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국내 보험사, '끓는 물 속의 개구리' 신세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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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 기자
입력 2019-10-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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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 기자.[사진=아주경제DB]

일본 유수의 보험사 8곳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잇달아 파산했다. 닛산생명(일본 수입보험료 13위)을 시작으로 치요다생명(7위), 도쿄생명(18위)까지 7개 생보사가 도산했다. 손보사 쪽에서도 2000년 업계 8위 다이이치화재가 일본 최초의 손보사 파산을 기록했다.

보험학계에서는 이 같은 충격적인 연쇄 파산을 '끓는 물 속의 개구리(boiling frog) 현상'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11년 동안 운용자산수익률 5% 포인트 하락, 역마진 손실 심화, 고비용·저효율 영업조직 등 과감하고 구조적인 대응이 필요한 문제를 앞에 놓고도 근시안적으로 대응하다 파산한 일본 보험사가 차가운 물에서 서서히 끓여지는 개구리와 비슷하다고 본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일본 보험사의 위기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초저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역마진 손실이 발생하고, 보유자산의 가치 하락으로 재무건전성이 악화되는 등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뇌관은 역마진 손실이다. 보험업의 특성상 신규 고객이 줄어들면 보험손익도 정체된다. 지난해 국내 가구당 보험가입률이 98.4%에 이르는 포화 상태에서 저금리로 인해 투자손익마저 줄어들게 된다면 보험사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들어오는 돈(보험료)보다 고객에게 돌려주는 돈(보험금)이 많아 구조적 적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1990년대 일본의 경기 침체 장기화로 1~2% 초저금리 시대가 지속되면서 일본 보험사의 운용자산수익률은 1988년 7.1%에서 1998년 2.1%로 5% 포인트 급락했다. 당시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디플레이션 상황에 빠지면서 보험사의 역마진 손실이 급격히 확대됐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 2008년 국내 기준금리는 5.25%였으나 올해 10월 1.25%로 4% 포인트 급락했다. 국내 생보사의 운용자산수익률 역시 2008년 3월 말 5.93%에서 올해 3월 말 3.6%로 2.33% 포인트 떨어졌다.

국내 보험사도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금리 연동형 상품의 비중을 늘리는 등 노력하고 있으나 저금리 환경이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그 결과, 올해 1분기 생보사의 보험금 지급률은 103.8%를 기록했다. 들어오는 보험료보다 3.8% 많은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어 손실을 보고 있다는 의미다.

둘째 뇌관은 재무건전성 악화다. 일본 보험사는 연쇄 파산 직전 버블 붕괴로 재무건전성이 극도로 취약해졌다. 물론 국내에서는 일본과 같은 주가지수 붕괴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보험부채 시가평가와 그에 따른 대규모 책임준비금 추가적립금 문제가 주가지수 붕괴와 같은 건전성 악화를 야기할 수 있다.

국내 보험사는 2022년 도입이 예정된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맞춰 보험부채 시가평가를 시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보험사는 보험 가입 시점의 운용자산수익률을 기준으로 책임준비금(보험 계약자 몫인 적립금)을 쌓아놓으면 됐다. 그러나 보험부채 시가평가가 시행되면 미래에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운용자산수익률만큼의 책임준비금을 추가로 적립해야 한다.

예컨대 어떤 보험사가 5%의 확정금리를 약속한 보험을 판매했는데 현재 운용자산수익률이 3%에 불과하다면, 2% 포인트만큼의 책임준비금을 추가로 적립해야 하는 것이다. 고금리 확정형 상품이 많은 보험사 입장에서는 일시에 막대한 책임준비금을 추가로 적립해야 하며 이는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보험연구원은 부채적정성평가(LAT) 결과 기준 책임준비금 부담이 최소 22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마저도 몇 년 전까지 5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측되던 부담이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이다. 지금도 대주주의 증자 등 외부 지원 없이 각 생보사의 가용자본만으로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저금리 탓에 보험사의 책임준비금 추가적립 부담이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올 10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하하면서 기준금리가 1.25%까지 낮아졌다. 이로써 향후 보험사의 운용자산수익률이 더 하락할 것으로 관측된다. 앞으로 이차역마진이 더 커지고, 책임준비금 부담은 더 늘어난다는 의미다.

모든 보험사들이 이차역마진으로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대규모 책임준비금을 자체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특히 대주주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일부 중소형 보험사는 파산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20년 전 일본 보험사를 연쇄 파산시킨 문제가 국내 보험사의 눈앞에도 놓여 있다. 물론 위기가 당장 내일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구리처럼 완전히 삶아지기 전에 천천히 끓어가고 있는 물을 박차고 뛰쳐나올 체력과 지혜를 갖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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