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노딜' 김혁철 정말 총살됐나, 그는 누구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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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19-05-3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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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 이상국의 '편집의눈']

# 북한서 초고속 승진한 외교가의 영파워, '노딜 희생양'?

"김혁철은 지난 3월 외무성 간부4명과 함께 조사받고 미림비행장에서 처형당한 것으로 안다. 이들에게는 미제에 포섭돼 수령을 배신했다는 스파이혐의가 적용됐다."

오늘자(2019년 5월31일자) 조선일보가 인용 보도한 북한 소식통의 말이다. 김혁철은 2월말 하노이 북미회담의 실무협상을 맡았던 대미특별대표였다.
 

[하노이 노딜 책임으로 총살說 나도는 김혁철.사진=연합뉴스]



김혁철 관련 뉴스에 청와대도 적잖이 놀랐을 법하다. 하노이회담 전인 지난 1월29일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중앙일보에, 북한 김혁철이 스티븐 비건(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협상 파트너로 등장한 것은 청와대의 요구에 김정은이 호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즉 김혁철을 북미협상의 실무협상자로 올린 데에 청와대의 힘이 작용했다는 주장이다.

외무성 소속이었던 김혁철을, 김정은 직할기구인 국무위원회 소속으로 바꿔 하노이 담판에 참여시킬 만큼, 북한은 그에게 힘과 기대를 실었던 셈이다. 북한 소식통의 전언대로라면, 김혁철은 ‘하노이 실패’의 최대책임자로 몰려 총살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 부친과 나란히 외교관 생활, 전략부 9국에서 두각

김혁철은 어떤 인물인가. 하노이회담 전인 1월25일 태영호 전 영국주재북한공사는 자신이 과거 김혁철과 오랫동안 외무성에 함께 근무했다고 자신의 블로그에서 밝혔다.

김혁철의 부친도 북한 고위외교관을 지내 부자가 외교 쪽에서 두각을 드러낸 케이스다. 김혁철은 평양외국어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고 2000년대 초에 졸업한 뒤 바로 외무성에 들어가 업무를 시작했다. 이때 부친은 캄보디아 주재 대사로 발령났다. 부자가 함께 외무 쪽 일을 하게된 것을 의식해 김혁철은 외무성내 기피부서인 9국(전략부)를 자원했는데 여기서 뜻밖에 외무상인 리용호의 눈에 띄었다. 이후 그는 북한의 국가전략보고서를 작성하는 TF멤버로 활약한다. 2005년 베이징 6자회담 때 김혁철은 북한대표단 김계관 제1부상의 연설문 작성을 맡는다.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 이후 논란을 깔끔하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아 9국 부국장이 됐다. 이 핵심 전략부서에 30대 부국장이 나온 건 김혁철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 김영철 수행하면서 대미 협상 전략통으로

2012년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젊은 간부들이 대거 발탁되는 물갈이 인사가 있었고 그때 김혁철은 외무성 참사로 승진한다. 2014년말 김계관은 그를 스페인 대사로 내보냈고. 2017년 스페인이 북한 핵실험을 이유로 그를 추방할 때까지 거기서 근무했다. 2017년 북한으로 돌아온 뒤 워싱턴 북미 고위급회담이 있었고 그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수행하게 된다.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1차 북미회담서 합의한 내용들을 좀 더 구체화하는 실무 전략통의 역할이었다. 그는 하노이회담을 앞두고 국무위 대미 특별대표를 맡게 된다.

하노이 노딜 이후 김정은이 분노했다는 기류는 감지되었지만, 그것이 강력한 숙청과 문책으로 이어졌다는 구체적 주장은 처음 나온 것이다. 회담 결렬 직후 그는 다시 외무성으로 복귀했지만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지난 4월 선출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대의원 명단에는 그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그가 숙청당했다고 주장하는 대북 소식통은 “미측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협상 상황 보고를 부실하게 했다는 이유로 미제 스파이로 몰렸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김혁철이 비건 협상 파트너로 등장했을 때, 그가 전 CIA 코라이임무센터장이었던 앤드루 김과 손발을 맞춰온 북측 협상팀이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 일이 그에게 빌미를 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 김영철은 강제노역형, '대미 신중파' 리용호와 최선희는 건재

하노이 노딜의 책임을 물은 건 김혁철만은 아니다.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은 강제노역형,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책략실장과 통역 담당 신혜영은 정치범 구금, 김여정은 근신 처분이 내려졌다고 소식통은 주장한다. 한편 하노이 회담팀 중에서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제1부상은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두 사람은 대미협상 업무에서 희망적 보고를 했던 통전부 라인과 달리, 신중하고 냉철한 접근을 요구했기에 이들이 속한 외무성 라인이 김정은의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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