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386, J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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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부국장
입력 2019-10-0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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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치는 바람에~

지난해 2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첫 만남을 계기로 열린 북측의 공연이 강릉과 서울에서 열렸다. 현송월 단장이 이끈 삼지연관현악단은 이 공연에서 우리 가요 11곡을 멋들어지게 뽑아냈다. 남측에서 국민 애창곡으로 불리는 'J에게'는 그중 하나였다.

이 노래가 관심을 끈 건, 지금 우리 사회의 주축인 '386세대'의 대표 노래여서 그렇다. J에게는 1984년 7월 제5회 강변가요제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386세대. 그들은 각종 운동가와 이 노래를 듣고 부르며 성숙해졌다.

J 지난 밤 꿈속에~

386의 역사적 소명 의식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우리 역사에서 '○○세대'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4·19, 6·3 정도다.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니, 그 위상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비롯해 이런저런 이유로 사회운동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늘 배고픈 일이다. 역사적 또는 사회적 소명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투신하지 못한 더 많은 386도 마음 한편에 늘 미안함을 품은 채 가정을 이루고 사회에 봉사하며 살아왔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에 분노하고 촛불을 들어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이유도 거기서 찾는다. 그렇게 386의 뿌리는 이미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언젠가는 그런 386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가겠지만 말이다.

J 아름다운 여름날이 멀리 사라졌다 해도~

사실 386은 고도성장한 우리 경제의 과실을 따먹으며 자랐다. 1980년대는 정치적으론 암울한 시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으론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88올림픽이 상징하는 경제 환경은 그야말로 축제였다. 60년대생의 대학 진학률은 30%를 넘었다. 1970~80년대에 축적한 자본은 부모들의 학업에 대한 아쉬움을 자식을 통해 해소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고도성장에 따른 풍부한 일자리는 대학을 다니지 못했어도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데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0.5%다. 중국은 2010년 10.6%의 두 자릿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세계 경제의 두 마리 용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후 우리나라는 1980년대 8.8%, 1990년대 7.1%로 성장률이 차츰 낮아졌다. 그래도 고성장이었다. IMF 외환위기(1997년)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를 겪으며 2000년대 4.7%, 2010년대 3.3%로 떨어졌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간신히 2%를 넘길 전망이다. 그러니 2020년대 잠재성장률은 2%에 가깝거나 그 밑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J 난 너를 못 잊어, J 난 너를 사랑해~

386은 부모가 학업을 포기하며 이뤄낸 부(富)로 정치적 억압과 부당에 항거할 토대를 부여받은 셈이다. 그리고 이젠 그들이 꿈꿨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2019년 지금, 그들을 정치적으로 성장시킨 그 토대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꼭 우리의 잘못만은 아닐 수 있다. 전 세계가 하나처럼 굴러가는 경제공동체 상황에서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문제의 해결은 항상 현재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서 출발한다. 역사적으로 어떤 정치체계이건 간에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었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무역전쟁, 김정은의 국제정치, 영국의 브렉시트, 홍콩 사태 등이 모두 자국의 경제 불안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국민의 경제생활이 어려워지면 정치와 사회제도 개선이 아닌 혼란만 가득하다.

난 이 밤도 쓸쓸히, 쓸쓸히 걷고 있네~

아직은 60년대생을 우리 사회의 주축으로 부른다. 90년대생도 서서히 이 사회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들에게 386은 박물관에서나 보는 386 컴퓨터에 불과할 수도 있다. 더 좋은 물질적 풍요를 누렸으니, 점점 나빠지는 경제 상황에 대한 불만도 하늘을 찌른다.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표현하는 욜로(YOLO)와 코스파(COSPA)는 불황이 만들어낸 라이프스타일이다. 경제 상황에 지배받는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을 사회적 삶이 아닌 개인적 삶으로만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단지 몇몇 선심성 쿠폰이나 바우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한평생 경제생활을 이어갈 토대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지금 주축이라는 386이 해야 할 일이다.

이미 우리 경제는 곳곳에 비상등이 켜졌다. 경고음이 들린 지도 어림잡아 10년은 훌쩍 넘었다. 지진과 같은 디플레이션까지는 아니더라도 저성장의 장기 고착화를 의미하는 'J(Japanification)' 공포를 예상하는 연구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말한다. 사실은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Z세대에 이 20년을 물려준다면, 그 부모 세대인 386이 후에 어떤 역사적 평가를 받을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국민 애창곡 J가, 남북을 하나로 묶은 J가, 우리 아들딸들이 살아갈 세상을 어둡게 만들 J가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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