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바보야, 문제는 일반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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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민 기자
입력 2019-07-1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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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피하는 것은 가능한가?’ ‘문화의 다양성이 인류의 통일성을 방해하는가?’ ‘윤리는 정치의 최선인가?’ ‘노동이 인간을 구분하는가?’ 지난달 일주일간 치러진 프랑스 대입시험 ‘바칼로레아’ 철학 문제 일부다. 인문사회계열 문제 아니냐고? ‘문화의 다양성이 인류의 통일성을 방해하는가’는 엄연히 자연계 문제다.

문제가 너무 심오해서 혹은 광범위해서 사교육이 성행할까? 정규과정을 밟은 학생이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학년 초 대략의 출제 범위도 설정된다고 한다. 학생들은 수년간 철학·수학·과학·역사 등 다양한 분야 지식을 논거삼아 자신만의 시각을 펼치는 훈련을 받는다. 그 교육의 결정체가 세계가 주목하는 바칼로레아다.

12년 동안 정답 아닌 것 골라내기, 같지 않은 것 찾기 훈련을 하루에 쏟아 붓는 우리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비교해보면 씁쓸함, 자괴감을 넘어 허탈함이 느껴진다. 우리 교육은 어떤 인격체를 키워내고 있나? 수능이 담보하는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수능에 특화된 학교 중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 재지정 취소 후폭풍이 심각하다. 올해 재지정 평가를 받은 서울 소재 자사고 중 절반 이상이 탈락했다. 예상한 바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기도 했고 진보교육감들도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강력히 주장해왔다. 전기 모집으로 일반고 우수학생을 입도선매했고, 선행학습으로 스스로 입시학원이 된 자사고는 물론 설립 취지에도 맞지 않다.

문제는 일반고로 전환된 다음이다. 벌써부터 강남 8학군의 부활, 대치동 학원가 성행 등이 입에 오르내린다. 공교육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자사고만 없애면 일반고가 살아날까? 학부모에게 교육이 하향평준화 되지 않는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 수월성 교육을 없애면 동반 성장 교육이 가능해질까? 선다형 수능 대입체제, 수십년 전 커리큘럼으로 양성되는 ‘20세기’ 교원을 그대로 둔 채 ‘자사고 폐지’는 한국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마법의 묘약이 될 수 없다. 이미 학부모의 눈은 자사고 수준의 일반고를 원하고 있기에.

뚝심 있게 사립유치원 문제를 지휘했던 교육부 장관이 지역구로 돌아간다는 소문이 들린다. 시·도교육감들은 자사고 폐지에 사활을 건다. 학부모, 시민 교육단체들은 반으로 나뉘어 설전을 벌인다. 이 모두를 아우를 국가교육위원회 출범은 난망하다. 학생들은 불안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백년대계 교육정책을 펴는 주체가 누군지 보이지도 않지만 말하고 싶다. 바보야, 문제는 일반고야.
 

경제부 윤상민 기자[사진=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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