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시샘]우루과이에서 발견된 광주의 혈흔과, 황지우의 무서운 시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 2019-07-22 10:38
[지난 4일 5.18기념재단은 '우루과이 민주화 리포트'를 배포했다. 그 나라의 민주화 경험 및 과거청산 사례와 한국의 상황들을 비교하는 작업이었다. 이 보고서는 1983년판 황지우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담겨있는 시 한편을 떠올리게 했다. '몬테비데오 1980년 겨울'이란 특이한 제목의 시는, 당시 독자들에게 한 시대의 영혼이 어딘가로 출혈하는 듯한 충격을 안겼다. 이 시인은 왜, 1980년대에 하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우루과이의 수도에서 일어난 일을 시로 썼을까. 2019년에 이르러서야 우린 그 '해안의 혈흔'에 관해 정색한 리포트로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


몬테비데오 1980년 겨울

       쉬페르비에르 시를 읽어도 좋고,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어도 좋지만 하나도 안 읽어도 좋다.<시인의 말>

잎이 지는 4월에서
눈 내리는 7월까지
시중에는 아무런 일이 없었다.
시민들은 대개 축구장으로 가고
테라스에서 노인들은
내기 체스를 두었다 복덕방과
의사당이 특히 한산했다
아침에 우유와 뉴스가 오고
혹은 주문한 히아신스꽃이 배달오기도 하고
이따금 먼 친척의 부음이 오기도 했지만
전철이 그 시간에 1번가를
소리내며 지나갔다
잎이 지는 4월, 로트레아몽 가로수 길로
어린 임산부가 적십자병원을 찾아가는 모습이,
우연히, 보였고
7월의 적설량을 가르고 영구차가
최후로 도시를 빠져나갔다
한 아이의 떡잎이 떨어지고
한 사람이 자연사했다
잎이 지는 4월에서
눈 내리는 7월까지
시중에는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민들은 사건 대신
가십을 읽었고 그 때문에
시의원의 성 스캔들이 정치 문제로
가진 않았다 언론과
교회는 관대했다 둘 다
기업의 다른 이름으로
부덕을 허용했다
잎이 지는 4월에서
눈 내리는 7월까지
시중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만 역대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갈렸을 뿐 야채값은 안정세였다
쇠고기 때문에, 핵 때문에, 외채 때문에
시민들이 시위하는 일은 좀체 없었다
노조 간부들과 사장은 웃으며 칵테일을 들었다
4월에서 7월까지
공단과 여공들의 합숙소와
전경련 회장댁에 똑같이 잎이 지고
똑같이 눈이 내렸다
잎이 지는 4월에서
눈 내리는 7월까지
시중에는 그렇게 아무런 잡음이 없었다
시민들은 15분간 등화관제를 했고
높은 통제탑에서 시장은 크게
흡족했다 대서양 해안 초소에도
이상이 없었고 해외 여행에서
전공직자 부부도 이튿날 돌아왔다
그 4월과 7월 사이 시민들은
영세민의 권투선수를 사랑했고
혼혈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순수시의 대가 페르디난도 츈초씨가
개혁 세력 시의원에 출마했고
고대 사학자 로체 첸씨는 지지 발언을 하기도 했다
대학은 잠잠했고
혐의자 장 피에로 청년의 인권도 지켜졌다
간간이 무역풍이 대법원 종려나무에
지중해 겨울비를 실어왔지만
그러나 잎이 지던 4월에서
그러나 눈 내리던 7월까지
시중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아무도 못 보았고 못 본 체 했다
잎이 지는 4월에서
눈 내리는 7월까지
앞바다에 왜 혈흔이 떠 있는가
앞바다에 왜 혈흔이 지워지지 않는가




■ 정말 수수께끼같은 시다. 1983년에 나온 황지우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실린 이 시는,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 살벌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황지우가 뱉어낸 가장 섬뜩하고 가장 천연덕스러운 우화가 아닐까.

우선 '몬테비데오(Montevideo)'라는 지역 설정이 사람을 흔든다. 몬테비데오는 우루과이의 수도이다. 남한이 10만제곱킬로미터 정도 되는데, 우루과이는 대강 17만제곱킬로미터로 우리보다 훨씬 넓다. 인구는 330만명으로 우리의 도 지자체 정도 규모다.

황지우가 머나먼 남미의 작은 나라를 굳이 지목하여 시를 쓴 까닭은, 그 나라의 지구상 위치가 정확하게 우리나라의 대척점에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굳이 몬테비데오를 따지면 우리의 '여수' 쯤 된다. 광주와 여수의 거리를 생각하면, 이 시가 얼마나 정교한 풍자인지 느껴진다.

이 시는 이 나라의 비리와 비위(非違)를 직설로 말하지 못하던 시절의 음산한 공기 속에서, 이 나라 광주의 지구 정반대 도시의 풍경을 그리면서 슬금슬금 전두환 치하의 냄새들을 풍기며 아슬아슬한 백서를 써나간다. 그 시절 황지우가 우루과이를 가봤을 리 없고 그 나라에 대한 정보가 충분할 리도 없었을 것이기에, 정말 저런 일이 우루과이에 있었는지를 따지는 일은 오히려 우스꽝스런 일일지도 모른다.

