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쓰라린 20대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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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건 인턴기자
입력 2019-05-02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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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대통령을 바라보는 20대가 안타까운 까닭"

인턴[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1984년 심수봉은 떠나가는 남자에 대한 여자의 야속한 심정을 노래했다. 태어나기도 전에 발표돼 몇 번 들어보지 못한 곡이지만 이번 20대 여성 100명 조사를 마치고 나니 불현듯 떠올랐다. 절절한 노랫말에 담긴 야속함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하지만 낡은 관습에 묶인 다른 하나의 야속함도 여전히 많은 여성들의 억장을 울리고 있다.

지금껏 우리 여성들은 알게 모르게 배를 위한 ‘항구’가 되길 강요받고 커왔다고 본다. 그들에게 배만 바라보며 얽매인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 또한 저 배들처럼 손끝이 닿는 데까지 자유로이 바다를 가르고 싶다.

그런데도 줄곧 항구와 함께 커온 배들은 줄기만 하는 물고기와 거칠고 무서운 풍랑 앞에 여력이 없다.
20대 남녀가 서로에게 내뱉는 ‘혐오 표현’엔 사실 이런 애처로운 사정이 묻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사랑을 받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약속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공수표를 남발해버린 대통령이 일자리까지 해결하지 못하자 그에 대한 기대와 사랑은 실망과 미움으로 변했다. 희망 대신 절망을 받아든 20대 남성들은 그동안 원한 적도 없던 경제주체가 되느라 나와 무관한 ‘원죄’를 짊어져야만 했다.

그런데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대통령은 없는 일자리를 나누라고만 한다. 이제는 짊어진 짐을 내려놓고 싶다. 반면 20대 여성들은 ‘페미니스트 대통령’ 취임 후에도 실질적으로 나아지는 사정은 딱히 없다고 한다. 그래도 쥔 게 없어 잃을 것도 없는 여성들에겐 한마디 말이라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그동안 그 누구도 이런 말 한마디조차 건네준 적 없었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기분이다. 숨소리도 공유할 정도로 가깝지만 얼굴도 마주할 수 없는 멀고 먼 한 뼘 사이. 서로에게 돌아누운 청춘들의 동상이몽이다. 그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우리는 남성 혹은 여성으로 그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존재함으로 각자는 타자에게 죄인이 된다. 누구도 죄인이 아니지만 누구나 죄인이 되는 딱한 삶. 거부할 수 없는 시대흐름에 매인 지금 20대는 그저 무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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