다.

올해 중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 역시 미·중 무역전쟁으로 봤다.

류 부원장은 "무역 갈등과 별개로 과학기술·인재·금융 전쟁도 계속될 것"이라며 "미국이 홍콩·대만·신장위구르자치구 등의 이슈로 중국 내 혼란을 부추길수록 경제적 불확실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류루이 인민대 경제학원 부원장이 본지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이재호 기자 ]


◆中 경제 바닥 아니다, 경기하강 지속

류 부원장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바오류(保六·6%대 성장률 유지) 논란의 허구성을 강조했다.

중국 경제가 이미 'L자형'의 저속 성장 추세로 접어든 마당에 6.3이든, 6이든, 5.7든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자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타격을 덜 주는 방식으로 연착륙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류 부원장은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과 돼지고기 가격 급등, P2P(개인 대 개인)로 대표되는 인터넷 금융업체의 줄도산 등 3가지 악재가 중국 경제에 타격을 줬다"며 "아마 올해 6% 정도는 맞추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경제는 하강 국면이지만 절벽식 급락은 아니고 다소의 파동을 보이며 점진적으로 내려가는 추세"라며 "하강은 지속 중이며 아직 변곡점이나 바닥을 보인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2010년 이후 10년 만에 국내총생산(GDP)을 2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달성했고 △샤오캉(小康) 사회 건설을 위해 빈곤 퇴치와 환경 보호가 중요한 해라는 점을 근거로 중국 수뇌부도 성장률 자체에 연연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류 부원장은 "투자와 소비가 중요한 시점"이라며 "올해 고정자산 투자와 소매판매 증가율이 각각 5%와 6% 미만으로 떨어진다면 정부도 추가 부양책을 꺼내들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올해는 중국의 13차 5개년(13·5) 계획이 종료되고 14차 5개년(14·5) 계획이 확정된다.

어떤 변화가 생길지 묻자 "GDP 대비 광의통화(M2) 비율이 200%에 달하고 기업 부채비율도 56%로 적정 수준 이상이라 14·5에서도 부채 감축이 최대 화두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또 "화웨이와 ZTE 등이 제재를 당하면서 핵심 기술 확보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라며 "국가 경제의 안전을 도모할 장치를 만드는 데 주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동남아보다 中 중서부로 눈 돌려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과 미·중 무역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경영 환경 악화에 시달리는 한국 기업이 중국을 등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류 부원장은 이 같은 추세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한·중 경제의 디커플링을 이유로 중국을 떠나 동남아시아로 이동하고, 한국 정부도 신남방 정책을 내세우며 이를 부추기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떠나는 것은 해당 기업의 선택이지만 중국의 구조조정이 완료된 이후 다시 돌아오려고 할 때는 전과 같은 기회나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류 부원장은 "동남아 10개국은 9종의 언어를 사용해 복잡하고 해운 중심의 물류는 비용이 저렴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비효율적"이라며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대에 옳은 선택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중국 중서부는 물류 네트워크가 완비돼 있고 청두·우한·시안 등 새로운 1선 도시에 이름을 올리며 급성장하는 대도시도 많다"며 "남진(南進)보다 서진(西進)을 해 중앙아시아까지 이어지는 길로 향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라고 권했다.

류 부원장은 시 주석의 올 상반기 방한이 확정된 데 환영의 뜻을 전하며 "한·중 FTA 2단계 협상의 완료와 한·중·일 FTA 논의의 진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반도 평화 안정과 한국 경제의 지속 발전을 위해 북한 비핵화도 차질 없이 추진되기를 희망했다.

류 부원장은 "북·중은 과거 혈맹이었지만 시 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현재 지도자들은 대단히 현실적"이라며 "특히 김 위원장은 중국의 지원 없이 핵무기만으로 체제 보장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중국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한·미 양국은 이 부분을 잘 활용했으면 한다"며 "북한의 무력 도발은 북·중 신뢰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부연했다.

△류루이 부원장은

중국의 12차 5개년 계획 수립에 참여한 대표적인 거시경제 전문가로, '중국거시경제관리교육학회' 회장도 겸임 중이다. 2002년 서울대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았으며 한중사회과학학회 부회장을 지내는 등 한국 사정에 밝은 '지한파' 학자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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