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차등의결권'으로 벤처기업 '장기적 혁신활동' 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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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훈 기자
입력 2019-05-22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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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건준 벤처기업협회 회장(크루셜텍 대표이사)

[안건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겸 크루셜텍 대표이사.]


중국의 대표적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는 2014년 기업공개 당시 기업가치가 16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며 전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알리바바는 원래 자회사가 거래되던 홍콩 주식시장에 재상장하려고 하였으나 홍콩 주식시장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윈 회장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홍콩 상장을 포기하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을 추진했다. 마윈 회장은 현 경영진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한 상태에서 기업공개로 대규모 자본을 조달하고, 기업의 장기적인 이니셔티브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차등의결권이란 1주당 하나의 의결권이 아닌 다수 또는 무(無)의결권을 지닌 주식발행을 허용하는 제도로서 경영진이 소량의 지분으로 과반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 창업자는 기업의 성장과정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라운드의 투자유치 과정에서 지분희석을 예방하고 외부의 적대적 M&A를 방지할 수 있다.

현재 홍콩거래소도 ‘알리바바’라는 빅딜을 놓친 이후 뒤늦게 샤오미를 첫 사례로 차등의결권주 발행을 허용한 상태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프랑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3분의 2 이상이 차등의결권주 발행을 허용하며 기업가의 장기적인 혁신활동을 보장하고 있다.

그동안 벤처업계에서도 자금력이 약한 중소벤처기업에 기업 지배구조의 다양성을 부여하고, 이들을 자본시장으로 유도하기 위해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을 지속적으로 건의해왔다. 정부에서도 이에 부응해 ‘제 2 벤처붐 확산전략’ 방안에 비상장벤처기업에 한해 차등의결권 도입을 검토한다는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차등의결권 제도가 본래 취지와 다르게 대기업 승계수단으로 악용되거나 일반 투자자들의 권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와 반대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제도 도입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이번 정부의 발표는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도입하는 내용으로 대기업 승계에 악용될 수 있다는 불안은 지나친 기우이다. 오히려 잠재력이 큰 비상장 벤처기업은 상장 이후에도 창업자가 안정적인 경영권을 기반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차등의결권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구글은 기업공개 당시 주주에게 보낸 공개서한에 “차등의결권은 우리팀이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전략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합니다”라고 도입이유를 밝히며 기업가의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렇듯 차등의결권의 도입은 기업공개 이후 재무적 투자자의 과도한 경영권 간섭으로 인해 기업이 단기성과에만 치중하는 것을 방지하며 장기적인 고성장을 추구할 수 있게 한다. 실제로 차등의결권구조로 미국에 상장된 기업들의 주가성과가 전체 IPO성과보다 5% 높게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최근 해외 벤처캐피탈의 국내 벤처기업들에 대한 메가급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차등의결권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배달의 민족, 토스, 야놀자 등이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의 투자금을 해외자본으로부터 유치하면서 국내에도 기업가치가 1조원을 넘어서는 비상장 벤처기업인 유니콘 기업이 8개로 늘어났다. 물론 이는 환영할 일이지만 창업가의 경영권 유지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처한 저성장 트랩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과제 속에서 정부의 제 2차 벤처붐 확산전략발표는 시의적절하다. 이에 선순환 벤처창업생태계를 조성하고 혁신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 차등의결권과 같은 혁신적 제도의 적극적 도입이 필요하다. 여전히 찬반 양론이 분분하지만 정부와 국회가 긴밀히 협조하고 세심히 검토해 기업가의 장기적 혁신활동이 보장될 수 있도록 조속한 제도도입을 추진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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