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정상회담] 푸틴 손 잡고 김정은 동북아 슈퍼위크 포문…비핵화 판 흔들기

최신형 기자입력 : 2019-04-25 18:56
처음 러시아 밟은 김정은, 한반도 정세 요동…북·러 정상회담 8년 만 金 "러시아와 공동관리 논의"…푸틴 "남북-북·미 관계 위한 노력 지지" 러시아 비핵화 링에 오르며 6자 회담 불씨…文대통령 중재력 시험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동북아 슈퍼위크'의 포문을 열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교착 국면에서 김 위원장이 러시아를 뒷배 삼아 '비핵화 판 흔들기'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빨라진 북·러 밀월은 '미·일 정상회담(26일)→중·러 정상회담(26∼27일)→5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방북설' 등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한반도 정세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국 외교'다. 속도 조절을 펴는 미국과 장기전을 예고한 북한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했다. 그간 한반도 영향력이 미·중·일보다 약했던 러시아는 틈새 파고들기를 통해 비핵화 무대에 진입했다. '코리아패싱' 우려만 커진 셈이다.

◆北, 韓·美·中 동시 압박…비핵화 테이블에 앉은 러시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의 극동연방대학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5분(한국시간 1시 5분)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다리로 연결된 루스키섬 극동연방대에서 활짝 웃으면서 첫 대면을 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지각 대장'으로 불린 푸틴 대통령은 이날 30분 먼저 회담장에 도착, 김 위원장을 맞았다.

김 위원장이 러시아 땅을 밟은 것은 집권 이후 처음이다. 북·러 정상회담은 2011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러시아 대통령(현 총리) 이후 8년 만이다.

김 위원장은 "지금 전 세계의 초점이 조선반도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문제를 같이, 조선반도 정책을 평가하고 서로의 견해를 공유하고 또 앞으로 공동으로 조정 연구해나가는 데서 아주 의미 있는 대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남북대화 발전과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당신의 노력을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다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두 정상은 회담장 착석 직후에는 긴장한 탓인지 다소 굳은 표정을 연출했다.

제1∼2차 핵담판까지만 해도 적당한 선을 유지했던 북·러가 하노이 노딜 이후 밀월 모드로 전환한 것은 비핵화 판에서 몸값을 높이려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려서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를 비핵화 판으로 끌어들이면서 중국의 경쟁심을 한층 자극했다. 대미·대남에 이어 대중까지 조이는 일종의 '3국 압박' 전술인 셈이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김 위원장이 러시아와 우호 친선을 강화하는 수순을 밟아서 북한의 정상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것"이라며 "(결국)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단계"라고 분석했다.

◆11년 만에 재부상한 6자 회담…韓 입지 좁아질 듯

러시아는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테이블에 다시 앉았다. 그간 '북·미-남북-한·미' 정상 간 톱다운 방식에 국한된 핵담판을 '6자 회담'으로 넓히려는 러시아의 의중과 맞아떨어진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참여한 6자 회담은 2008년 12월(제12차)을 끝으로 10년 넘게 중단된 상태다.
 

사진은 청와대 춘추관.[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북·러 밀월은 '양날의 검'이다. 우선 러시아는 하노이 노딜의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한 비핵화 해법에서 미국의 일괄타결식 빅딜보다는 북한의 단계적 해법을 지지한다. 청와대가 비핵화 방안으로 제시한 '연속적 조기 수확'과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의 입지를 좁힐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한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북·중·러 3국이 공조 행보에 나선다면, 한·미·일과의 고착 구도만 한층 강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푸틴 대통령이 극동지역에서 김 위원장을 만난 것도 '북·중·러의 유대 관계'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알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러시아는 국제 사회의 대북제재에 저촉하지 않은 선에서 대북 협력을 강화하고 북한은 군사 분야에서 협력을 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표적인 북·러 경제협력(경협)으로는 한반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부설 및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북한 철도 연결 사업 등이 꼽힌다.

북·러 경협과 북·중·러 밀착, 비핵화 협상을 위한 6자 회담 등이 현실화할 경우 톱다운 방식의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문 대통령의 정교한 중재역의 속도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톱다운 방식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다만 5·26 판문점 원포인트 남북 정상회담과 6·15 남북 공동선언 때 남북 정상이 전격적으로 만난다면, '북·미→남·북·미' 선순환의 불씨는 다시 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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