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로 무장한 동남아 ‘전자결제 앱’… ‘현금 없는 사회’ 성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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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예지 기자
입력 2019-12-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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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남아 5개국 지난해 전자결제 거래량 100억건 넘어

  • 오보·트루머니·에어페이 등 전자결제 앱이 시장 주도

  • 송금 등 금융 서비스도 스마트폰 앱으로 한번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사는 엔지니어 바유 위착소노는 최근 월급의 70%를 전자결제 시스템과 연동된 계좌로 입금하고 있다. 그가 구입하는 물건 대부분을 스마트폰 전자결제 애플리케이션(앱) '오보(Ovo)'로 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착소노는 “해당 계좌에 입금할 수 있는 제한선(735달러·약 88만원)만 없다면 월급 전액을 이 계좌로 받고 싶다”고 말한다.

위착소노를 비롯한 수많은 동남아시아인의 지갑이 스마트폰으로 바뀌고 있다고 닛케이아시안리뷰(NAR)가 최근 보도했다. 물건 구매에서 해외송금, 투자까지 모든 거래가 스마트폰 앱으로 가능하게 되면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의 5대 경제국가인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태국의 전자결제 거래량은 연간 100억건을 넘어섰다. 2017년 거래량이 80억건에 못 미쳤던 것을 감안하면 빠른 성장세다.

◆전자결제 앱 급성장...동남아 '현금 없는 사회'로

특히 인도네시아는 ‘현금 없는 사회’로의 변화가 가장 빠른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전자결제 시스템을 통한 거래 점유율이 2017년 10% 미만에서 2018년 36%로 급증했다.

상대적으로 전통 금융거래는 급감하는 추세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전자결제를 위한 계좌는 2억5700만개가 개설된 반면, 현금자동인출기(ATM) 기반 계좌는 1억7000만개 신설되는 데 그쳤다.

인도네시아 화교 재벌 리포그룹이 내놓은 전자결제 앱 오보가 이 같은 변화를 이끌고 있는 주역으로 꼽힌다. 오보는 지난 2016년 출시된 이후 동남아 최대 차량 호출 서비스인 그랩(Grab)의 주요 결제 수단으로 탑재되면서 이목을 끌었다.

현지 디지털 조사업체인 스냅카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오보는 인도네시아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자결제 앱으로 성장했다. 최근 2년간 점유율이 무려 58%에 달해 23%인 2위 '고페이(Go-pay)'를 크게 따돌렸다.

인공지능(AI) 기반의 똑똑한 기능이 오보의 인기에 한몫을 보탰다. 오보는 전자결제 거래를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사용자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용자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어떻게 돈을 사용하는지 파악해 지출 한도를 결정해줘, 합리적인 소비를 지원
하는 것이다.

큰 인기에 힘입어 오보의 기업 가치는 29억 달러를 넘어섰다. 인도네시아의 5번째 유니콘(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기업)이 된 셈이다.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도 전자결제 앱이 시장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최대 재벌인 짜웬포크판(CP) 그룹의 전자화폐 계열사 트루머니(TrueMoney)가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에서는 온라인 쇼핑 플랫폼 쇼피로 유명한 씨(Sea)그룹의 '에어페이(AirPay)'가 시장을 이끌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해외송금 등 앱 기반 금융 서비스도 확대

물건 구매 외에 송금, 투자 등 금융 서비스가 스마트폰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최근 동남아시아에서 눈에 띄는 변화다.

싱가포르와 홍콩 등지에 거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필리핀 이주 노동자들은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주기 위해 해외 송금이 가능한 곳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서곤 했다. 이렇게 부쳐진 돈은 고향의 가족들에게 보내지기까지 며칠이 걸리곤 했는데 이제 이 모든 게 ‘과거의 풍경’이 돼가고 있다.

싱가포르 텔레콤의 앱 ‘대시(Dash)’를 통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로의 송금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송금 통신망인 스위프트(SWIFT)도 최근 회원은행들 간 해외 송금을 30분 이내 완료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시행 중이라고 NAR이 전했다.

캄보디아는 지난 7월 중앙은행이 지원하는 세계 최초의 블록체인 기반 결제 앱 '바콩(Bakong)'을 출시하고 이를 통해 송금 서비스도 시작했다. 바콩에서는 현지 통화인 리엘화의 통화가치가 불안정한 탓에 달러화도 통용되며 고객이 은행 계좌를 개설할 필요가 없다. 다만 해외 이주 노동자의 송금 수요를 맞추기 위해 태국 중앙은행 및 말레이시아의 주요 은행과 제휴를 맺었다.

스즈키 히로시 캄보디아 기업연구소 최고경영자(CEO)는 “디지털 화폐는 시스템 장애와 사이버 공격에 취약하지만 캄보디아 등 개발도상국은 관련 제약이 거의 없어 도전할 수 있다”며 동남아 국가들이 이를 도입하기 유리한 환경에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4월에는 태국과 미얀마 중앙은행이 블록체인 스타트업 에베렉스의 송금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래픽=아주경제]

◆동남아 전자결제 강세 이유는..."금융 보급률 낮고, 소비자 젊어"

전문가들은 동남아의 열악한 금융환경이 동남아를 현금 없는 사회로 이끈 요인이 됐다고 분석한다. 열악한 금융 인프라·낮은 계좌보급률 등 금융 접근성이 적은 점을 IT·블록체인 업계가 기회로 삼았다는 것이다.

NAR은 “동남아인의 은행계좌 보유와 신용카드 소지 비율은 낮은 반면, 스마트폰 보급률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스마트폰을 통한 생활방식 변화가 수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인도네시아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계좌를 갖고 있지 않다. 이들은 복잡한 절차 때문에 은행 계좌 개설을 꺼린다. 이 결과 신용카드 보급률도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하다. 반면 휴대전화 보급 대수는 약 3억4000만대로 보급률이 인구 대비 130%에 달한다. 이 중 스마트폰이 60%를 차지한다.

‘젊은 동남아’도 이유로 꼽힌다. 동남아는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 속에서도 비교적 젊은 인구가 많다. 인도네시아의 평균 연령은 29세에 불과하다.

따라서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통한 소비활동도 활발하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와 태국·베트남 등 동남아지역 소비자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올라온 게시물을 통해 제품을 구매하는 비율이 50%에 달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전 세계 평균 구매율이 21%인 데 비하면 엄청난 규모다.

NAR은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젊은이들이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데는 어려움이 있는데, 최근 많은 전자결제 앱들이 일정 금액을 미리 사용하고 추후 결제하는 시스템을 내놓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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