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학교 끝, 떡볶이 시작” 골목식당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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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기자
입력 2019-07-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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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형 프랜차이즈 사이 살아남는 동네 가게들

 

3일 서울 당산구에서 초등학생들이 하교 후 음식점이 밀집돼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사진=조아라 기자]



“소떡소떡(소세지와 떡 꼬치구이) 하나랑 슬러시 특대로 주세요. 빨리요! 학원 늦으면 안 돼요.”

3일 오후 1시 30분경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건널목에서 초록 불을 기다리는 학생들은 조마조마해 보였다. 하교 시간에 맞춰 정문이 열리자 학생들이 밀물처럼 쏟아져나왔다.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은 하나같이 오늘 먹을 분식 세트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슬러시와 컵볶이를 같이 먹을 수 있는 ‘세트 A’, 슬러시와 소떡소떡이 함께 나오는 ‘세트 B’ 두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대화가 오갔다. 신호가 바뀌자 학생들은 맞은편 건물로 달려갔다.

이 건물은 입주한 130개 매장 중 45개를 학원으로 운영하고 있는 학원가 건물이다. 학생들은 건물 1층에서 홍해가 갈라지듯 나뉘었다. 절반은 분식집, 나머지는 문구점으로 들어갔다. 학생들 대신 작은 책가방을 어깨에 걸친 엄마들도 눈에 띄었다.

학생들 눈높이보다 높은 위치에서 1000원짜리 지폐와 컵볶이와 튀김류가 오가는 풍경이 30분 정도 이어졌다.

◆위생은 ‘깨끗하다’ 말 대신 보여주는 것
”아이들 건강을 생각해서 일부러 작은 분식집을 이용한다.“

이날 아이와 함께 동네 분식집을 찾은 한 엄마의 말이다. 기업 프랜차이즈 매장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당산동 골목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게는 오히려 개인이 운영하는 10평(33㎡) 남짓한 작은 분식집이었다.

본사에서 관리하는 프랜차이즈는 깨끗하고, 작은 동네 분식점은 위생적이지 않으리라는 편견은 정말 편견에 불과했다. 오히려 계속해서 생겨나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에 손님을 뺏기지 않기 위해 위생에 더 신경 쓰는 분위기였다.

이들 동네 분식점은 개방형 주방을 운영해 포장만 해가는 손님에게도 안전한 먹거리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당서초등학교 앞에서 혼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에 밀리지 않으려면 위생에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된다"라며 "날이 더워지면 식중독이나 배탈이 걱정돼 더 신경 쓰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은 자연스럽게 학생이나 학부모의 신뢰로 이어졌다.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윤혜지 씨는 "어떻게 음식을 만드는지 직접 볼 수 있어서 믿고 살 수 있어서 좋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같은 시간 인근 프랜차이즈 떡볶이집에는 근처 직장인 손님 4명만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있을 뿐, 자녀와 함께 매장을 찾은 학부모는 없었다.

 

3일 서울 당산구에 위치한 한 분식집에서 초등학생들이 방과 후 모여 간식을 먹고 있다.[사진=조아라 기자]



◆가격 조정의 유연함도 생존 전략
”슬러시랑 팝콘치킨 두 개에 1800원입니다.“

본사가 관리하는 프랜차이즈에 비해 ‘사장님 마음대로’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것도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매장의 성공 비결이다.

초등학교 5학년 김우주 군은 “용돈이 일주일에 5000원인데 여기에서는 1000원으로도 사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학원가와 음식점이 밀집해 있는 이곳 당산동 건물에는 도시락과 피자, 빵 등 기업이 운영하는 다양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많이 있었다. 쟁쟁한 대기업 브랜드 사이에서 소상공인이 살아남는 데는 ‘가격 경쟁력’이 한몫을 했다.

프랜차이즈는 본사에서 어느 정도 제품 가격을 정해 가맹점주 마음대로 가격을 내리거나 저렴한 세트 메뉴를 구성하기 힘들다. 하지만 자영업자는 물가 상승률과 주요 소비자층의 지갑 사정을 고려해 직접 가격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앞에서 도넛을 판매하는 최씨는 “조금 남기고 많이 팔자는 생각으로 가격을 낮게 측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격 조정의 유연함은 대형 프랜차이즈 사이에서 소상공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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