시 앞에 써놓은 쉬페르비엘(에르)은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태생의 시인이다. 부모는 그곳에서 은행업을 하던 프랑스인이었는데, 그가 8개월 되던 해에 수돗물을 잘못 마셔 두분 모두 죽음을 맞았다. 그는 이모의 손에 길러졌다. 9살 때 우연히 거실 문 뒤에서 엿들은 말을 통해 엄마라고 여겨졌던 사람이 이모임을 알고, 깊은 상처를 받는다. 이후 그는 프랑스에서 대학을 나왔고 프랑스와 우루과이를 오가며 시를 썼다. 그의 시는 상처에서 생겨났지만, 거대한 세계와 공간을 꿰뚫는 통찰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망자들의 얼굴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대지 위로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수많은 기억들의 힘으로
하나의 미소를 불러모으고
가슴을 뛰게 하는 이방의 공모(共謀)들이여
언제나 어둠들이었고 침묵들이었던 것조차
그렇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한다

                      쥘 쉬페르비엘의 '거리' 중에서




이 시는 묘하게도, 황지우의 '몬테비데오 1980 서울'을 부연하는 듯한 의미망을 지니고 있다. 망자들의 얼굴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대지 위로 올라오는 것과, 혈흔이 바다에 떠 있는 것은 어쩐지 닮아있다. 광주와 몬테비데오의 1980을 연결한 황지우의 시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쉬페르비엘은 '가슴을 뛰게 하는 이방의 공모'라고 말하지 않는가.

황지우가 쉬페르비엘을 거론한 것은 그가 우루과이 태생이었기 때문일 것이지만,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언급한 것은, 이 시가 그 착상과 방식에 빚지고 있음을 부기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난 구청직원과 대학원생, 아내를 잃은 사내가 나누는 대화들을 따라가고 있는 소설. 세 사람의 대화는 소외와 권태로 가득 차 있다. 사회 속에서 기호화된 존재로만 인식되는 인간에 대한 풍자들이 비극적 기분을 돋운다. 황지우는 그런 무의미한 발설들 속에 들어있는, 시대의 증언을 읽어냈을 것이다. 거대한 폭력이 국가라는 이름으로 뒤덮인 세상에서 개인이란 저렇듯 사소한 발견과 입담에 갇힌 무기력한 '입'일 뿐이라는 발견. 1964년이란 정치적 환경에서 1980년의 공기를 되새김하는 맛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1980년 5월호 잡지 '여원'. 그 시간의 고통은 보이지 않고 이렇듯 말쑥한 표지로 웃고 있다. ]



이 시 속에 등장하는 몬테비디오의 풍경들은 중간에 유럽대륙 아래 지중해를 집적거리기도 하지만 우루과이에서도 있음직한 일이었다. 정확하게는, 한국이나 우루과이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시민들의 무표정과 절망 같은 것들을 핀업한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한 가지는 확실히 가짜뉴스(?)다. '눈 내리는 7월'과 '7월의 적설량을 가르고 영구차가 최후로 도시를 빠져나갔다'는 얘기 말이다. 우루과이는 1월이 여름이고 6월이 겨울이다. 다만 눈이 잘 내리지 않으며 1980년에는 눈 내린 기록이 없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는 마치 거기서 살았던 이의 증언처럼 개연성이 있다. 우루과이는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나 1811년 독립전쟁을 벌여 연방연합을 건설한다. 이에 브라질을 식민지로 삼고있던 포르투갈의 공격을 받아 한때 브라질에 병합된다.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와 합세하여 브라질과 전투를 벌여 우루과이강동쪽공화국을 건국한다. 이것이 1828년이다. 이후 독립정부는 극심한 내전을 겪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지원을 받으며 군부 독재를 시작한다.

이런 역사를 겪은 우루과이가 한국의 상황을 연상케하는 것은 1967년 이후가 아닐까 싶다. 그해 대통령제로 시스템이 바뀌면서 오르도녜스 대통령이 민주화 개혁을 실시한다. 이때 이 나라는 '남미의 스위스'라는 세계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군부의 정치개입이 시작되고 언론통제가 심해졌다. 인플레가 국민의 삶을 위협했고 노동운동이 격화한다. 좌익세력이 결집해 정부에 맞섰고 정권은 급속히 우경화한다. 1972년 계엄령이 선포되고 이듬해 국회가 해산된다. 이후 사실상 군사정권이 구축되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우루과이의 정치범 고문을 고발한다. 황지우가 말하는 1980년은 우루과이가 정치적 갈등 속에서 새로운 헌법을 만들었던 해이다. 1981년 총선거를 통해 단계적 민주화를 진행하는 여야합의가 이뤄진다. 1984년 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군정에서 민정으로 정권이 이양된다.

