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인문학]100년동안 그믐달이 되라, 도광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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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19-07-2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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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크기가 줄어드는 일도, 둥근 모양이 깎이는 일도 없다. 칼날처럼 날카로워 보이는 그믐달은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생긴 형상이며, 다만 달에 비친 태양빛의 모양일 뿐이다. 그믐달을 바라보는 인간은 어쩐지 처연한 기분을 갖는다. 곧 소멸될 것 같은 달의 모양이 위태롭고 쓸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사람은 그믐달에서 치열한 생의(生意)를 읽었다. 달은 언제나 같은 달이지만 때가 때인 만큼 자신을 깊이 감춘 달이다. 그것을 도광양회(韜光養晦)라 하였다. 빛을 감춘 채 스스로를 키워가는 그믐달이란 뜻이다. 그것은 단순히 이지러진 조각달이 아니다. 속으로는 빠른 성장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겉으로는 야윈 형상을 유지해 뭇 존재들의 질투 어린 눈길을 피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가슴속에 희망을 품은 인간존재는 스스로를 과다하게 드러내기 쉽다. 함부로 꿈을 말하고 대놓고 미래에 대한 그림을 펼쳐보이기도 한다. 경쟁적인 생태계에서 이런 행위는 위험을 부르기 쉽다. 도광양회는, 내부에서 자라나고 있는 저력을 감추면서 남들이 모르는 사이에 보름달로 성장하는 은밀한 내실화의 성취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특히 세상을 밝히려는 뜻을 지닌 이들은 이미 앞선 이들에게서 견제와 시기를 받을 수 있기에 겸손과 잠행의 도를 지켜야 한다는 게 이 말이 품은 가르침이다.

1980년대 덩샤오핑은 중국이 최소 100년간은 도광양회해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지령을 내렸다. 100년간은 빛을 감추고 그믐달처럼 가만히 내부의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대륙의 패기와 시대의 야망을 감추기 어려웠던 1990년대의 장쩌민, 2000년대의 후진타오 그리고 지금의 시진핑은 도광양회를 폐기하고 중국의 대부흥을 드러냈다. 세계 1등을 논하는 중국제조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일대일로의 중국몽은 마치 이미 보름달이 된 듯한 기세가 아닐 수 없었다.

이미 유일한 보름달로 세상에 군림해왔던 미국과 트럼프의 무지막지한 견제는 감히 보름달을 꿈꾸는 중국의 '위험한 꿈'에 대해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 사건으로 읽을 수 있다. 도광양회 정신을 놔버린 중국이 자초한 일이었다. 그들이 함부로 G1을 말하고 있을 때, 미국은 슬그머니 이 신흥 경쟁자를 제압할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뜻만 가지고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 어떤 뜻이든 시간과 내부 축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입'이 먼저 달리지 말고, '몸'이 달려야 완전한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 오버한 그믐달의 저주는 중국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며, 나라에만 해당되는 일도 아니다. 달마다 왜 그믐달이 그토록 실눈을 뜨며 세상을 내려다보는지, 그 뜻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세상을 밝힐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힘을 키울 때까지 스스로를 감추는 지혜, 지금 우리에게도 요긴한 경고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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