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DMZ 지렛대로 트럼프 들어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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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19-06-2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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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리지(leverage), 즉 지렛대는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움직일 때 쓰는 막대기다. 이런 사전적 정의 외에 어떤 어려운 문제를 풀거나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유용한 수단이나 방법, 혹은 힘을 뜻하기도 한다.

경제용어로는 돈을 빌려 더 큰 돈을 버는 걸 레버리지 효과라고 한다. 빌린 돈을 지렛대 삼아 부를 축적한다는 말이다. 국제정치 무대에도 레버리지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가장 큰 목적인 국익을 위해 세계 각국은 저마다 여러 개의 지렛대를 갖고 있다. 없는 지렛대를 만들거나 약한 지렛대를 튼튼하게 보강할 때도 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도 그렇다. 누가, 언제, 어느 지렛대를, 얼마의 힘으로 사용할지를 두고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지고 있다.

28~29일 열리는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코앞에 두고 중국과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전격 회동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중국과 미국은 미래 세계 패권을 좌우할 무역전쟁 중이다. 북한과 미국 간 비핵화협상은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 이후 교착국면인 상황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21일 북한을 전격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건 서로에게 필요한 지렛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양국은 상대에게 쓸 만한 지렛대를 장착해준 것으로 보인다.

그에 앞서 18일 중국 외교부 루캉(陸慷) 대변인이 “지렛대가 아니다”라고 언급한 건 아이러니다. 그는 “중국이 시 주석의 북한 국빈 방문을 (미·중 무역협상의) 레버리지로 삼고자 한다고 질문했는데, 이런 종류의 주장에는 ‘생각이 너무 많다’고만 대답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모순으로, 곧바로 루 대변인은 “미국과 북한은 일괄적·단계적 조치라는 원칙 위에서 대화하라”고 말했다. 북한에는 비핵화 조치의 다음 단계를, 미국을 향해서는 대북 제재 일부 완화를 촉구한 셈이다. ‘시 주석 방북→북핵 해결 개입→대미 협상 우위’라는 논리 구조를 밝힌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결국 시 주석은 20일 북한에서 “중국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여건을 창조하고 또 쌓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안보와 경제를 챙겨주는 ‘뒷배’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한 건데, 결국 이는 미국을 향한 ‘북한 지렛대’를 노골적으로 붙잡은 모양새다.

미국은 경제제재라는 지렛대로 북한과 중국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시 주석 방북 직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정권의 도발적 행동이 미국의 국가안보와 경제에 비상하고 특별한 위협이 된다"며 기존 대북 제재를 1년 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1993년 핵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핵무기라는 최악의 지렛대를 확보했다. 이후 25년 동안 ‘핵 지렛대’로 세계를 위협한 북한은 이제 이걸 놓기 위한 협상을 미국과 하면서 중국이라는 또 다른 지렛대를 확보했다. 앞서 지난 4월 김정은 위원장은 처음으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만나 ‘러시아 지렛대’도 챙겼다.
 

[왼쪽부터 2012년 3월 25일 버락 오바마, 2002년 2월 20일 조지 W 부시, 1993년 7월 11일 빌 클린턴, 1983년 11월 14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DMZ를 방문해 북측을 보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이렇게 미국, 중국, 북한은 한반도에서 저마다 나름의 지렛대를 들고 '밀당'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렛대는 무엇일까. 바로 비무장지대(DMZ)다. 1950년, 69년 전 오늘 한국전쟁 발발 이래 ‘한반도 평화’는 어려운 문제이자 큰 목적이었다. 전쟁은 상대방의 멸망을 노리는 죽음의 게임이다. 1953년 그 전쟁을 일단 멈추자, 정지하자(정전·停戰)고 전쟁 참가 당사자들이 합의한 지 66년이 지났다. 그 정전협상의 결과물인 DMZ가 이제는 한반도 평화를 달성할 지렛대 역할을 할 때다. 정전협정 당사자인 유엔군(미군사령관), 북한군, 중국군 대표가 다시 모여 전쟁을 끝내는 종전(終戰)선언을 할 소중한 지렛대 말이다. 특히 오는 29일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가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닫게 하는 데 DMZ만한 지렛대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DMZ를 너무나도 보고 싶어 한다. 2017년 방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8일 아침 일찍 헬기를 타고 DMZ로 향했지만 기상이 안 좋아 경기도 파주 인근에서 회항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이날 오후 국회 연설 이후 날씨가 좋으면 DMZ를 가자고 했으나 중국 방문 일정 관계상 측근들이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자 트럼프는 “다음에 오면 꼭 가고 싶다”고 의지를 밝혔다는 후문이다.

29~30일 방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DMZ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30일 DMZ 방문을 보도한 일부 외신은 "이는 한국 측이 미국 측에 타진해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판단을 거쳐 정식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가 직접 DMZ에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 상황을 피부로, 눈으로 실감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동행할 문재인 대통령이 DMZ가 갖고 있는 의미, 상징을 잘 이해시켜야 한다. 북핵협상 중재자로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미국이 북한문제에 전향적인 입장을 취해야 하는 이유를 DMZ 현장에서 설명해야 한다.

이번에도 또 날씨 때문에 헬기를 되돌리는 상황이 온다면 미리 플랜B를 준비해서라도 꼭 방문을 성사시키길 바란다. 그래야 문 대통령이 '한반도 운전대'를 다시 잡을 기회가 생긴다. 문재인-김정은-트럼프 3인의 DMZ 회담이 상상에만 그칠 이유가 없다. 트럼프와 김정은, 두 거구를 협상 재개 테이블로 살포시 들어 올릴 지렛대, DMZ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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