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웃는게 꼭 웃는게 아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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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선 기자
입력 2019-04-0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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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다음에 밥 한번 먹자." 외국인들이 꼽는 한국인이 제일 많이 하는 '뻔한 거짓말' 중 하나다. 한국인은 이 말을 해놓고는 실제로 밥 약속은 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우리는 누구나 다 안다. 지나가며 하는 인삿말이라는 걸.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문화나 언어습관을 잘 알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오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함축(含蓄)'적이고 애매모호한 화법을 구사하는 게 중국인이다. 기자는 과거 중국어로 된 비즈니스 계약문서를 한국어로 번역한 적이 있다. 그때 자주 등장했던 중국식 표현이 "기본적으로 합의한다",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등이다. 이 말의 '속뜻'인즉슨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기본이나 원칙이 바뀌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처럼 대놓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해당 계약은 무효화할 수 있다'고 표현하지 않는 게 중국인이다. 

부정적 어휘는 삼가고 완곡, 함축, 애매모호함으로 가득한 화법을 구사하는 외교전에선 더더욱 그렇다. 지난 2012년 중국의 한 익명의 외교전문가가 중국식 외교화법을 파헤친 글이 중국 온라인 토론커뮤니티 '톈야'에 올라와 화제가 됐다. 글에서 몇 가지만 예를 들면 '허심탄회하게 대화했다'는 '이견이 너무 커서 소통할 수가 없었다'는 말이고,  '의견을 교환했다'는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하고 합의한 건 없다'는 뜻이며, '건설적인 회담을 했다'는 건 '일부 진전을 이루긴 했지만 이견이 커서 해결되려면 한참 멀었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한 중국전문가가 최근 미·중 무역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로 영어와 중국어 해석 차이에서 오는 오해를 지적하며 협상 단계에서부터 중국어 번역본을 작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다.

비단 중국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각국과의 외교전에서 '언어'는 그만큼 중요하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3월 말레이시아 방문 당시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말을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됐다. 말레이 총리실 보좌관은 AFP 통신을 통해 “개인적으로 이건 이슈가 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측도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문제 제기는 없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슈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해서 그게 정말 괜찮다는 의미는 아닐지 모른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중국 광둥성 정부로부터 이재명 경기지사 초상화를 선물받고 크게 웃었지만 사실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는 것처럼. 
 

미중 정상회담 모습. [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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