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곳곳으로 퍼져 나간 '존 레논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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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선 기자
입력 2019-07-1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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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차역, 육교 곳곳 벽마다 빼곡히 붙여진 오색빛깔 메모지

  • 홍콩 자유·민주주의 열망 목소리 담겨

체코 프라하 카를교 인근에 가면 ‘존 레논 벽(이하 레논 벽)’이 있다. 1980년대 체코가 공산국가였던 시절, 자유를 열망하던 프라하 젊은이들이 반전운동과 평화를 노래했던 비틀즈 존 레논의 노랫말과 반정부 구호 등을 벽에 적으며 생겨난 것이다. 오늘 날 프라하에 가면 빼 놓을 수 없는 명물이 됐다.

그런데 최근 프라하의 레논 벽이 저 멀리 아시아 홍콩으로 건너왔다. 심지어 홍콩 도심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최근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개정 반대 시위로 중국의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 홍콩 내 자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다.

홍콩 곳곳 기차역, 지하철역, 육교, 공항, 구름다리, 보행자 터널 등 곳곳의 벽에 노랑, 파랑, 분홍, 하양 오색빛깔 메모지나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있다. 

홍콩 레논 벽엔 '홍콩인, 화이팅', ‘자유의 꽃은 여전히 필 것이다', '(법안) 철회까지 흩어지지 않는다', ‘폭동은 없다. 폭정만 있을 뿐’ 등 송환법 반대 시위를 지지하고 경찰 폭력행위를 규탄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홍콩 타이포 인근의 '레논 벽' 앞에서 홍콩 시위대가 모여앉아있는 모습.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사실 홍콩의 레논 벽은 지난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70여일간 벌인 ‘우산혁명’ 당시 처음 홍콩에 선보여졌다. 당시 홍콩 섬 중심부인 애드미럴티 하코트로드의 홍콩 정부청사 외벽에 시위대가 민주 직선제를 요구하는 메모지를 잔뜩 붙여놓으며 ‘민주화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번에 재등장한 레논 벽은 홍콩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게 5년 전과 다른 점이다.

레논 벽이 다시 등장한 배경에는 송환법 반대 시위가 자리잡고 있다. 홍콩 행정수반으로 중국 정부 지지를 받고 있는 '친중'파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그동안 송환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 중국 본토, 대만 등 홍콩과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 등 정치범의 중국 본토 송환이 현실화하면 홍콩의 정치적 자유가 위축되고 자치권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홍콩은 1841년부터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97년 중국에 반환됐다. 반환 당시 영국과 중국은 홍콩반환협정을 체결해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를 근간으로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치를 보장하기로 했었는데, 이것이 무너질 것으로 우려한 것이다.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은 지난달부터 5주 째 법안 완전 철회, 람 장관 사퇴 등을 외치며 집회를 이어갔다. 람 장관이 앞서 9일(현지시각) "송환법은 죽었다"며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가 공식적으로 완전 철회를 선언한 것은 아닌만큼 홍콩 시위대는 계속해서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홍콩 시위대가 레논 벽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을 더 창의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길이 열렸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레논 벽이 홍콩의 새로운 명물이 됐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이 모두 다 레논 벽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홍콩 도심 곳곳의 레논 벽에선 최근 홍콩 시위를 둘러싸고 지지파와 반대파가 충돌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실제로 10일 시위에 반대하던 친정부 성향의 한 시민이 야우퉁(油塘) 지하철역 외벽의 레논 벽에 붙은 메모지를 뜯어내려다 이를 저지하려는 시민들과 충돌이 빚어져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홍콩 쇼핑가 몽콕에 등장한 레논 벽.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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