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기업 연말 풍속도] 웃음 사라진 기업들, 송년회도 없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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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모·임애신·유진희 기자
입력 2019-12-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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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를 외치던 기업들의 송년회 풍속도 크게 바뀌고 있다. 음주·가무를 강요하던 구태에서 벗어나 자발적인 소규모 행사나 문화행사 등으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과 유난히 어려웠던 경제환경으로 부침을 겪었던 기업들은 직원들의 남은 연차를 사용해 겨울 장기 휴가를 갈 것을 독려하거나 직원들이 받을 부담은 최대한 줄이면서 의미는 풍성한 행사들로 채우고 있다.

◆더 차가워진 기업 송년회 분위기

삼성그룹과 LG그룹 등 대기업들은 종무식과 송년회를 열지 않는다. 각 팀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는 있어도 공식 송년회는 없다는 게 이들 기업의 설명이다. 현대·기아차는 31일 종무식만 연다. 오히려 한국GM은 고생한 임직원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오는 23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2주간 ‘리프레시(재충전) 휴가’에 들어간다. 전 직원이 대상이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비용 절감과 직원들 복지 차원에서 연차 사용을 독려하고는 있으나, 다른 특별한 이벤트는 없다”며 “실적이 좋을 때는 들뜬 마음으로 한 해를 보냈으나, 업황이 어려우니 분위기도 예전 같지가 않다”고 말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일본의 경제 도발로 최악의 한 해를 보낸 항공업계도 대부분 종무식을 생략한다. 구조조정과 인수합병 등 굵직한 이슈들이 남아 있어서다. 대한항공은 최근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으며, 아시아나항공은 새로운 주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저비용항공사(LCC)들도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의 인수에 들어가면서 후폭풍이 몰아닥칠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LCC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보너스 등 연말이면 즐거운 소식이 많았는데, 올해는 구조조정 등 부정적인 소식만 전해진다”며 “팀별 회식 등으로 조촐하게 한 해를 마무리 할 것 같다”고 전했다.

◆‘나눔과 문화생활’로 송년회 여는 기업들

불황이지만 연말을 맞아 나눔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그 의미를 되새기는 기업들도 있다.

SK케미칼과 SK가스는 지난 18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케미칼 본사 에코랩에서 ‘희망메이커’ 청소년과 가족을 위한 송년행사 ‘2019 행복 업(Up) 희망 고(Go)’를 개최했다.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은 이번 송년회에는 성남 지역 희망메이커 아동과 가족, SK케미칼과 SK가스 구성원, 지역 복지관 관계자 등 총 220여 명이 참석했으며 비보이 전문 공연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누는 행사로 진행됐다.

코오롱그룹은 지난 2일부터 10일간 서울 강서구 마곡동 코오롱 온앤온리(One&Only) 타워 등 전국 8개 사업장에서 ‘헌혈하고 송년회 하세요’ 캠페인을 열었다. 겨울철은 헌혈 참여자가 가장 적은 시기로 임직원이 기부한 헌혈증은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전달해 소아암을 앓는 환아들을 위해 쓰인다.

술 대신 문화행사로 행사를 대체하는 기업들도 있다. LS그룹은 최근 송년회 대신 LS용산타워 로비에서 임직원과 외부 관객을 초청해 송강음악회를 열었다. 신일은 오는 26일 LG아트센터에서 전 직원을 대상으로 뮤지컬 ‘보디가드’ 관람 행사를 연다. 이번 송년회는 술 중심의 회식이 아닌 인기 뮤지컬을 관람하며 건전한 회식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마련됐다. 신일 관계자는 “직원들이 바쁜 업무로 퇴근 후 문화생활을 즐기기 어려운데, 힐링 타임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이번 송년회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국제강도 연말 송년회 대신 직원들을 대상으로 다트 대회를 연다. ‘토끼띠 팀’과 ‘돼지띠 팀’ 등 각 띠별로 팀을 꾸려 최종 승리하는 팀에게 푸짐한 상품이 전달될 예정이다.
 

코오롱그룹은 지난 2일부터 10일간 '헌혈하고 송년회하세요' 캠페인을 열었다. 코오롱 직원들이 헌혈증을 기부함에 넣고 있다. [사진=코오롱 제공]


◆'괴롭힘 금지법'에 바뀐 송년 분위기

올해 7월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연말 송년회 문화를 바꾼 요인 중 하나다. 다만 연말에 술자리 빈도가 늘어나는 만큼 회식 자리 갑질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금지법 시행 직후인 7월 16일부터 9월 3일까지 원치 않는 회식이나 음주 등 강요를 받았다며 공개한 제보 건수는 120건(3.7%)으로 나타났다. 이는 법 시행 한 달 후(4.1%) 대비 소폭 감소한 수치다. 직장 내 괴롭힘의 5가지 범주 중 ‘강요’ 항목에는 회식과 음주, 흡연, 후원, 장기자랑, 행사, 모임 등이 있다.

다만 각종 송년 모임이 이어지는 연말연시를 맞아 이른바 ‘회식 갑질’ 사례는 여전하다는 게 직장갑질119 측 설명이다. 실제 지난달 1일부터 이달 15일까지 회식 관련 갑질 제보는 23건으로 나타났다. 사례를 보면 회식 참석을 강요받았다거나 부하직원에게 술값을 부담시킨 제보도 있었다. 몸이 아픈데도 휴일 야유회에 가야 했던 사례도 여럿 있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대되면서 회사들도 송년회나 신년회를 최대한 자중하는 분위기”라며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기업 내에서도 커지고 있어 강제적인 행사 등은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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