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만 있고 가해자 없는 '요지경'... 페이스북 등 글로벌 CP 횡포 막을 입법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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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용, 정명섭 기자
입력 2019-08-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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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방송통신위원회가 페이스북과의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페이스북이 일부 ISP(통신사)의 접속경로를 해외로 변경함으로써 콘텐츠 접근 속도가 느려지는 등 이용자 피해가 발생했지만 이는 접속 지연에 해당할 뿐, 접속 제한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방통위의 과징금 처분은 부당했다는 판결이다.
 
피해를 입은 이용자 입장에선 기가막힐 노릇이다. 페이스북이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접속지점을 홍콩,미국 등으로 변경한 2016년 12월 이후 10개월 동안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이용자는 저녁만 되면 페이스북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다. 서비스 이용속도가 급격히 느려졌을 뿐만 아니라 사진, 동영상 등이 제대로 표시되지 않았다. 남들과 같은 비용을 내고 반쪽짜리 서비스를 이용해야 했다. 페이스북이 접속지점을 변경한 후 방통위에 접수된 이용자 민원은 약 2700건으로 변경전과 비교해 100배 이상 증가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접속 불가로 페이스북을 성토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방통위가 지난해 3월 페이스북에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물리고, 같은 해 5월 페이스북이 처분 취소 소송을 걸어왔음에도 승소를 자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용자 피해를 막는다는 확고부동한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은 방통위가 이용자 피해를 야기시킨 페이스북의 고의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사진=아주경제DB]


ICT 업계에선 법원이 법리 싸움에 매몰되어 실제 이용자 피해를 외면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나왔다. 또한 이번 판결로 페이스북 등 글로벌 CP(콘텐츠제공사업자)가 망 사용료 협상 등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이용자를 볼모로 잡아도 제지할 수 있는 방안이 없어졌다고 우려했다. 한 ICT 업계 관계자는 "페이스북의 접속지점 변경으로 이용자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피해로 인정되지 않았다"며, "유사한 사례가 재발해도 통신사들이 CP에게 항의할 근거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소송의 표면적 이유는 접속경로에 따른 망 품질관리와 이용자 피해 입증이지만, 실질적 이유는 망 사용료를 두고 진행된 통신사와 글로벌 CP들의 오랜 대립에 있다.

2015년 정부가 '상호접속에 관한 고시'를 변경하자 페이스북의 캐시서버(CDN)를 보유하고 있던 KT는 페이스북에게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 대한 접속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용자를 위한 최상의 선택지는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과 망 사용료에 대한 협상을 진행해 캐시서버를 설치하는 것이다. 차선책은 기존처럼 KT에 캐시서버를 두고 접속료를 지불하는 것이다. 페이스북은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의 접속지점을 해외로 돌린다는 이용자 입장에서 최악의 선택을 했다.

이번 판결로 통신사들은 글로벌 CP와의 망 사용료 협상에서 힘을 잃게 됐다. 글로벌 CP가 무료 또는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망 사용료를 책정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해외로 접속경로를 변경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용자 편의를 유지하고 망 품질을 관리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글로벌 CP의 제안에 응해야 한다. 페이스북은 올해 초 SK브로드밴드와 캐시서버 설치 협상을 타결했고, LG유플러스는 진행 중이다. 설치·이용에 관한 망 사용료는 비밀에 부쳐졌다.

글로벌 CP와 국내 CP를 차별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페이스북, 유튜브 등은 막대한 트래픽을 발생시키면서도 이에 대한 망 사용료를 제대로 부담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면 네이버, 카카오, 아프리카TV 등 국내 CP는 통신사와 협상을 통해 제대로된 망 사용료를 지급 중이다. '망 무임승차' 중인 글로벌 CP가 트래픽을 크게 증가시키는 화질 경쟁을 시작할 경우 정당한 비용을 내는 국내 CP들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국내 CP들이 무턱대고 화질 경쟁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법원이 마냥 페이스북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법원은 현행 법령에 CP의 망 품질 관리 의무나 접속경로 변경시 고시 의무가 규정되어 있지 않아 페이스북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입법 정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실제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인터넷 응답속도와 같은 망 품질은 CP가 관리·통제하는 영역이 아닌 만큼 CP의 법적 책임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이상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항소와 함께 CP에게도 망 품질 관리 책임을 부과하는 입법 활동을 통해 재판부가 지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23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용제한이라는 말의 모호함을 판사들이 물리적 제한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용자를 보호하려면 어떤 점을 보강해야 하는지 이용 제한이란 말이 모호하다면 어떤 점을 포함한다는지 법적으로 분명하게 해놔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인터넷기업협회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통신사와 CP 대립의 근본 원인인 상호정산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인기협은 "이번 판결은 법원이 망 품질 유지. 이용자 보호 의무가 CP의 책임이 아닌 통신사 본연의 임무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과거 상호접속 고시가 무정산일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상호정산 제도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도다. 전 세계 19만여개 상호접속 협정을 분석해본 결과 거의 대부분이 무정산 계약이며, 정산 사례는 전체의 0.002%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사진=페이스북 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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