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칼럼] 민주인권기념관 건립을 구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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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 2019-06-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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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교수]


이을호를 아는가? 그는 1985년 10월,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의 상임위원회 부의장으로 활동하다가 김근태 의장과 함께 체포되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던 민주화운동의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그런 그가 바로 자신이 고문 받았던 장소에서 처음으로 열린 6·10 민주항쟁 32주년 기념식의 단상에 올라가 다른 고문 피해자들과 함께 힘차게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다. 감격스러운 장면이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단지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고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해결되지 않았거나 현재 진행형의 인권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도 가졌다. 국가 의례로서는 약간은 파격적이었고 신선했다.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에는 고문과 불법감금, 장기구금과 의문사 등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많은 분들의 절규와 눈물이 담겨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우리는 민주주의를 생각하면서 동시에 인권을 생각해야 하고, 우리가 빚지고 있는 사람들의 희생을 바로 새겨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질풍노도와 같았던 “민주주의의 역사적 시간과 공간을 되살리기 위하여” 남영동 대공분실 터에 민주인권 기념관을 설립하는 것이 작년에 결정되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어떤 곳인가? 권위주의적 독재가 절정이던 1976년, 지상 5층 규모로 신축되어 치안본부 대공과에서 사용한 건물로, 1983년 12월 지상 7층으로 증축되었으며,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공고화되었던 2005년, 경찰청은 인권경찰로 거듭나기 위한 의지를 담아 이곳을 인권센터로 조성한 곳이다. 이곳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재탄생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운동의 기억을 보존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는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우리는 민주주의의 지속적 발전을 위하여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였고, 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설립하였다. 전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했다면, 후자는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처음부터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건립 및 운영,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한 사료의 수집과 보존·연구, 그리고 각종 민주 발전을 위한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기념사업회는 2006년 한국 민주주의 전당 설립계획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순조롭게 추진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의미있는 장소에 이를 세우기를 희망하였고, 남산 안기부 터를 비롯한 여러 장소들을 검토했지만 여러 정치적인 이유와 예산상의 문제로 난항을 겪었다. 이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난관은 이를 건립하기를 희망하는 도시들 간의 경쟁이었다. 이 기념관은 당연히 서울에 자리잡아야 한다는 생각과 한국 민주화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도시에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서로 충돌했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극복하기 위한 촛불혁명은 민주주의 전당 건립 계획을 다시 추동하는 에너지를 제공하였다. 남영동 대공분실 터가 기념관 부지로 확정되면서 민주주의와 함께 인권이 핵심 의제로 추가되었고, 동시에 새로운 논쟁거리도 생겨났다. 첫째, 이 민주인권기념관이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을 망라하는 종합적 기념관이어야 하는가, 다른 도시의 기념공간들과의 유기적 분업 원리에 충실한 기념관이어야 하는가? 둘째, 지난 20년간 구상해온 민주주의전당이라는 개념에 충실한 기념관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남영동이라는 장소성을 중시하면서 건물과 장소의 원형 보존에 충실한 기념관이 되어야 하는가? 셋째, 역사의 기록에 충실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이어야 하는가, 현재 진행형의 인권적 쟁점들을 토론하면서 좀더 미래지향적인 소통공간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그해 겨울, 박종철로부터 시작하여 초여름의 이한열로 마무리된 6월 민주항쟁의 기억은 우리가 걸어온 지난했던 민주화의 길을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원천이다. 그러나 영화 ‘1987’에서 다시 보았듯이, 이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국민적 함성이 엊그제 같다고 말하지만, 이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는 6월 민주항쟁을 일종의 전설이나 신화로 느끼기도 한다. 이런 세대 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지속적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념관, 이를 위하여 보다 많은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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