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미니칼럼-短] “민원이 단속을 자유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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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19-04-2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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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속에 관한 단상(斷想) 혹은 단상(短想)



한강시민공원에 텐트를 칠 때 4개면 중 2개면을 열어 놓지 않으면 과태료 100만원. 서울시는 22일부터 이런 단속(團束)을 시작했다. 말 그대로 단속은 집단을 구속하는 행위다. 하는 쪽과 받는 쪽 서로 입장이 다르다. 당연히 논란을 불러온다. 한강 텐트 단속, 서울시는 “밀실텐트에서 일어나는 과도한 애정행각이 주변에 피해를 준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지나친 사생활 침해’ vs '공공질서를 위한 불가피한 개입'…말이 많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해결의 실마리를 한 구청의 주차 단속에서 찾았다.
서울시가 한강 텐트 단속에 나선 22일 출근길에 흔치 않은 단속 장면을 또 목격했다. 이날 오전 7시30분쯤 서울 종로구 삼봉로 43 종로구청 옆 코리안리 빌딩 사이 2차선 도로 위에 불법주차한 종로구청 소속 차량 3대에 주차단속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귀하의 차량은 도로교통법…규정에 의하여 과태료 부과 및 견인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과태료 딱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대한민국의 공공기관이 이렇게 자기네 소속 공용차량을 단속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그래픽=김철민, 사진=안효건 인턴기자]


보통 때는 ‘와, 구청이 구청 차를 단속하네. 많이 좋아졌군’이라고 생각하며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한강 텐트 단속 소식 이후 이 장면을 보니 왜 이러는지, 진짜로 하는지 정말 궁금해졌다. 전화를 받은 종로구 주차단속 상황실 관계자는 “공용차량 단속하는 이유는 민원 때문이다. 민원인들이 단속해 달라는 민원을 서울시와 종로구에 계속 넣는다. 민원이 제기되면 단속반원들은 무조건 현장에 출동한다. 공용차량이라고 봐주지는 않는다. 일정 시간 지나면 과태료 딱지를 뗀다. 과태료는 해당 부서에서 낸다”고 친절히 설명해줬다.
 

[잔나비 트위터 캡처]


요즘 복고를 뜻하는 레트로가 음악, 패션 등에서 인기다. 특히 70~80년대 풍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밴드 ‘잔나비’는 특출 나다. BTS의 신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와 국내 음악차트 1,2위를 다투는 곡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레트로 감성 물씬! 그런데 서울시의 ‘한강 밀실텐트’ 단속은 향수에 젖는 레트로가 아닌 과거 군사독재시절의 ‘장발 단속’, ‘미니스커트 단속’ 같은 권력의 통제, '완장'을 떠오르게 한다.

구습으로 다시 돌아가는 무차별 단속과는 다른, 21세기에 어울리는 단속은 없을까.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단속을 이렇게 정의한다.

[네이버 국어사전 화면 캡처]


2보다는 1, 통제보다는 보살핌으로 가야 수긍할 수 있는 비야만적인 단속일 거다. 밀실텐트 속 과도한 애정행각 때문에 내가, 우리 아이들이 편치 않으면 신고하고, 신고를 받는 즉시 행정적인 단속이 이뤄지고, 그것 때문에 적절한 애정행각만 하는 단속의 선순환. “민원이 단속을 자유롭게 하리라” 종로구청에서 '21세기형 단속'의 힌트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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