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만남의 장(場) JSA에서 '월북 카투사'를 만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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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19-07-0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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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북한 카투사 동료…"29년 동안 잘 지냈니?" "괜찮다, 일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을 때 불현듯 어떤 사람이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미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MDL, 콘크리트 경계석을 밟고 북한 영토에 들어서는 순간 그 사람이 또다시 생각났다.

그는 1991년 어느 날 판문점 건물 사이 폭 50㎝, 높이 5㎝ 콘크리트 경계를 넘어 북으로 뛰어올라간 대한민국 청년 A다. 2017년 북한군 오창성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남쪽으로 탈출하기 26년 전 정반대의 상황이 있었다. 1952년 JSA 창설 이후 처음으로 ‘월북’(越北)한 카투사(미군 배속 한국군) A, 이제는 그를 말할 수 있다.

◆엘리트 카투사, 공포의 JSA
캠프000로 부르는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는 카투사는 대한민국 육군 소속 현역 군인이다. 1998년 카투사 선발이 추첨제로 바뀌기 전까지 80~90년대 많은 대학생들은 카투사고시, 일명 ‘카시’를 봤다. 군 생활을 좀 더 편하게 하려고, 혹은 영어를 더 잘 하려고 국어, 영어, 국사 각 100점, 총 300점 만점 ‘군대 가는 유일한 필기시험’을 치렀다. 그래도 논산훈련소에서 6주간 신병훈련을 받는 건 일반 육군과 똑같다. 논산훈련 수료 후 자대 배치를 받는 일반병과 달리 카투사들은 경기도 평택 가는 기차를 탄다.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있는 카투사 교육대, KRTC(KATUSA Reception Training Center)에서 4주 동안 미군 기초군사훈련을 추가로 받는다.

이 기간 공포의 통과의례가 예정돼 있다. JSA 병력을 먼저 뽑아 가는 인터뷰다. 같은 제목의 영화가 나오기 전부터 공동경비구역, JSA는 카투사 지망생들에게는 지옥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큰 키의 무술 유단자 중 눈빛이 살아 있는 카투사만 뽑아 해병대, 공수부대만큼 훈련을 시킨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미군들과 패싸움을 벌이는 건 약과, 북한군 바로 앞 판문점 근무는 목숨을 내놓고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 기수는 JSA 선발이 없었다. A 때문이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를 경비하는 한국군 장병. 사진=연합뉴스]


◆JSA 카투사의 탈영, 월북
1991년 2월 처음 본 A는 KRTC 막사 제일 안쪽 ‘고참 자리’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논산에서 보지 못했던 ‘평택 훈련소 동기’였다. 그는 이미 훈련을 마치고 JSA 경비대대로 배치 받고 대기 중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키 180㎝ 정도, 날렵한 체격의 A는 서울 소재 유명 사립대학 체육학과를 다니다 입대했다고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A는 동기들과 말을 잘 섞지 않았다. 1977년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말한 4전5기 권투선수 홍수환의 그 엄마가 운영했던 부대 안 유일한 한국식당(일명 스낵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말없이 조용히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눈매는 매서웠지만 눈에는 고민이 가득 차 있었다. A 덕분에 ‘공포의 JSA경비대’ 선발 인원은 더 없었고, 이내 4주가 흘러 제각각 전국의 미군 부대로 흩어졌다.

A는 JSA 배치 후 각종 신원조회 등을 통과한 후 방탄모에 선글라스, 권총을 차고 판문점 근무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근무 중 콘크리트 경계석을 통과해 북으로 달려 올라갔다. 이 과정에서 남북 간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A는 다치지 않고 북한군에 ‘귀순’했고, 공화국 영웅이 돼 북한 전역을 돌며 강연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A가 대학 시절 친북·반미 운동권 조직인 NL에서 활동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여자친구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JSA 부대 내 구타 때문에 북으로 갔다는 말도 많았다. 어쨌든 그는 그렇게 남과 북의 경계를 넘어 월북한 유일한 카투사였다.
 

[JSA 북측 경비군인들이 이동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선을 오간 그들…그 선 위에 만남의 장을
문재인, 트럼프 두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세 사람은 경계와 선을 넘었다 다시 돌아왔(갔)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아예 선을 넘어 ‘간’ 이들은 월북자, 탈북자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이른바 북파공작원도 있다.

공화국의 영웅이든, 조국의 배신자든 남한과 북한을 스스로 떠났거나 여의치 않은 상황 때문에 남과 북에 제각각 남거나 버려진 이들은 정확한 숫자조차 알 수 없다.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이들에 대한 대사면, 대화합의 조치가 필요할 거다.

이산가족은 한국전쟁 과정에서 가족이 남과 북에 뿔뿔이 흩어진 이들을 말하지만 월북자, 탈북자, 남파·북파 공작원들도 북한과 남한에 가족을 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도 엄연히 남북 이산가족이다.

“식당과 노래방, 숙박시설을 갖춘 '만남의 장소, 산솔'이 판문점 도보 다리 옆에 세워져 간단한 서류 절차를 밟아 이산가족과 탈북자·월북자 가족이 만날 수 있었고, 남북한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전화와 영상통화를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작가 김태용은 단편소설 <옥미의 여름>에서 2023년 미래의 JSA를 이렇게 묘사했다. 현실이 돼 가고 있는 ‘문재인의 상상’에 이런 만남의 장(場) 장면을 포함하면 어떨까. 만약 그날이 온다면 월북한 카투사 동기 A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 "잘 지냈니?"라는 물음에 주춤, 머뭇거린다면 A에게 말할 거다. "그래, 이제 괜찮아"라고. 그러면 A가 이내 "일없어 야, 일없다(북한말로 괜찮다는 뜻)"고 웃으며 화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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