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 왜 일본이나 중국이 우리를 만만하게 보나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입력 2019-07-05 08:51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 일본의 핵심 부품·소재와 중국 시장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기인 -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한 경제 보복을 두고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이를 두고도 여론은 크게 두 개로 엇갈린다. 하나는 일본 상품 혹은 관광 불매 운동, 보복 관세 등 강경하게 맞대응을 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이 왜 우리에게 이런 조치를 했는지 차분하게 돌아보고 단기간에 슬기롭게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자와 같이 감정적으로 대립각을 키우는 것이 일시적으로 통쾌할 수도 있지만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본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해서 즉흥적으로 판단하고 처신하는 것은 경솔하기 짝이 없다. 피해를 더 키우고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끼어 있는 입지가 유리할 때도 있지만 일순간에 불리해지면서 위기의 국면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지금이 정확하게 그 상황이다. 양국이 공히 한국을 만만하게 보고 손을 보겠다고 벼른다. 정치적인 이유도 있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도 이참에 한국의 콧대를 꺾어 놓겠다는 계산이다. 중국이나 일본 공히 한국 경제의 약점을 꿰뚫고 있고 어떻게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인지도 잘 안다. 중국은 시장으로, 일본은 핵심 소재·부품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이들을 괴롭힐 수 있는 카드는 별로 없다. 맞불을 놓을수록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더 좁아진다. 일본 혹은 중국을 극복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떠들고 있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나아진 것은 없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상당수 기업들이나 개인이 엄청난 피해를 봤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중국의 이런 의도는 한국 상품 혹은 기술에 대한 가치가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 다변화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여 년 동안 엄청난 자존심을 구겼다. 경제규모에서 중국에 추월당하고 한국에는 일부 주력 산업에서 선두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동북아의 힘의 균형도 중국으로 옮겨갔다. 한국마저 중국 쪽으로 급격하게 편향되면서 일본에는 사사건건 노골적으로 감정적 대응을 하는 현상이 잦아졌다. 하지만 아베노믹스 처방으로 최근 일본 경제가 기사회생하면서 자신감이 다시 붙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도 길들이기를 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겨난 것이다. 물론 이면에는 일본 정부의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다.

우선은 역사적인 이슈에 대해 한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종지부를 찍겠다는 발상이다.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카드를 꺼내들어 더 이상 거론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겠다는 심산이다. 둘째는 한국 주력 산업의 근간을 흔들면서 일본 기업의 반사적 이익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소 역설적이긴 하지만 일본 재계는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지나치게 기울어지는 것을 경계해 왔다. 한때는 중국의 굴기에 맞서기 위해 한·일 양국 제조업 협력에 대해 간접적인 기대를 표하기도 했다.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단기 대책과 중장기 대응책으로 구분, 위기 탈출이 급선무

그러나 양국 간의 틈새가 너무 벌어졌다. 교역량은 급격하게 줄고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마저 현저히 줄어들었다. 심지어 한국에 진출해 있는 일본 기업마저 인력을 축소하거나 본국으로 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작년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은 540억 달러에 달하고, 무역수지 적자만도 240억 달러를 초과했다. 피크 때인 2010년에는 무역적자가 무려 360억 달러를 넘어선 적도 있었다. 그나마 많이 줄어든 것이 이 정도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의 30% 정도를 일본의 소재 혹은 부품 수입에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이 빗장을 치면 우리 주력 제조업의 가동이 전면 중단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규제를 시작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불화수소, 포토 레지스트 등은 일본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70∼90%에 달한다. 한국 내 점유율은 최대 93%에 이른다. 우리 제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일본의 추가 카드는 아직도 수두룩하다. 수입선 다변화 혹은 국산화 추진 등을 대책이라고 내놓고 있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하는 업계의 귀에 솔깃하게 들릴 리가 만무하다. 장기화되면 중국의 사드 보복보다 훨씬 큰 피해가 우리 업계를 강타한다.

이럴 때일수록 보다 냉정해야된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관계를 원상 복구해야한다. 갈등을 더 부추기는 것은 둘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다행히 일본 국내 여론도 한국과 이런 관계가 지속되는 것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갈등의 불씨가 된 사안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영역으로 남겨놓고 정부는 서둘러 봉합에 나서야 한다. 정계나 재계의 일본 파이프라인을 총동원해야 한다. 자존심이나 국가의 품격을 훼손하지 않고 양국이 관계를 정상화하는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일본 정부도 여운을 남기고 있어 아직은 해결의 기미가 보인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