당시의 황지우가 이 상황을 정확하게 읽을 수는 없었을 테지만, 우리의 광주민주화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1980년도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4.13 호헌조치와 6.29 선언과 같은 군부반발과 항복의 롤러코스터가 있었던 것처럼, 그들의 민주화 또한 1980년 당시로선 쉽게 전망하기 어려운 '미래'였음에 틀림없다. 시인은 예언자이며 시대의 조망자라는 말은, 황지우의 이 시를 두고 해야할 말이 아닐까 싶다.

2019년 7월 5.18기념재단은 '타협적 민주화와 이행기 정의의 실천 : 우루과의의 경험'(최용주 비상임연구원이 썼다)이란 연구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과 관련해 유사한 경험을 가진 타국의 사례에서 시사점을 찾기 위한 작업의 하나로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에 이은 네번째 리포트다. 이 보고서는 우루과이가 1973년~1885년의 12년간 군부독재의 유산을 정리하는 과정을 담았는데 한국과의 유사점에 주목하고 있다.

즉 이 나라는 국민들의 노력으로 민주주의를 얻어냈으나 기성 정치인들이 군부와 정치타협을 해서 정권을 창출하는 형식을 택했다. 우리나라의 3당 합당과 김영삼이 정권을 창출하는 과정과 닮아있다. 이런 과정적 한계 때문에 우루과이는 한 동안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총체적 진상규명도 하기 어려웠다. 이후 2010년에야 전직 대통령 2명과 군부책임자를 처벌하는 형식으로 독재정권의 유산을 청산했다. 5.18재단이 이 리포트를 통해 강조하는 것은, 과거의 인권탄압에 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이 '과거'로 퇴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미래지향성을 갖는다는 점일 것이다. 과거 청산을 늦출수록 '정의'에 대한 국민들의 실천요구는 강해진다는 점도 이 보고서는 또박또박 적어놓고 있다. 우루과이의 검증된 경험과 우리의 현실을 대비한 2019년 어느 학자의 안목은, 30여년전 시인의 '환유(換喩)'의 질감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이 시는, 한국와 대척점의 우루과이가 현대사의 같은 체험을 거의 같은 시기에 했다는 '우연한 통찰' 때문에 위대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마지막 행에 있는 '바다의 혈흔'이 무시무시한 상상력과 공감대로 스며들어오기 때문이다. 우루과이 앞바다에 떠있는 혈흔, 우루과이 앞바다에 지워지지 않는 혈흔은, 대척점 광주에서 흘러간 것이다. 몬테비데오의 혈흔이 여수 앞바다를 떠도는 것을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 혈흔은 단지 먼 곳에 있는, 나와는 상관 없는 비극이 아니라, 내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과 부조리의 잔흔이기도 하다. 그것이 떠있기만 할 뿐 기표가 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절망하고 침묵하면서 김승옥의 주인공처럼 의미없는 것에 마음을 쏟고 언어를 허비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몬테비데오까지 흘러간 혈흔을 응시하며, 그곳의 비극과 피냄새를 함께 맡아낸다. 그것은 시대를 이겨내는 '순리'가 감당해야할 소명이기에, 지구 대척점에서도 공유할 수 밖에 없는 가치일 수 밖에 없다. 이 시를 세계가 제대로 읽었다면, 그를 쉬페르비엘에 못지 않은 대시인으로 주목했을지 모른다.

이 시에도 언급한 또다른 우루과이 태생의 시인 로트레아몽의 산문시 '말도로르의 노래'를 잠깐 기웃거린다. 로트레아몽은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은 몬테비데오 주재 프랑스영사관의 부영사였다. 14세때 프랑스로 가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파리의 이공과대학을 입학하려던 그는 뜻을 바꿔 문학에 몰두한다. 1870년 몽마르트르의 하숙집에서 그는 24세로 생을 마감했다. 시집 '말도로르의 노래'는 죽기 2년전인 1868년 익명으로 자비 출판했으나 아무도 그 시집을 주목하지 않았다.

1980년대 이 시집은 한국 대학생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시의 서문에는, '여기까지만 읽고 돌아가도 좋으니 감당할 수 없는 이는 따라오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적혀있었던 게 기억난다. 이 시는 세상을 심란하게 하고 체제 속에서 뒹굴며 꿈꾸던 시적인 감수성을 난감하게 했다. 영웅 말도로르는 사악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으며 신에게 반항한다. 거칠고 불편하며 최면적이면서도 혁신적인 문체는 충격과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예수를 강간행위자로 묘사하고 바다생물과의 성교를 꿈꾸기도 하며 살인과 패륜, 새디즘과 마조히즘, 부패와 폭력이 들끓는 시 속에서는, 그러나 분노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끓어오른 분노가 시를 삼킨다. 기존 질서와 인식된 세상에 대한 강력하고 거친 부정을 통해 이 청년 시인이 죽기살기로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황지우가, 이 시인을 '로트레아몽 가로수길'로 일상화시킨 그 분노의 고형화(固形化)는 이 시가 닦아낸 말끔한 일상의 얼굴을 보여준 몹시 인상적인 풍경일지 모른다.

                                       이상국 논설실장, 시인(필명 이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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