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전주의 기적(奇跡)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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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19-10-3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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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위치한 샬럿(Charlotte). 샬럿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름이다. 하지만 괴테가 쓴 소설 속 여주인공과는 무관하다. 도시가 탄생하기 전 영국으로 시집간 샬럿 왕비를 기념해 붙인 이름일 뿐이다. 샬럿을 언급한 이유가 있다. ‘샬럿의 기적’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스웨덴 ‘말뫼의 기적’에 버금가는 일이 지난 20년 동안 이곳에서 벌어졌다. 말뫼는 조선산업 쇠락과 함께 망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도시 재생을 통해 첨단도시로 거듭났다. 노스캐롤라이나 샬럿도 마찬가지다.

샬럿은 금융 중심도시로 거듭났다. 뉴욕에 이은 제2 금융도시다. 지난 20년 동안 인구는 두 배 이상 늘었고, 젊은 도시로 탈바꿈했다. 미국 동부에 위치한 샬럿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바람은 BoA(Bank of America)에서 시작됐다. 20년 전 샬럿 인구는 40여만명 수준이었다. 2000년 BoA 본사가 이전하면서 87만명으로 급증했다. BoA와 웰스파고(구 와코비아) 근로자만 각각 1만3000명, 2만명이다. 15개 금융회사 본사도 옮겨왔다. 자연스럽게 ‘여왕의 도시’는 미국을 대표하는 금융 중심도시로 거듭났다.

농도(農都)로 인식된 전북 전주에도 바람이 불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이 이전하면서다. 국민연금공단은 2015년 7월 여의도를 떠나 전주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 전주 이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높았다. 여의도를 벗어나는 것에 대해 무모하다는 여론이 높았다. 금융계는 물론이고 정치권, 보수언론까지 가세했다. 전문 인력이 이탈하고, 수익률도 급감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면에는 서울 중심 기득권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에게 국민연금공단 이탈은 기득권 상실이다. 하지만 전주 리스크는 불과 4년 만에 과장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수익률을 보자. 올해 1~7월까지 수익률은 8.06%. 세계 5대 연기금 가운데 최고다. 7개월 동안 수익금은 무려 51조7000억원이다.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정했던 지난해 실적도 놀랍다. 일본(GPIF) -7.7%, 노르웨이(GPFG) -6.1%, 네덜란드(ABP) -2.3%, 미국(CALPERS) -3.5%인 반면 국민연금공단은 –0.9%에 그쳤다. 장기 평균 수익률(2011~2017)도 다르지 않다. 국민연금공단은 6.5%로 일본(3.1%)보다 두 배 이상 높다. 미국(6.3%), 네덜란드(6.2%), 노르웨이(5.8%)도 앞질렀다.

다음은 금융도시로의 진전이다. 공단 이전에 따라 전주는 금융도시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부산 문현을 연결하는 금융 트라이앵글이다. 연금공단 주변은 금융기관 이전을 대비해 부지를 마련한 상태다. 이미 뉴욕에 본사를 둔 스테이트 스트레트 은행과 멜론 은행이 전주에 지사를 설립했다. 해외 금융기관이 지방에 지사를 설치하기는 처음이다. 2007년 금융 중심지로 지정된 부산도 못한 일이다. 조만간 SK증권 사무소도 문을 연다. 샬럿이 그랬듯, 전주도 금융도시로 여건을 차근차근 마련하고 있다.

전주가 금융 중심도시로 성공한다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오늘날 지방도시는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전국 시·군·구 228곳 가운데 89곳(39%)을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했다. 5년 전 75곳과 비교하면 14곳이 늘었다. 반면 수도권 인구 집중은 심화되고 있다. 통계청 장래 인구추계에 따르면 수도권 집중은 2015년 49.5%에서 2045년 50%로 예측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갈수록 더할 것이다. 국가균형발전은 절박한 과제다. 그래서 국민연금공단과 전주 금융도시 성공을 시금석으로 주목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도 보수언론과 정치권은 트집 잡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대부분 의도된 팩트를 소재로 삼는다. 끊임없이 위기설을 조장하고, 전주 리스크를 부각시키고 있다. 기금 고갈 우려도 단골 메뉴다. 지난해 보도는 좋은 사례다. TV조선은 그해 1~7월 국민연금공단이 국내 주식에서 10조원 손실이 났다고 보도했다. 전문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운용 수익률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기금고갈 우려로 이어져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반면 YTN은 같은 기간 총수익을 8조7000억원으로 보도했다.

누구 말이 맞을까. 둘 다 인용한 데이터는 맞는다. 다만 TV조선은 국내 주식투자 손실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이다. 국민연금은 주식, 부동산, 채권 등 8가지 자산에 분산 투자한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투자 원칙이다. 지난해 1~7월 중 국내 주식시장에서의 손실은 맞는다. 하지만 총 운용수익을 고려하면 8조7000억원을 벌었다. TV조선이 국내주식 손실만 콕 찍어 부정적으로 보도한 의도를 의심케 한다. 의도적인 문재인 정부 비판과 보험회사와의 이해관계 때문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다.

국민연금이 불안하면 사보험 시장에 기댈 수밖에 없다. 또 그래야 서울 기득권을 되찾을 근거를 확보한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기금운용은 특정한 전문 인력 한 사람 때문에 손실이 좌우되는 구조가 아니다. 전주 이전 이후 괄목할 만한 수익을 올리며 안정적으로 뿌리내렸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김 이사장은 전폭적인 지자체 지원을 당부했다. 강력한 CEO 의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이 결합될 때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이 그랬다. 전주에서 기적을 지켜보는 일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도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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