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칼럼] 4차혁명 승부처는 '표준' 쟁탈전

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입력 : 2019-10-22 16:19

[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지난 17일 ‘세계 표준의 날’ 기념식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이후 매년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지만, 기념식은 물론 표준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 표준의 의미는 어떠한 판단이나 측정의 준거를 마련하는 것으로 우리의 일상 속 선택의 순간에 대한 기준을 제공하고 있다. 아침 회의시간을 알려주는 표준시각, 급히 나오다 잃어버린 스마트폰 충전 케이블, 회의 자료가 저장된 USB 디스크, 회사에서 사용하는 회의록 서식 등 거의 모든 곳에 표준이 적용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표준에 대해 의식하지 않고 넘어갈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서울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을 이용해 본 분들은 지하철 이동 중 전력공급방식 변경에 대한 안내방송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처음엔 의아해하다가도 매일 지나다니다 보면 1호선의 남영-서울역, 청량리-회기, 4호선의 선바위-남태령에서 전등이 소등되고 냉난방장치가 잠시 멈춘다는 것에 대해 그리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이는 국철과 지하철의 표준이 달라 서로 다른 전력방식의 차이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우리는 주변의 표준에 대해 당연하고 익숙하다 보니 점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표준과 관련한 개인적 경험으로 대학원생 시절, 해외 학회에 보냈던 연구논문이 반려가 되어 돌아온 적이 있었다. 연구의 내용이 부족하여 그렇다면 이해가 되지만, 확인해 본 결과 반려 이유는 제출용지가 레터지(letter size)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워드프로세서의 레터지는 A4보다 세로 길이가 짧아, 글의 하단부분이 잘려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반려된 사유였다.

우리는 일상 업무에서 기본 용지로 A4 용지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우리뿐 아니라 많은 국가가 A4 용지를 기본 용지로 사용하지만, 전세계 딱 두 나라만 예외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미국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표준의 중요성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대표적 예가 미국의 남북전쟁 이야기이다. 미국의 역사 중 남북전쟁은 노예 소유를 허용하자는 남부와 금지하자는 북부의 전쟁으로 세계사 혹은 링컨의 위인전을 읽지 않았더라도 다들 알고 있듯이 이 전쟁의 승자는 북부였고 이를 통해 노예해방이 선언되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사실 남북전쟁의 승리를 이끈 원동력은 소총의 표준화로부터 기인한다는 사실을 아는 분은 별로 없다. 당시 미국의 소총은 독립운동 과정을 거치며 유럽에서 수입되었던 것으로 남북전쟁 이전까지는 사실상 관상용이나 장식용이었다. 그렇다 보니 총기는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작품에 가까웠다. 문제는 수작업으로 제작된 소총이다 보니 총알이 떨어져도 옆 사람의 총알을 이용할 수 없고, 부속품이 고장나도 다른 총기에서 해당 부품을 가져와 수리할 수 없었다는 데 있다. 당시 북부는 남부에 비해 공업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부품을 표준화하고 공작기계를 이용해 부품을 생산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결과적으로, 북부의 소총 표준화는 대량생산으로 이어졌다. 초기 부유했던 남군은 북군에 비해 더 많은 소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표준화된 북군의 소총을 이기지 못했다. 이처럼 표준은 전쟁을 승리하는 비결이다.

또 다른 미국의 표준화에 대한 사례는 1904년 볼티모어 대화재사건이다. 시내 중심가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볼티모어 소방서는 인근 도시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들 도시는 긴급히 소방차와 소방인력을 보냈음에도 초기 진압에 실패하였다. 이유는 인근 지역 소방차의 호스와 볼티모어의 소화전 간의 연결부위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초기 진화의 실패로 인한 손실은 매우 커 70개 블록의 1526동에 이르는 건물이 소실되었고,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표준화의 중요성이 전 국민들에게 인식되기 시작되었다. 표준은 인명을 구하는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과 같이 표준의 중요성을 일깨울 만한 결정적 계기가 부족했다. 과거 우리 정부는 오랜 농경생활에서 공업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1961년 산업표준화법을 제정하면서 국가표준제도를 도입했다. 드디어 KS 마크의 도입과 함께 표준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표준을 정할 수 있는 수준의 기업이 없었다. 결국 정부가 표준도 정해주고 국가표준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문제는 정부도 표준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아 다른 국가가 만들어 놓은 표준을 그냥 가져다 우리 것으로 했었다.

이로 인해 우리 기업들은 대부분 표준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지금껏 정부가 다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후엔 대기업이 이를 다 해주었다.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논외의 일이 바로 표준이었다. 결과적으로 지금 국제표준에 있어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의 참여는 매우 저조하다. 우선 최고경영자부터 국제표준 선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도 국제표준을 제정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 즉, 이동통신의 표준 중 2세대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부호분할다중접속방식) 기술을 가장 먼저 상용화한 국가였으며, 2007년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파통신총회에서 우리나라의 와이브로(Wibro)가 3세대 이동통신의 국제표준으로 채택되었다. 표준의 불모지와 같았던 우리나라는 이를 계기로 이동통신 강국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우리 기업과 국민들에게 국제표준의 선점은 시장을 지배할 수 있음을 깨닫는 중요한 계기였다.

이번 세계 표준의 날 기념식에는 4차산업혁명 관련 표준화에 기여한 분들이 다수 수상을 했다. 좋은 현상이다. 다시 시대가 변하고 우리가 소홀히 했던 표준이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다행히 아직 우리 정부는 기업을 움직이는 법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 시작은 바로 5G 스마트공장의 보급이다. 불과 얼마 전부터 전통적 아날로그 중소공장에 스마트(smart)라는 이름 하에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조만간 우리네 공장도 아마존처럼 로봇과 인공지능(AI)에 의한 품질검사, 자율주행 물류 이송, 생산설비 원격 정비 등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처럼 누군가 표준을 만들어 주길 바라며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구태의연한 시대 착오적 발상이다. 우선은 이번에도 정부가 먼저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 정부는 2023년까지 수소에너지, 시스템반도체, 자율주행차, 바이오헬스 등 300여종에 대해 국제표준을 20% 선점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제는 정부가 다 해주던 그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이 찾아 뛰어들어야 한다. 물론 지금껏 표준에 관심없던 기업이 막상 표준을 하려면 쉽지 않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에 따라 스타트업과 중소, 중견기업이 개발한 우수 기술 표준화에 대해서는 정부가 우선적으로 지원한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말처럼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산업표준이라는 등대를 따라 항해하던 시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우리가 주도한 국제표준이라는 등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제 판은 시작되었다. 기업의 적극적 움직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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