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함 버리고 발로 뛴 구자경 LG명예회장 "답은 현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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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애신 기자
입력 2019-12-1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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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LG명예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회장 취임 전까지 20년간 생산현장 지키며 LG의 비약적인 성장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한국의 2세 경영인 중 구 명예회장만큼 현장을 잘 알고 기술을 잘 이해하는 기업인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 명예회장은 LG그룹의 창업 초기부터 회사 운영에 합류해 부친인 구인회 창업회장을 도와 회사를 일궜다.  

구 명예회장이 진주사범학교를 마치고 교직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교사로 근무 중이던 1947년, 부친이 LG의 모기업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설립해 럭키크림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이 날로 번창해 일손이 모자라자 구 명예회장은 낮에는 교사로, 밤에는 부친의 사업을 도우며 지냈다.

그러던 중 아예 회사에 들어와 사업을 도우라는 부친의 부름에 1950년 교편을 놓고 본격적으로 기업인으로의 길을 걷게 됐다.
 

1970년 1월 취임 당시 구자경 명예회장 모습 [사진=LG그룹 제공]

구 명예회장은 럭키크림 생산을 직접 담당하면서 현장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이사라는 직함에 어울리지 않게 손수 가마솥에 원료를 붓고 불을 지펴 크림을 만들고 박스에 일일이 제품을 넣어 포장해 판매현장에 들고 나가기도 했다.

밤에는 하루걸러 숙직을 하며 아침 5시 반이면 몰려오는 도매상들을 맞았고,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공장가동을 준비하는 등 현장에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판자를 잇대어 벽을 만든 공장에서 숙직할 때면 판자벽 사이로 모래바람이 들어와 자고 나면 온 몸이 모래투성이였고, 겨울에는 그 틈으로 찬바람이 쏟아져 슬리핑백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자야 했다. 잦은 모래바람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허름한 야전점퍼에 기름을 묻히고 다니면 그 모습은 영락없는 현장 근로자였다.

배달 과정에서 뚜껑이 파손되는 일이 생기자 구 명예회장은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 크림통 뚜껑 개발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현장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던 애로사항이다. 당시 플라스틱에 관한 정보가 없던 때라 집 뜰의 가마솥에서 베이클라이트나 요소수지 등의 원료를 녹이면서 실험에 열중했다.  

아울러 구 명예회장은 락희화학과 금성사의 부사장에 이르는 동안 부산의 범일동공장, 부전동공장, 연지동공장, 온천동공장 등 시설확장의 중심에 서 있었다.

당시 구 명예회장은 설비를 점검하고 기계를 발주하는 등 공장 신·증축을 직접 해 내면서 화학·기계·전기 등에 관해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게 됐다. 이는 후에 화학과 전자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영양분이 됐다.
 

1999년 10월 LG생활건강 청주 치약공장을 방문한 구 명예회장(오른쪽)[사진=LG그룹 제공]

그 시절 치약 튜브는 납 표면에 주석을 입히고 그 위에 인쇄를 했었는데, 생산이 뜻대로 되지 않자 구 명예회장은 과거 공장에서의 도금 경험과 주변 기술자들로부터 흘려 들은 단편적인 기술들을 모았다. 몇차례 시행착오 끝에 냉간 압착 튜브 코팅기술 개발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락희화학에서의 플라스틱 가공 경험은 훗날 금성사의 성장에도 도움이 됐다. 구 명예회장은 플라스틱 가공에 필수적인 자체 금형 기술 확보와 인력 양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때 축적된 금형 역량을 바탕으로 라디오, 선풍기, 모터 등 당시로서는 높은 정밀도를 필요로 하는 전자제품의 금형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처럼 구 명예회장은 국내최초의 플라스틱 생활용품, 비닐제품, 라디오, 선풍기, TV 등 새로운 화학과 전자 제품의 탄생과 호흡을 늘 같이 해 왔다.

흔히 경영수업이라고 하면 영업이나 기획, 해외지사에서 출발해 몇 년간 실무를 보다가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경영자로 나가는 것이 익숙한 과정으로 여겨졌다.

이에 반해 구 명예회장은 십 수년 공장 생활을 하며 '공장 지킴이'로 불릴 만큼 현장 수련을 오래 했다. 사람들이 부친인 구인회 창업회장에게 '장남에게 너무한 거 아니냐'고 할 정도였으나, 창업회장은 '대장간에서는 하찮은 호미 한 자루 만드는 데도 수 없는 담금질로 무쇠를 단련한다. 고생을 모르는 사람은 칼날 없는 칼이나 다를 게 없다'며 현장 수업을 고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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