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스타트업 붐 이끄는 '바다거북이'...유학파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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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미 기자
입력 2019-06-20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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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남아 유학 인재들 기회의 땅 고국에서 창업 바람

  • 동남아 높은 성장 잠재력에 투자 창업 밑거름

해외에서 교육을 받고 선진 기술을 익힌 유학 인재들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른 동남아시아 본국으로 돌아가 정보기술(IT) 스타트업(신생벤처기업)을 키워내고 있다.

동남아 대표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으로 통하는 차량 호출서비스 그랩과 오토바이 호출서비스 고젝 모두 해외파 인재의 손에서 탄생했다.

알을 낳기 위해 뭍으로 나갔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오는 거북이에 빗대어 '바다거북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유창한 영어와 탄탄한 전문 지식,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동남아 경제에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다. 

◆고국 찾는 해외 인재, 스타트업 창업 바람

유학파 인재를 '바다거북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건 중국이다. 귀국 유학생을 의미하는 '하이구이'가 거북이와 발음이 같아서 그렇게 불렸다. 이들은 2000년대 초 중국에서 IT 창업 바람을 일으키며 중국 기술 굴기(우뚝 섬)의 밑거름을 제공했다. 중국 최대 검색엔진 바이두 리옌훙 회장, 샤오미 공동창업자 중 하나인 린빈 사장이 대표적인 바다거북이다.

이제는 동남아에서도 바다거북이의 활약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가 최근 전했다. 동남아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성공신화로 통하는 그랩과 고젝 모두 미국 유학파가 세운 회사다. 

나디엠 마카림 고젝 CEO는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대 중 하나인 브라운대 국제경영학과를 거쳐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을 나왔다. 2010년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고젝을 창업해 고속 성장했다. 

'동남아판 우버'로 통하다가 지난해에는 우버의 동남아 사업을 집어삼킬 정도로 자란 그랩은 유학파 앤서니 탄이 2012년 세운 회사다. 탄 CEO는 미국 시카고대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 MBA를 이수했다. 양보 없는 경쟁을 벌이는 두 CEO가 대학원 시절 절친했던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같은 성공 사례는 창업을 고민하는 유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취업 비자 규정이 한층 까다로워진 데다 동남아의 디지털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최근 해외파 인재의 귀환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싱가포르의 소액 대출서비스업체 피낙사르(Finaxar)의 시안 위 탄 CEO, 약물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유전자 검사 개발업체 날라제네틱스(Nalagenetics)의 레바나 사니 CEO 모두 고국에서 창업에 뛰어든 바다거북이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뒤 과학자의 길을 뒤로 하고 귀환한 사니 CEO는 "고민이 많았다"면서도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가 책임감이나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내가 이곳에 온 건 기회를 보았기 때문이다. 다음 유망시장은 동남아인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수비르 바르마 베인앤컴퍼니 선임 자문은 "동남아 유학 인재뿐 아니라 전 세계 기술 베테랑들이 한몫을 잡을 수 있는 차세대 거대 시장으로 동남아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벤처캐피털의 성공과 기술 생태계의 확장이 이곳으로 점점 더 많은 인재를 끌어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동남아 성장 잠재력 주목하는 투자자들

동남아는 6억명이 넘는 인구와 젊은 평균연령,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을 내세우며 디지털 경제에서 기회의 땅으로 주목받고 있다. 구글과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이 공동 실시한 조사에서 동남아 인터넷 경제 규모는 지난해 이미 720억 달러(약 85조원)를 넘어섰고, 2025년에는 지금보다 3배 넘게(2400억 달러) 불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각국 정부는 새 기술을 빠르게 수용하고 각종 규제를 철폐하며 스타트업 촉진 정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동남아 유니콘은 10개까지 늘어났고, 그중 그랩과 고젝은 몸값이 100억 달러를 넘는 '데카콘' 반열에 오른 것으로 평가받는다. 앞으로 5년 안에 유니콘이 10개 이상 더 나올 것으로 베인앤컴퍼니는 보고 있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컨설팅업체 KPMG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벤처캐피털 투자는 브렉시트와 미·중 무역전쟁 불확실성으로 인해 전분기 대비 감소했지만 동남아는 반대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역내 벤처캐피털 거래 건수가 327건, 거래액은 78억 달러에 달했다.

최근에는 IT기업 경영진 출신으로 구성된 사모펀드 회사 '아시아파트너스'가 동남아 기술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펀드 조성에 성공하기도 했다 동남아 전자상거래, 여행 플랫폼 등에 연간 2000만~1억 달러 투자를 목표로 한다.

지난해까지 싱가포르 온라인 게임·전자상거래 유니콘인 씨(SEA)의 회장을 지낸 니콜라스 내쉬 아시아파트너스 이사는 "동남아는 가장 활기차면서도 여전히 낮게 평가받고 있는 세계 주요 신흥시장 중 한 곳"이라며 동남아가 가진 잠재력을 강조했다.

이미 세계적인 큰손들은 동남아 주요 스타트업의 투자자 목록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그랩에 40억 달러를 쏟아부었고, 중국 알리바바는 싱가포르 전자상거래업체 라자다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구글, 글로벌 사모투자펀드 콜버스크래비스로버츠(KKR), 미국 부동산투자 사모펀드 워버그핀쿠스는 고젝의 투자자다.

◆현지 기술인재 부족에 해외 유학파 유치전

스타트업 생태계 확대를 위한 인재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구글·테마섹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동남아에서 디지털 부문 숙련 인재가 10만명 넘게 채용됐고, 2025년까지는 20만명 이상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고젝만 해도 지난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만 500명 넘게 채용했는데, 올해도 이 정도 규모의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동남아 현지에서 숙련 인재를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기업들은 호소한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현지 스타트업 100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최근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90%는 채용에서 지원자의 역량 부족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고젝, 토코피디아, 불카라팍 등 현지 유니콘들 사이에서 인재 유치 경쟁이 치열해졌고, 기술 인재들의 몸값도 치솟아 현지 평균 임금의 3~5배를 웃돈다.

기술 인재의 현지 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대상은 미국에서 선진 노하우를 익힌 인재들이다. 고젝은 하버드대, MIT, 스탠퍼드대 출신 유학파 직원들을 동원해 동문들을 유인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 유니콘인 불카라팍은 해외에서 체류하는 자국 인재를 유인하기 위해 "집으로 가는 길을 열어라"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실리콘밸리 출신 요엘 수미트로 제품디자인 부사장을 대동해 실리콘밸리에서 홍보 행사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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